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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특별기고 ‘FTA와 관련한 고찰’
‘교우님들, 경제를 함께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국 경제의 미래는 물론 우리가 열어갈 미래를
내다보게 해주는 가늠자일 뿐 아니라 시금석이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가 FTA와 관련해 사목자적 고뇌와 예언자적
판단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왔다.
가톨릭신문은 2회에 걸쳐 강 주교의 기고문을 요약 소개한다.
<출처: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11일자, 18일자>
1. 우리나라가 산으로 가는가, 바다로 가는가?
지난해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곧 발효를 앞두고 있는데 이제는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준비에 착수한다고 해 뜻있는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우리 나라 앞날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FTA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부작용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에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
외교통상부가 인터넷에 게재한 한·미 FTA 협정문을 살펴보니 한글판만 무려 700쪽이 훨씬 넘는다. 영문까지 합하면 1500쪽에 달한다.
본문과 부속서가 별도로 나뉘어 있어 협정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쉽지 않다.
이 사안이 우리 미래를 크게 좌우하는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인지라,
팔짱끼고 맥 놓고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국민들도 경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정치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 25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42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렸다.
세계 상위 1%들이 참석해 온 이 포럼은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깃발처럼
내세워왔다.
올해는 개막 전날인 24일 이 포럼의 수장격인 클라우스 슈바프 제네바대학 교수가
“(자본주의 행태에 대해) 반성한다”는 사과의 뜻을 밝히는 등 포럼 본래의 철학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겠다는 뜻이 강하게 드러났다.
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언급하며 서구식 자본주의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당장 경제모델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가장 옹호하던 이들이 그 결함과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적 총아인 FTA에 우리 미래를 송두리째 맡기려고 하는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국민 모두가 깨어 살펴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 자유무역협정(FTA)이란
자유무역협정(FTA)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역에 장애가 되는 모든 종류의 관세나
규제를 없애고 자유롭게 교역을 추진하자는 협정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칠레, EU, 싱가포르, 페루, 인도 등과 FTA를 맺었고,
미국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호주 등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국제교역에 있어서 국가 간의 관세나 규제를 없애고 좀 더 자유로운 교역을 촉진하려는 흐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세계 경제의 추세다.
FTA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의 경제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첫걸음이 시작됐다.
이러한 취지로 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23개국 참여로 출범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에
이르기까지 8차례 단계의 협정을 거치며 무형의 협정체제로 계속되었으나,
1995년에 이르러서는 ‘협정’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세계무역기구(WTO)를 창설하면서 국제경제분야에 있어서 준사법적인 강제력을 동원하는 상설 국제무역기구 체제로
탈바꿈했다.
3. 국가 간 무역협정의 탄생 경과 -
GATT 탄생의 배경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상자와 피해를 가져왔고
그 참극을 경험한 열강은 전쟁의 원인이 각국의 보호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갈등에
있다고 인식했다.
따라서 다시 이러한 전쟁의 참극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허물고 원활한 교역과 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이를 위한
국가 간의 무역협정(GATT)을 출범시키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GATT의 출발은 세계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자는
좋은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 FTA 탄생의 배경
GATT 체제는 처음에는 세계무역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모든 요인을 없애기 위하여
관세율을 인하하고 수입제한을 폐지하며 회원국 사이에서 서로 최혜국대우 원칙을
준수하여 세계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꾀하자는 선진국 중심의 무역협정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협정만으로는 강제력이 동반되지 않으며 회원국 전원이 찬동하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분쟁해결을 위해 좀 더 힘이 있는 상설기구의 설립이 요청되었고
GATT 회원국들은 국가 간 무역분쟁을 조정하는 준사법적인 국제무역기구로 WTO를
출범시키게 됐다.
