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집”에서 한잔할까요?
대전역 앞 별난집
두부두루치기와 막걸리 빼놓고는
별난 것 하나 없는 집
낡은 벽 곳곳에
메마른 허기와 피곤과
찐득찐득 땀 냄새와
흐물흐물 흐느낌과 풀죽음과
막된 울분과 핏발 선 눈망울과
한껏 차오른 서러움이
가득 배어 있는 집
그런데도 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끄는 집
참 별난 집
- 졸시 “별난집” 전문
대전에는 “별난집”이 있다. 두부두루치기와 녹두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파는 집이다. “별난집”이 있어 내 이십 대가 외롭지 않았고 삼십 대가 가난하지 않았으며, 사십 대가 정겨웠고 오십 대가 넉넉해지고 있다. 보잘것없는 내가 이렇게 큰 복을 받고 있으니 별난 집이 분명하다.
내가 “별난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대전지방철도청으로 발령받아 대전역 근처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지금도 매양 그렇지만 대전역에서 보아 서쪽인 은행동은 활기가 가득한 청춘의 거리였고 동쪽인 정동과 중동은 한물 간 노년의 거리였다. 대전역에서 나와 뒷골목을 걷노라면 낡고 오래된 문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들의 쉬었다가라는 약간은 애처롭고 조금은 늘어진 눈빛이 어김없이 다가왔고 큰 길을 건너 걸을 때도 길지만 희미한 그림자처럼 힘없이 그러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외면하지도 못하고 따라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 눈빛들에게 희미한 웃음을 던져주고 마침내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처럼 나를 편안하게 반겨주던 “별난집”. “전과 동”이라고 한 마디를 날리면 어김없이 두부두루치기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주전자가 나오고 그때부터 나는, 또는 우리는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면 되는 것이었다.
“별난집”의 주 요리인 두부두루치기는 투박하지만 칼칼하고 매콤하면서도 고소하다. 어느새 대전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한 두부두루치기는 좀 더 중심가에 있는 광천식당이나 진로집 등이 좋다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서슴없이 “별난집”에 엄지를 세운다. “별난집”의 두루치기 맛이 다른 식당에 비하여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작은 공간에 우리네 삶의 흔적이 빼곡히 담겨있기에 그렇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 노동의 땀을 씻어내는 중년의 허름한 사내들을 만났고 아직 푸르스름한 어린 연인들의 설레는 눈빛도 보았다. 오랜 해직 생활을 끝내고 복직한 철도노동자 형과 함께 새로운 내일을 꿈꾸었고 동구청장 후보자를 만나 서민의 삶을 다독거려달라는 말씀도 건넸다. 또한,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직장의 선후배들,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는 그 동료들과의 많은 만남이 “별난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지금도 멀리 있는 것들에 대한 환상을 접지 않고 있으나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옆에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보잘것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아도 끈질기게 버티며 오롯하게 생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내 옆에 있는 한 나는 “별난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막아서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자주 가는 술집이 한두 곳쯤 있겠지만 대전에 오면 대전역 인근에 있는 “별난집”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별난 것 하나 없다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 가만 앉아 막걸리를 들면서 낮고 작은 것들의 오래된 힘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혹시 술값이 없으면 나이 드신 어머니의 대를 이어 술청을 지키는 멋진 젊은이 황호진 군에게 내 이름을 대고 기꺼이 외상을 하시라.세상살이가 아무리 팍팍하고 신산하다 해도 그 정도 인심을 베풀지 못하는 대전이 아니다.
작가들이여, 서로 따스하게 눈빛 나누며 찐득찐득 땀 냄새와 흐물흐물 흐느낌과 풀죽음과 막된 울분과 핏발 선 눈망울과 한껏 차오른 서러움을 함께 다독여보자. 우리들의“별난집”에 가서.
- 한국작가회의 회보 120호(2019년 7월)
첫댓글 별난집 찾아가 보겠습니다. 형님을 이곳에서 만나면 더 좋구요...
거기서 한잔 하자구, 언제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