“모세의 기적”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며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
다음불로그: kims1102@
오월은 신록(新綠)의 계절, “계절의 여왕”이다.
여름에 들어선다고 하는 입하가 지난지도 이틀이 지났다.
입하 이후 입추(立秋) 전날까지를 여름으로 보는 우리의 절기상으로 치면,
봄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올해는 봄다운 봄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마치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것처럼 우리는 갑자기 찾아온
여름과의 어색한 대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던 간에 우리는 여름 속으로 떠밀려 들어왔고 말없이 떠나버린 봄의 아쉬움을
잊어버려야한다.
이제는 입하(立夏):-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여 몹시 바빠지는 때이고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쥐 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특히 이 시기부터 들판의 풀잎이나 나뭇잎이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찻잎을 채취하는
손길도 분주해진다.
보통 곡우 때 채취해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라 하여 최상품으로 여기지만 입하 무렵에 만든
차도 이에 못지않다.
입하까지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삼춘차(三春茶), 삼첨(三尖), 입하 후에 만든 차를
사춘(四春), 난청(爛靑), 장대(長大)라 하여 통칭해서 입하차로 부른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즈음에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으로 이른바
쑥버무리를 계절식(季節食)으로 먹기도 하고,
집안에 따라서는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 농사꾼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또한 오월은 가족관계의 기념일이 많이 들어있는 달이다.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 17일은 성년의 날,
21일은 석가탄신일이 들어있다.
단군 이래로 우리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였으며 축조기술의 세계최고를 입증(立證)한
새만금방조제공사가 성공적으로 완공이 되었다.
크기가 전주시의 두 배이며,
서울면적의 2/3나 되는 육지가 우리국토로 늘어나는 서해바다에 매립지가 생겼다.
물론 끊이지 않는 환경파괴 논란으로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삼보 일 배(三 步 一 拜)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불교 수행법으로만 알려진 이런 수행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2003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새만금간척지사업으로 인한 환경훼손과 생명파괴를 막기 위해 종교계가 발 벗고 나섰는데,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계가 합동으로 그해 3월28일부터 65일 동안이나
“삼보 일 배”수행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모세의 기적”으로 마침내 바닷길을 연 새만금방조제
(남북1간선로)가 개통식을 가졌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변산반도국립공원 부안 쪽에서 시작,
가력배수갑문, 신시배수갑문을 거쳐 군장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군산 비응도港을 돌아오는
국토순례를 하기로 했다.
거기에다 신시도에 있는 월영峰(198m), 대각산(187.2m)도 함께 산행하기로 했다.
신시도(新侍島),
군산 남서쪽 2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군산군도의 24개 섬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다.
(새만금방조제 연륙지점)
해안선길이가 16.5㎞나 된다.
신라초기에 섬 주변의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 김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문창현, 심리, 신치로 불리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신시도로 개칭하였다.
최고점은 대각산으로 섬 북서쪽에 솟아 있고,
남동쪽에는 월영峰이 솟아 있으며 2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가 많은 곳이다.
취락은 남쪽 지풍금 마을에 주로 분포되어있고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신라 때 최치원이 신치산에 단을 쌓고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3주 만에 우리 회장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금광의 전신인 “광민 산악회”때 총무를 맡았다는 최 여사가 친구들을 대동하고 참여를 했는데,
딸기를 선물로 가져와 회원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만에 양동매씨들도 거의가 참여를 해 산행버스 뒷좌석이 풍요롭게 보였다.
몇몇 신입회원들도 새만금방조제를 구경하겠다고 참여를 했고,
산행 안내지를 만들어주시는 전직교장선생님의 자세한 산행지도와 안내지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은 신록이 우거진 오월의 초하(初夏), 호(好)시절이로다.
하늘은 맑게 개였고 날씨 또한 덥지 않는데,
산행버스는 장성인터체인지에서 고창방면으로 빠져 고인돌휴게소를 들렸다.
서해안고속도를 타고 부안에서 새만금방조제 길을 달리기위해서다.
“남북1간선로”라고 명명된 방조제 길 입구에는 아직 미진한 공사 때문에 제한적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노면차선에도 1차선정도가 통제되고 있었지만 많은 관광버스와 나들이 차량으로
방조제 길이나 휴게소가 북적대고 있었다.
산행버스는 새만금홍보관, 가력배수갑문, 신시배수갑문을 지나 배수갑문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가력배수갑문까지는 새만금이 개통되기 이전에도 두어 번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전면개통이 안 되었기 때문에 아쉬움만 남기고 되돌아왔던 길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새만금방조제 신시도광장에서는 새만금깃발축제가 화려하게
열리고 있었다.
희망나무, 소통의 광장, 바람의 언덕, 대지의 문, 물의 정원등의 깃발이 전시되고 있었다.
탑 형식으로 세워진 틀에 붉은색이 주류를 이루고 형형색색의 깃발로 장식된 기 세배를 테마로 한
깃발퍼포먼스였다.