다만 WTO는 GATT보다 좀 더 실제적인 효력을 갖는 국제기구가 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여러 국가들 간의 총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에 미국을 필두로 몇몇 나라는 WTO같은 다자간 협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수의 나라들끼리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협정국 사이에서는 가능한 한 모든
규제와 장벽을 철폐하고 효과적인 자유무역 실현으로 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FTA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이 상호간에 관세와 시장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정하는 조약이다.
그뿐 아니라 FTA는 해당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단순한 관세인하나 상품의 수입제한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경제를 구조적으로 통합하고 모든 종류의 상품, 비상품(서비스, 지적재산권 등)과 모든 경제활동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FTA는 원론적으로는 국가 간의 보호무역 장벽을 치우고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을 제거하자는 GATT의 목적을 그대로 이어받은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 토양 GATT에서 WTO로, 그리고 다시 FTA로 이어지는 세계 교역
자유화의 배경에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국가와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고, 시장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관이 전제되어 있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관을 한 단계 더 나아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시장에
확대 적용한 것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 토양을 세계적으로 확산한 것은 IMF, 세계은행, WTO, OECD같은
국제기구들이었다.
원래 IMF는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또 공식 명칭이 ‘재건과 발전을 위한 국제은행’인 세계은행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국가들의 재건 및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라들의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즉 세계은행은 (도로나 다리, 댐과 같은) 사회기반 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재건과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제3세계 외채 위기가 있었던 1982년 이후 IMF와 세계은행은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정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사회기본시설 개발의 지원이라는 본래 임무에서 훨씬 벗어나
정부 예산, 산업 규제, 농산물 가격, 노동시장 규제, 민영화 등 개발도상국들의 거의
모든 경제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IMF와 세계은행은 차관 제공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차관을 받는 나라의 민주주의, 정부의 분권화,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와 같은 사회 제반영역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IMF의 경우 처음에는 통화 평가절하 등 채무국의 국제수지 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만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차츰 예산 적자가 국제수지 불안의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정부 예산과 관련한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국영기업
에서 발생한 손실이 예산 적자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같은 조건까지 내걸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또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관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 지난해 11월 가톨릭·원불교·천도교·개신교·불교 등 5대 종단 성직자들로 구성된 종교환경회의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 졸속 비준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한·미 FTA가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은 반복음적 협정이라고 역설했다.
4. FTA 사례와 징후
- 멕시코
미국은 WTO체제로는 회원국 전원이 합의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교역 활성화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소수 국가 사이의 양자 간 협정인 FTA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멕시코와 캐나다와 북미주의 FTA를 맺는다.
멕시코의 경우 나프타(NAFTA) 발효 이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미국 및 유럽 기업들의 직접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한·미 FTA를 맺을 때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일 앞세운 논리는 세계 제1의 시장인 미국에 우리 기업들이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경우도 바로 그런 의도로 FTA에 접근했다.
미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멕시코의 수출규모는 나프타 직전인 1993년 518억 달러에서 2005년에는 2127억 달러로 4배 증가했다.
나프타 발효 후 관세감축 등의 효과로 멕시코와 미국의 상품교역은 약 186% 증가했으며, 특히 수출증가율이 수입증가율을 웃돌아 대미 무역수지가 1993년 20억 달러 적자에서 2005년 650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1993년 44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2004년 166억 달러, 2005년 178억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외환 보유고도 687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렇게 외형적으로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는데도 멕시코의 노동자·농민의 생활은 갈수록 악화됐다.
심각한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 저성장, 이농현상, 초국적 기업의 지배력 강화, 불법이민의 증가, 마약밀수 등 심각한 폐해가 드러났다.
나프타 발표 이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전체 수출에서 미국시장 비중이 85~90%를 차지하였고, 수입품의 85%는 미국에서 들어왔다.
즉 멕시코는 미국시장을 위한 노동집약 생산기지로 변한 것이었다. 멕시코 기업은 수출 1위부터 6위까지 국영석유회사 하나밖에 없고 다 미국계 기업이었다.
