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숲
생물다양성과 임업 품은 500년 숲
7월 20일(2011년) 찾은 광릉 숲의 핵심구역인 소리봉(536.8m) 일대에는 나무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까치박달나무, 층층나무 등의 넓은 잎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햇빛에 반짝였다. 지난 540여 년 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성숙한 천연림이다. 어둑한 숲 속에 들어서니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100년을 훌쩍 넘겼을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고목 사이로 수피가 사람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서어나무들이 서 있다. 하늘을 가린 숲에 구멍이 뻥 뚫렸다. 바닥엔 서어나무 고목 한 그루가 널브러져 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린 까치박달나무와 회목나무가 키 자람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신재권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5~6년 전쯤 서어나무가 넘어지면서 숲 바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다른 나무들이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촘촘한 숲에 생긴 빈 틈을 철저히 이용하는 이런 모습은 오랜 자연림에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어나무는 오래된 천연 활엽수림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광릉의 소리봉과 죽엽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468년 세조가 능림 지정 이후 시험림으로 관리
소리봉 정상에 오르자 인수봉,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천마산, 축령산이 경기도 진접읍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불과 39㎞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숲의 생물다양성은 북한산, 소백산, 주왕산 등 국립공원보다 우수하다. 단위면적당 생물 종을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광릉 숲 2,240㏊에는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여기엔 흰진달래 등 광릉 숲 특산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이 포함돼 있다. 단위면적당 식물종 수는 광릉 숲이 ㏊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곤충도 광릉이 175.2종으로 설악산 4.2종, 주왕산 12.3종보다 많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데는 무엇보다 인간활동이 집중되는 온대 중부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는 이 지역을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산직을 두어 엄격하게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한 해도 멈추지 않고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해 왔고, 이에 따라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광릉 숲의 절반은 인공림
그러나 산림 보전과 생물다양성만 본다면 광릉 숲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광릉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임업 관련 기관이 들어서, 한반도에 적합한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광릉 숲의 가치는 자연림 못지않게 인공림에 있다”며 “90여 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가꿔온 광릉 숲에서 우리나라 숲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 숲에서 핵심구역은 소리봉과 죽엽산(600.6m)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림 755㏊이다. 핵심구역을 둘러싸는 완충지역 1,657㏊는 인공림이다. 김석권 박사의 안내로 임도인 직동로를 따라가며 광릉 숲 인공림의 모습을 살펴봤다. 1914~1917년 심었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1m가량이고 높이는 20여m로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쓸모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심은 지 80-90년이 지난 인공림의 모습
심은 지 8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도 마을 주변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처 없이 미끈하게 자라나 있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잣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복층 숲에서 인공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924년 심은 느티나무 숲은 정자나무나 가로수에서 보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위로 쭉 뻗은 모습이었다.
김 박사는 “인공림이라도 수십 년 동안 자연과 잘 어울려 자란 숲은 자연림과 다를 바 없다”며 “조림한 지 약 3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인공림을 잘 가꾼다면 광릉 숲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숲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28년 조림한 전나무 숲 바닥에는 어린 전나무가 빼곡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든 상층의 관목을 제거하면 전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공림은 자연림으로 전환된다.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처럼 전나무의 천연 갱신림이 형성될 답이 80여 년 만에 나온 것이다.
출처:(길숲섬, 조홍섭, 한겨레신문)
2024-04-22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