오늘산행코스는
배수갑문주차장에서출발 -141봉(철 계단) -168峰 -월영재 -월영峰 -미니해수욕장
-암릉 -대각산(전망대) -등산안내판 -월영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산행 들머리인 141峰은 바다로 향한 山 전면부가 토목공사 때문에 일직선으로 깍 인
직각 面을 이루고 있는 산이었다.
직각 면은 다섯 개의 철 사다리로 연결되어있었고 한 개의 높이가 아파트 5층 높이는
족히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25층 아파트 벽 높이를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른 셈이었다.
동행하던 조 사장이 뒤를 돌아보고 혀를 내두른다.
나이를 떠나서 힘들고 아찔했는데 올라가서 보니 계단을 타지 않고도 올라 갈수 있는
먼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부터는 능선길이 계속되었는데 168峰을거쳐 월령재로 내려갔다.
사진전문가인 송 국장은 여성회원들의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모처럼만에 많은 여성회원들이 참여를 해줘 금광의 미녀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 꽃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청자 빛 하늘이
육모정 탑 우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우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왼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푸른 오월 / 노천명 作)에서
월령재에서 일부회원들은 들길을 따라 대각산으로 갔지만
나는 월령峰을 올라 암릉 길을 탔고 미니해수욕장을 지나 대각산으로 올라갔다.
대각산정상에는 4층으로 된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들은 한 폭의 잘 그려진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말로만 들었던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가 한눈에 들어왔다.
군산시 옥도면에 딸린 63개 섬으로 구성된 군도(群島)라 했다.
고려시대에는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으나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인근의 육지로
옮기면서 지명까지 가져갔다고 한다.
그리고 섬들에는 옛 고(古)자를 앞에 넣어 고군산(古群山)이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섬들은 해발고도 15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섬들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 일부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그 중 신시도가 가장 크다고 했다.
푸른 바다가 없었다면 어떻게 올망졸망한 섬들을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
크고 작은 섬들이 공기 돌처럼 흩어지듯 그리고 함께 모여 있는 형상이 마치 별처럼
보이는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었다.
어린아이 모둠발로 폴짝폴짝 뛰기만 해도 63개의 섬을 다 건너다닐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 주인 모르게 섬 몇 개쯤 주머니 속에 슬쩍 넣어오고도 싶었다.
월령산과 대각산의 암석은 특이하게 생겼는데 무등산의 입석, 서석대를 미니형식으로
수십 개나 포개놓은 것처럼 생겼었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새겨 논 부잣집정원의 수반石처럼도 보였다.
선유도의 망주峰, 명사십리,
장자도의 사자바위, 할미바위,
방축도의 독립문바위,
명도와 횡경도의 기암괴석,
말도(末島)에는 등대가 있고 갈매기 등 볼거리가 많으며,
대장島에는 1만여 점의 수석과 분재를 모아놓은 개인소유의 수석전시관이 있다고 한다.
산행을 마친 우리는 새만금방조제의 종점인 비응島까지 가서 하산酒를 먹었다.
오늘 하산 주는 나 봉금여사가 불고기백반으로 준비했는데 음식양도 많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고 회원들이 몹시 미안해하는 마음이었다.
새만금간척지란
새만금종합개발사업으로 전북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일원에 조성되는 다목적 매립용지를 말한다.
새만금개발事業은 만경강, 동진강하구의 갯벌을 개발하여 최대한의 용지를 확보하고,
종합농수산업시범단지를 조성하여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여
새만금국제무역항의 건설기반을 구축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새만금방조제공사(남북1간선로)가 완공되어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굴곡진 100㎞의 해안선이
군산 비응도港 -고군산군도(야미도-신시도)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연결되어 33.9㎞인 세계최장의
직선방조제로 바뀌게 되었으며 방조제 안쪽으로 새로 4만100㏊의 용지가 생김으로써
그만큼 우리나라국토가 확장되었다.
이 면적은 전주시의 두 배, 서울면적의 3분의2에 이르는 넓이다.
연간 9조9400만 톤의 용수가 공급되고 수해상습地 1만2천㏊가 해소되는 효과를 얻는다.
1991년부터 2010년까지 총사업비 2조9천억 원을 들여 담수호, 양-배수장, 방조제,
용배수로, 배수갑로 등의 수용시설물이 들어섰다.
간척지에는 녹색산업, 첨단산업, 레저-생태, 國際업무, 미래융합기술산업 권역으로
분류되어 새만금복합도시로 개발될 계획이다.
끊이지 않는 환경파괴논란으로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를 딛고 연결된 바닷길에는
신시, 가력배수갑문에는 36개의 수문이 있다,
축조기술 세계최고를 입증하는 새만금에는 향후 산업-관광 등 8개 용지별로 개발될
계획이다.
새만금사업 추진일지
1987년12월-노태우민정당대통령후보 공약발표
1991년11월-방조제(제1공구)착공
1999년4월-민관공동조사로 첫 공사 중단(-2001년5월)
2003년7월-법원 방조제공사 중지결정
2006년3월-대법원 정부승소 확정판결
2007년12월-새만금특별법제정
2010년1월-새만금 내부개발 기본구상 및 종합실천계획발표
2010년4월-새만금방조제준공
-새만금방조제를 구경하고-
(2010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