미국기업들은 자기네 부품을 타지역에서 멕시코로 수입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하고 수출이란 이름으로 가져갔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대미 무역수지 흑자 650억 달러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의 초국적기업이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이는 멕시코가 초국적기업들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 노동자들의 평균 실질임금은 떨어졌다.
나프타 발효 후 2005년 말까지 멕시코 제조업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68%나
증가했는데도 노동비용은 31% 감소했다.
기업의 이윤은 크게 늘었지만 노동자 몫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멕시코 중앙은행이 집계한 연도별 1인당 GDP 증가율을 보면, 1994년 이후 2005년까지 연평균 1.43% 성장에 그쳤다.
OECD평균 GDP를 100으로 봤을 때는 1990년에 37.7에서 2002년 35.7로 오히려
하락했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고질적인 빈부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노동자 농민의 생활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저성장 원인은 나프타 이후 멕시코 내부의 산업연관 체계가 무너진 데 있다. 대기업과 외국 기업들의 수출이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이들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만 활용할 뿐 대부분의 원·부자재와 부품을 중국 등 멕시코 이외 지역에서 들여온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의 내수제조업, 중소기업, 농업 등에서 대규모 도산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무역의 대미의존도는 85~90%로 치솟고 금융업의 90% 이상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실제로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발효 뒤 2002년까지 50여 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농업부문에서 1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이 기간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 도시 자영업, 농민 등 개방에 취약한 계층들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경제의 침체로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도 떨어졌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통계로도 2005년도 신규취업자 10명 가운데 7명이 비정규직이다.
절대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인구도 전체의 31%에 이른다.
멕시코의 경우 나프타는 외형적 경제수치로는 성장을 가져왔지만, 그 수치는 속 빈
강정이었고 국민의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뜨린 셈이다.
- 캐나다
캐나다는 나프타 체결 전인 1989년에 이미 미국과 CUFTA(쿠프타)를 체결했다. 이 쿠프타 이후 캐나다 산업 전반이 구조 조정되면서 비정규직과 비공식노동이 꾸준히 증가했고, 실업률은 7.8%에서 11%로 높아졌다.
사회복지 지출은 1993년에는 21.6%였다가 2001년에는 17.8%로 떨어졌다.
쿠프타 발효 후 캐나다 정부는 실업급여, 노후연금, 의료 및 교육재정을 대폭
삭감했다.
캐나다 농가부채는 1989년 225억 달러에서 2001년 442억 달러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1988년 이후 2002년까지 5만 명의 캐나다 농부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을 등졌다.
캐나다에서 쿠프타와 나프타가 발효되면서 11%의 가족농이 농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사스카츈, 알버타, 매니토바풀스, 곡류생산자연합 등 캐나다의 4개 주요 협동조합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아처다니엘스가 높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아그리코어유나이티드로 통합 합병되었다.
사스카츈휘트풀과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카길이 서부지역 곡물의 75%를 통제하고 있고 아처다니엘스는 캐나다 밀가루 제조시설의 50%에 달하는 지배권을 갖고 있다. 콘아그라는 캐나다 맥아제분 공장의 64%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카길과 육류가공업체인 IBP는 캐나다 전체 육류포장공장의 2/3를 소유하고 있다.
-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외채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IMF는 1999년, 1억3800만 달러의 융자를 결정하고 대신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 중에 공기업을 매각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여기에는 코차밤바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같은 해 세계은행은 볼리비아가 구조개혁을 완수하려면 확실한 재정 지출 삭감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코차밤바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일체의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권고했다.
엄청난 압력 속에 볼리비아 정부는 결국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시설을 매각하기로 하고 입찰을 개시하였다.
이 입찰에 뛰어든 회사는 ‘아구아스 델 투나리’ 하나뿐이었고, 결국 2만 달러도 채 안 되는 헐값에 상하수도 시설권이 이 회사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 회사는 벡텔이 100% 소유한 자회사인 IWL(International Water Limited)가 55%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벡텔의 손자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벡텔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따낸 지 단 1주일 만에 수돗물 가격을 급격하게
인상했다.
