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삼봉산
잦은 비·황사 맞으며 더디게 오는 봄
삼봉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봄비가 여름 장마처럼 끝이 없다. 철지난 폭설에 당황하고 강한 북서풍을 타고 건너 온 누런 황사 때문에 야외활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잦은 봄비에 짧아진 일조량과 예측할 수없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짜증스럽기만 하다. 봄비가 잦으면 가을에 부인네 손이 커진다는 속담도 있지만 올해처럼 잦은 봄장마 끝을 볼 수 있게 될 것인지 걱정된다.
고르지 못한 봄 날씨 속에서도 꽃봉오리가 부풀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는 보이지만 어김없이 때가 되면 신비롭게 생동하는 야생초다. 며칠 따뜻한 마파람이 분다고 서둘거나 꽃샘추위에 움츠려 생장을 멈추는 야생초가 아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며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온 야생초이기 때문이다.
야생초산행은 지리산을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삼봉산(三峰山 1187m)을 찾았다. 삼봉산은 3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산이라 얻은 이름이다. 산의 위치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봉산 산행의 매력은 동남쪽에 자리한 지리산 주능선을 마주하며 걷는 다는 것이다. 오도재에서 시작하여 삼봉산 주능선을 오르내리며 등구재, 백운산, 금대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어디에서나 지리산 조망이 가능하다. 특히 계속되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지루함을 덜고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산행 출발지점인 오도재는 옛날 내륙과 해안지방의 산물 교환이 이루어졌던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했던 통로다. 오도재라는 지명은 고승이 이 고개에서 득도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도재는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접근하는 가장 가까운 길로 최근에 차량이통행할 수 있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뱀처럼 구불구불 오르는 도로와 오도산 정상에 세워진 지리산제일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높이가 778m에 이르는 오도재를 출발하면 산신각이 나타나고 10여분을 더 오르면 팔각정인 관음정에 닫는다. 관음정은 오도재를 찾는 관광객들이 지리산을 좀 더 쉽게 조망할 수 있도록 세운 정자다. 이곳에 오르면 천왕봉을 비롯하여 지리산 주능선에 늘어선 봉우리를 모두 바라볼 수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여기서 지리산을 조망하고 오도재로 되돌아간다. 등산로는 서쪽능선으로 이어지며 오도봉으로 향한다. 오도봉에 이르면 높이는 해발 1000m를 넘어선다.
오도봉은 낮은 곳이 아님에도 겨우내 쌓였던 눈이 완전히 녹아 겨울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다른 곳에서는 벌써 노란 생강나무의 꽃봉오리가 터졌으나 이 곳 능선에서는 부푼 상태로 남아 높은 곳임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얼었던 길이 녹는 봄이면 북사면 등산로는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방심하여 한 발짝 잘못 디디면 진흙탕처럼 질척거리는 곳에 빠지는 곤욕을 치르곤 한다. 오르내림이 잦은 이곳 등산로도 북사면에 미끄러운 흙길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눈이 녹고 얼었던 대지가 풀려도 파란 야생초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엊그제께 까지 얼었던 대지에서 하루아침에 잠을 깨고 일어나듯 눈에 뛸 정도로 쑥쑥 자라는 야생초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늘푸른식물인 노루발풀 정도가 전부다. 황량한 산길은 정상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삼봉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압권이다. 지리산의 동쪽 끝인 웅석봉은 물론이고 하봉, 중봉, 천왕봉과 반야봉, 노고단까지. 계속되는 서북능선의 만복대와 바래봉을 지나 덕두산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태극종주라 일컫는 지리산의 가장 긴 능선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봉산 정상은 등산로가 나뉘는 곳이다. 서쪽으로 계속가면 백장암과 팔령치로 갈 수 있고, 야생초산행은 금대산으로 가기 위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른다.
정상을 넘어선 길은 가파른 능선이 등구재까지 이어진다. 등구재는 거북등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장꾼들이 인월 장을 보기 위하여 넘나들던 곳이다. 삼봉산과 금대산을 찾던 산 꾼들만 넘나들던 곳에 최근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인기를 끌면서 동쪽의 마천 창원마을과 서쪽의 인월 중황마을로 넘나드는 둘레꾼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정표는 이곳이 삼봉산과 금대봉까지의 거리가 각각 3km로 중간 지점임을 알리고 있다.
등구재 주변에는 조림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햇볕이 따스한 등산로 주변에는 주능선과 다르게 꽃이 피고 새싹을 내민 야생초가 많다. 꽃으로는 ‘둥근털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로 산지의 숲속에 자라는 ‘둥근털제비꽃’의 연한 자주색 꽃은 낙엽을 뚫고 잎보다 먼저 올라와 피기도 한다. 잎이 낙엽에 가려 꽃대만 불쑥 올라와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등구재에서 백운산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으로 많은 개체가 자생하고 있다.
등구재는 지대가 낮고 햇볕이 비교적 잘 드는 곳이라 일찍 싹을 내민 야생초가 많은 것 같다. 열거해보면 개쑥부쟁이, 갈퀴덩굴, 엉겅퀴, ‘수영’ 등 이다. 그 중에 마디풀과의 ‘수영’은 새싹의 빛깔이 단풍이 든 것처럼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빨간 색깔만 예쁜 것이 아니라 어린잎을 따 맛을 보면 상큼한 신맛이 먹을 만하다.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로 식탁에 올려도 좋을 것 같다.
등구재를 지나면 백운산까지 긴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르막은 동쪽에 잣나무 조림지를 옆에 두고 이어진다. 잣나무 사이를 통과한 바람에는 상큼한 향이 묻어있어 청량감을 더한다. 등구재까 내려갔던 산길을 다시 차고 올라야하는 길이라 피로는 배가 된다. 백운산까지만 오르면 금대산까지는 능선으로 이어진 길이라 쉽게 갈 수 있다.
금대산에 도착하면 남쪽을 가로막은 지리산이 손을 뻗치면 닿을 것처럼 가까운 곳에 우뚝하다. 오후 햇살에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명암이 뚜렷한 산줄기가 위용을 더한다. 지리산이 더 높게 느껴지는 곳이다.
금대봉 아래에는 금대사가 자리하고 있다. 금대사는 신라시대 창건한 고찰로 도선·보조국사와 서산대사가 참배하고 도를 닦던 곳이었다고 하나 6·25전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웠다. 금대봉까지는 차가 드나든다. 야생초산행은 찻길을 버리고 마천으로 곧장 내리닫는 옛길을 따른다.
양지바른 길가에는 야생초가 다투듯 피어있다.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있고 바위틈에는 왜제비꽃이 보라색 꽃대를 올리고 있다. 총포가 아래로 처진 것으로 보아 서양민들레가 틀림없다. 이 깊은 산중에 서양민들레가 자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토종 민들레와는 달리 자가 수정을 하는 서양민들레의 강한 번식력 탓이라 생각해 본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아늑하다. 도착지점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라 길을 놓칠 위험도 없다. 곧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마을에 도착하니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 30분이 지났다. 산행거리가 12km에 달하는 만만찮은 산행이었다.
/농협경남본부 부본부장
찾아가는 길
대·진고속도로 함양 JC→88고속도로 함양 IC→1084번도로 함양→24번국도 인월방향 구만마을→1023번 도로 오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