당시 볼리비아의 최저 임금은 월 70달러 정도였는데, 한 달 물값이 20달러를 넘게
되었다.
다음 해 2000년 2월 상하수도 사유화를 취소하고 벡텔의 시설 운영권을 빼앗을 것을 요구하는 대중봉기가 일어나 시내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볼리비아 정부는 4월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다.
4월 10일 정부는 민중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서약했다.
벡텔도 상하수도 운영권을 빼앗기고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이에 벡텔은 1992년 네덜란드와 볼리비아가 맺은 양자간 투자협정의 ISD(투자자-국가직접소송제)를 근거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6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벡텔과 자회사가 볼리비아에 지출한 내용은 100만 달러가 채 안 된다.
- 미국
● 미국의 FTA 사례
- 76만여 개 일자리 사라지고 4만여 개 농가 갈 곳 잃어 극소수 자본가 고수익 얻을 때
중산층 무너지고 빈곤층 급증 -
미국에서는 나프타 체결 이후 10년 동안 전체 3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 중 6분의 1이 사라졌다.
높은 임금과 연금을 받던 제조업 노동자들이 예전에 받던 임금보다 23~77% 줄어든 새로운 일자리를 서비스부문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일자리에서는 연금이 거의 없었다.
나프타는 미국인의 75%를 차지하는 대학졸업 미만의 인구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에 변화를 줌으로써 수백만 미국 가계의 경제적인 안정을 파괴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미 2000년까지 나프타로 인해 미국에 있던 76만6000개의 일자리와 고용기회가 사라졌다.
나프타 발효 이후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이전하기가 쉬워지면서,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및 연금 인상요구에 대해 생산시설 이전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할 때 이런 위협은 더욱 심해졌다.
코넬대학교의 한 연구에서 400개의 노동조합 인정 캠페인을 조사했는데, 이동 가능한 산업(제조업, 통신업, 도매/유통 등)의 사업장 중 68%에서 공장 이전 협박이 있었다.
농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연구에 따르면, 1995~2002년 사이 미국에서는 3만8310개의 농가가 사라졌고, 2000~2005년 동안 남아 있는 농가의 76%가 가계적자를 면치 못했다.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그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재앙’의 맞은편에는 반대급부를 챙기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소수 거대기업농이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장악했다.
미국의 상위 3개 기업인 카길, 아처대니얼스, 젠노는 미국 옥수수의 80% 이상을 수출했다. (이는 1990년보다 9% 올라간 것이다.)
4위권 안에 드는 닭 관련 기업이 미국 가공생산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타이슨푸드는 육류포장업체인 비프아메리카와 합병해 소, 돼지, 닭 생산관련 세계
최대기업이 됐다.
또한 무역자유화로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 노동자들이 12.2%의 임금손실을 입은 사이에 미국 기업의 이윤은 1990년대에만 88% 상승했고, CEO의 보수는 463% 상승했다.
FTA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하려던 미국에서조차 이렇듯
극소수의 자본가들은 엄청난 고수익을 누리는 반면, 중산층이 무너지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급증하면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해 1%를 위한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함을 부르짖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최첨단 업종인 금융업이 이룩한 최근의 행태(전통적인 여신 관리에 머물기보다는 파생상품 등을 통한 자본의 투기적 운용으로 금융시장을 교란, 왜곡하여 단기간에 거액의 수익을 올리고는 뒤로 빠지는 행태)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세계
경제의 건전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가를 입증해 주었다.
한국 정부는 FTA를 추진하기 오래 전인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기반하여 ‘자발적 자유화 조치’라고 일컬어지는 국내법에 의한 자유화,
시장화를 추진해 왔다.
이것은 IMF 관리 사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IMF가 강력히 요구한 구조조정의
방편이었다.
이후 공기업의 민영화가 꾸준히 추진됐다.
- 공기업 민영화
● 공기업 민영화의 폐단
- 다른 나라 사례 살펴보면 민영화 후 물·전력 등 요금 폭등 공공서비스 사유화로
인한 안정적 공급구조 해체 우려 -
초국적 자본은 물산업 진출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세계 곳곳에서 물을 사유화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이미 전국 167개 지자체가 운영하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넘기는
형태(민간위탁)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논산, 사천, 예천, 정읍 등에서 민간위탁이 실시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공기업이기 때문에 민간위탁은 사유화가 아니라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FTA 논리로 보면 공기업이라 하더라도 사기업과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순간
더 이상 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내국민대우 원칙
적용대상이 되면서 전면적인 사유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물산업 전반에서 상수도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수도, 공업용수 처리, 건축과 토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미 국내 물산업에는
사적-초국적 자본이 진출해 있다.
1997년 하수도 분야 민영화 실시 이후 전체 하수처리장의 57%(207개소 중 118개소)를 사적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물 사유화 사례
인도네시아 :
자카르타 수도가 사유화되고 초국적기업에 넘어가면서 수도요금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연평균 35% 상승했다. 사유화 당시 노동자 1000여 명이 정리해고됐다.
우루과이 :
2000년부터 물 사유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수도요금이 10배 폭등했고 수질은 악화됐다. 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 발생한 손실을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볼리비아 :
코차밤바 지역의 물을 사유화하고 초국적기업에 넘긴 이후 수돗물 값이 30배
폭등했다.
남아공 :
1994년부터 지자체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고 사유화가 시작됐다. 1994~96년까지
요금이 600% 인상되고 1000만 명 이상에 대한 물 공급이 중단됐다.이렇게 수도, 가스, 전기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한 사회공공성의 영역은 현재 매각이나 시장개방이
진행 중이다.
가스, 수도, 전기를 팔지 않는다는 정부의 말은 진실이 아니며, 한·미 FTA는 자발적
개방을 이미 시작한 공동서비스 산업의 완전 개방을 촉구하는 형태로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
▶전력산업의 사례 :
1999년 전력산업 사유화의 일환으로 안양, 부천 열병합 발전소가 매각되고 나서 해당 주민들은 30~40%의 급격한 요금인상을 경험해야 했다.
SK가 소유하고 있는 포항도시가스는 민영화 이후 요금이 12% 급등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미국에서는 전력가격의 급등과 정전사태가 빈발했다.
대규모 정전사태 발생으로 급기야 5월 22일 캘리포니아는 긴급사태를 선포했으나 이미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전력공급 중단사태에 놓여 있었다.
사고가 지속되면서 전력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2000년 6월 11~15일 5일 동안 샌디에이고 지역의 소매 전기요금이 무려 270% 상승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2001년 1월 중순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서 18일에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프리몬트,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에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비상국면은 2주나 지속되었다.
당시 도매요금은 약 10배나 인상됐고, 피크타임에는 무려 30배까지 급등했다. 2003년 8월에도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캐나다의 온타리오, 토론토에서도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민영화로 인해 전력의 안정적 공급구조가 해체되기 때문이다.
전력이 생산돼 일반 가정에 공급되기 위해서는 발전-송변전-배전이라는 시스템을 거친다.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한국 정부는 분할매각 방식을 택했고, 배전 분할은 중단됐지만, 발전은 화력 5개사와 원자력 1개사로 나누어졌다.
현재 한국의 전력공급 구조는 발전 분할만으로도 전력산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로지 팔기 쉽게 분할한 현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연계됐던 수직-통합적 시스템을 점차적으로 붕괴시키면서, 발전사 간 허구적인 경쟁구도를 창출했다.
전력산업에서 나타나는 작은 사고가 커다란 광역정전, 소위 블랙다운 사태로 급속히 퍼질 수 있다는 점은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발전-송전-배전 체계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장사태 등 비상사태가 발행할 경우 고장의 원인 자체가 복합적이어서 책임을 가리기 어렵다. 발전회사에는 계획예방정비라고 2~3년에 한 번씩 기계를 다 뜯어보고 점검하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생산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발전회사를 5개로 쪼개 서로 경쟁시키면 운영비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중요한 유지, 보수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
50일 동안 해야 할 계획예방정비를 비용을 줄이기 위해 30일로 줄이고, 2년에 한 번 할 것을 3~4년에 한 번하여 비용을 줄인다.
결국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정전사태(2006년 제주도와 여수의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
▲ 지난 2010년 12월, 가톨릭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가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 농민 결의대회를 열고, 쌀 대란 대책 수립·FTA 추진 중단 등을 촉구했다.
한·미 FTA로 인해 농민들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 국제통상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
- 주교단의 가르침
● 피해국가 주교단의 관련 성명
- 국민 생명·재산권보다 국제기업 이윤 챙긴 점 비판 경제적 인간관에만 바탕 둬
개인·민족의 존엄에 큰 피해 -
▶멕시코 주교단의 NAFTA에 대한 성명(2008년 2월)
멕시코 주교들에 의하면 나프타협정 하의 농산물 관세 철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농민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내몰리거나, 미국 국경을 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들은 불법마약의 원료가 되는 작물을 생산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고 이는 폭력과 범죄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멕시코 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세상의 어떤 시스템도 죽음을 초래하는 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결코 전례거행이나 형식적인 설교의 틀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기적인 안락함과 수동적 자세에 머무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 나서도록 촉구한다.”
▶캐나다 주교단
NAFTA를 맺은 지 8년 되는 해에 캐나다 주교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캐나다에서는 공해산업의 피해에서 자국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미국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미국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써 벌금을 물거나 캐나다 국내의 환경보호 조치를 해제해야 했다.
주교단은 결국 NAFTA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보다 국제기업의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의 미래 환경을 팔아넘긴 셈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캐나다·라틴아메리카교회의 성명
2002년 1월 28~30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3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들은 세계경제, 국제통상, 환경과 노동 전문가들과의 합동 회의 후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NAFTA의 11장에 의해 국민들의 환경, 건강, 그리고 여타 사회적인 가치를 지켜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사기업의 이윤과 충돌할 때에 지대한 제약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했다.
2001년 4월 4일 캐나다 주교회의는 퀘벡에서 열린 미주 대륙 정상회의에 즈음해 정상들을 향한 성명을 발표했다.
캐나다 주교들은 각국 정상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전제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경제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국제적인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했다.
“경제통합 그 자체가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익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도 동반한다. 각 국가의 공식 기구들도 미주 대륙의 국가들 안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수입의 큰 차별과 가난을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의 삶이 갈수록 더 불안하고 불평등한 사회로 바뀌고 있으며, 미래의 행복을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캐나다 주교단은 미주 대륙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통합 정책이 지닌 부정적인 전망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진 체제가 더욱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순전히 경제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이 체제는 수익과 시장 법칙들을 유일한 지침으로 여기며, 개인과 민족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엄과 존중을 해치고 있습니다.
…공정하지 못할 때가 많은 특정한 정책과 구조들의 희생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가장 좋은 대응책은 참된 정의를 얻을 목적으로 연대와 평화를 증진하는 것입니다.”(아메리카 교회, 56)
캐나다 주교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나프타를 통하여 가난한 이들이 그 낙수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는 오직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달려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나프타를 통하여 대체 누가 득을 보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북쪽 나라에 본부를 둔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다.”
- 교황들의 가르침
● 역대 교황의 가르침은
경고 투자에 도덕적 원칙 적용 당부 -
교회는 예로부터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만 재산권이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왔다.
교황 비오 11세는 사유재산권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사회 경제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재화는 모든 사람의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다수의 개인과 사회 계급들에게 분배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전체 사회의 복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 정의에 관한 이러한 원칙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이윤의 분배에서 배제하는 것을 금한다.’(비오 11세, 사십주년 27)
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공동선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지 무제한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대 교황은 거듭 지적해 왔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자유도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지닌다.
국제 교역에서 있어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선진국과 동등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 교역이며 국가 간의 빈부격차를 갈수록 격화시키는 길임을 교회는 일찍부터 호소해 왔다.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들은 주로 공산품을 수출하지만 저개발 국가들은 원료나 농산물 외에는 수출할 것이 없다.
공업화된 국가들의 제품은 진보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시장도 쉽게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저개발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일차 산업의
상품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 때문에 공업 제품의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 따라서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교황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7)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에 이미 국제교역에 있어서의 경제정의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키며 선진국들의 부의 독점과 편중을 엄중히 경고했다.
그 시대는 FTA가 아직 거론되지도 않은 시기였지만, 국가 간의 통상 현실에는 이미 오늘날의 FTA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에 있어서) 두 가지 저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 지키고 선진 국가들 간에서 허용되는 동일한 거래 원칙이 선진국 대 후진국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쟁 시장을 아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공정하고 도의적인, 따라서 인간다운 것이 되게 하는 방법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들 사이의 통상 관계에 있어서는 조건이 너무나 다르고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국제 무역에 있어서 경쟁자들에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정하고 평등한 이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들의 발전 61)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세계화의 조류에 편승한 신자유주의 경제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부가 절대 수치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불평등도 증대하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층이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고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진리 안의 사랑 22)
교회는 시장에서 있어서의 투자가 언제나 경제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 왔다.(백주년 36)
국가 간의 투자도 마찬가지여서 선진국의 잉여자본이 개발도상국에 투자될 때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도덕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함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본이 형성된 방식과 자본이 생성된 곳에서 사용되지 않을 때 개인들에게 미칠 피해를 마땅히 고려하여, 정의의 요건이 지켜져야 합니다.
오직 단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여, 기업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실물 경제에 주는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또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활동을 적절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증진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투기적으로 금융 자원을 사용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40)
“세계화는 선험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사회학술원 연설, 2001.4,27)
세계화 현상과 함께 전 세계의 경제를 주름잡아온 신자유주의 경제관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모든 종류의 관세 장벽과 규제의 철폐를 압박하며 시장자유화를 추진해왔고, 오늘날 우리 정부가 각국과 맺으려고 하는 FTA는 그러한 시장자유화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제통상전문가들은 FTA를 맺음으로써 서로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TA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가 외형상의 경제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극소수의 대기업과 자본가들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무한경쟁의 구도 안에서 안정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민의 과반수가 임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최저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한 복지 혜택도 못 받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것도 힘든 가혹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관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복음이 명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모든 사회활동에서 최종적인 기준으로 공동선을 가르쳐온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을 고려한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FTA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자명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강우일 주교(주교회의 의장)
▤ 강우일 주교는…지난 2008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주교회의를 이끌고 있는 강우일 주교는 취임 첫 마디로 생명과 환경 문제를 꼽을 정도로 창조보전 활동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목자다.
한때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명동 집무실까지 걸어 다닌 일화를 남기기도....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74년 사제품을 받은 강 주교는 85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면서 사목 비전 창출에 힘을 쏟아온 사목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사무총장을 맡아 대회 기본 정신인 ‘한마음한몸운동’을 교회의 내적 성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또, 1992년 소공동체운동을 도입해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교회에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2002년 7월 제4대 제주교구장에 임명된 강 주교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제주교구를 어느 지역교회 못지 않은 역동적인 곳으로 일궈나가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으로 발걸음을 한 4대강 공사현장,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 등 교회 안팎에 남긴 족적들은 그의 사목적 비전에 바탕한 예언자적 선택의 길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