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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핏파이어그릴' (THE SPITFIRE GRIL)
날짜 : 2007년 5월 12일 3시 // 6월 6일 3시 // 6월 12일 8시 캐스트 : 이주실, 조정은, 이혜경, 조유신, 송영규, 최나래, 최진영
Music & Book : 제임스 발크 Lyrics & Book : 프레드 앨리
가사 : 이지혜 음악감독 : 변희석 연출 : 김달중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어찌하다보니, 이 작품은 세번이나 봤는데도 글을 한번도 못썼네요.. 최근에 올려진 작품중에 아주 보기 드물게 따뜻하고, 예쁜 작품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잘만든 무비컬의 한 사례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스핏파이어 그릴'에 대해서 몇자 끄적여 볼까 합니다. ㅎㅎ
김달중 연출님이 프레스콜때 이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었죠.. "한마디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인거 같아요. 사람들이 살면서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실은 자기가 아픈 건 자기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사람들하고 부딪쳐서 그것이 치유되고, 용서되고.. 그런 이야기인거 같아요." 라고... 사실 그렇잖아요. 자신의 상처도, 자신의 결함도.. 스스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죠.. 자신한테 얼마만큼의 결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그런 상처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상대에 대한 아량과 관용도 거기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구요. 물론, 상처를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선으로 그렇게 자신안에 갇혀 있는 인물들을 보듬어 주면서 그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이 작품은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와 쉘비, 펄시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화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명의 여성들을 묶어주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문제점이구요. 한나에겐 장래가 촉망되었던 아들이 있었지만, 그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후, 사람들을 피해 산에 숨어 삽니다. 아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모른 척 하면서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는 한나와 일라이의 관계는 정상적인 모자의 관계라고 볼 수 없겠죠.. 쉘비는 가부장 제도의 완벽한 남편 밑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기죽어서 지내는 아내의 역할을 하고 있구요. 펄시는 자신을 성폭행한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서 5년 동안 있다가 가석방으로 길리앗으로 오게 되고.. 그녀가 마을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 그냥 여기까지라고 느낍니다. 날마다 치사량의 독을 먹으며 생이 중족이든, 죽음이 중독이든 상관없이 그냥 끝이라고.. 여기까지라고.. 더 이상 아무런 계획도 없는 것입니다. 아마 펄시도 감옥에서의 5년 동안 그랬을테죠.. 5년인지, 50년이었던건지.. 죽은 채로 숨을 쉬어 온 그 시간이 마치 영원 같았던 5년이라고 기억하는 그녀이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계속되었다면.. 아마도 정말로 끝이 오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다행히도 그녀는 교도소의 한 여행 책자에서 길리앗의 숲을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새출발을 위해서 길리앗으로 오기로 마음먹게 되는 거죠.. 극의 오프닝 장면에서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펄시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정말 좋거든요. 그녀가 지나온 죽어 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과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새 삶에 대한 설레임이 한껏 묻어나는 매력적인 곡인거 같아요. 그동안의 뮤지컬 넘버에선 볼 수 없었던 포크 스타일에다, 꺽기 창법도 그렇고 처음 들었을때는 정말 독특하다...는 느낌 정도였는데.. 공연을 볼수록 넘버들이 다 너무 좋더라구요. 한곡 한곡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곡들이라서... 듣고 있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더라구요. 가사도 하나하나 너무 예쁘고 말이죠.. ^^
이 작품에서 남성의 부재는 마치 사건을 유도하는 결핍 사유처럼 등장합니다. 어머니에겐 아들이 부재하고, 아내에겐 남편이 부재하고, 딸에겐 아버지가 부재하는 상황인 것이죠.. 그래서 극중에서 그나마 몇 안되는 남성 캐릭터들은 아주 희미하거나 존재감이 거의 없죠. 쉘비의 남편인 케일럽도, 보안관이자 가석방 감시위원인 조도... 사실 좀 바보같고, 설득력없고.. 가끔은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이거든요. 극속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여성들의 필요가 닿는 부분에서만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덕분에, 진지하고 잔잔한 극속에서 유일하게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드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세 명의 여자들에게만 효과적으로 집중된다는 점에서 그닥 그에 대한 아쉬움은 미미한 편인거 같아요.
펄시의 등장으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은 점차 변해가고.. 타인에 대해서 방패처럼 가지고 있던 벽을 어느 정도 허물게 되죠.. 이 작품의 인물중 가장 많이 다치고, 외적으로 불신이 가득하던 그녀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일라이와 케일럽은.. 가야 했는데 가지 못한 비겁함과 가고 싶었던 길을 가지 않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겉으로는 방어벽을 쌓던 인물들인데요. 이들 또한 펄시를 통해서 어머니와, 아내와..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를 하게 되는 것이죠. 너무나 다른 사람들끼리 부딪쳐서 감정들이 치유되고 용서되는 과정이 정말 예쁘게 잘 표현된 작품인거 같아요.
이 작품을 창작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간혹 있던데.. ㅋㅋ 아쉽게도 그건 아니구요.. 원작 영화가 있고, 그걸 토대로 잘 만들어진 무비컬의 형태로 공연이 올려졌었던 작품을 라이센스로 올린 거랍니다. 그러니, 요즘 처럼 말도 안되는 무비컬들이 많이 올려지는 시기에... 이 작품이 굉장히 훌륭한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꺼 같아요. 제작자들이나,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눈을 좀 높여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살작 드는군요.. ㅎㅎ 원작 영화에선 펄시가 죽게 되고,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변화하는 걸로 끝이 나는데 반해서.. 뮤지컬에서는 펄시가 무고하게 죽지 않고, 이들 세명의 여자들이 여성 연대의 힘을 깨달아서 변화된 듯한 분위기가 더 잘 나거든요. 게다가 영화를 봤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조와 펄시가 숲을 바라보던 장면을.. 조그만 소극장 무대안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잘 표현해내었죠. 조명과 배우들의 시선과 넘버만으로 마치 숲을 바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누군가는 무대 변화가 없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저는 굳이 잦은 무대 변환으로 산만하게 만드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공간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을 길로 만들어서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특히나 작품 후반부, 일라이를 통해서 구원(?)받는 펄시를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햇빛 효과 조명을 비롯해서.. 곳곳에서 조명 사용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
이 작품에서 특히나 가장 박수를 보내고 싶은 부분은, 조정은씨의 변신인데요. 그녀가 그동안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는.. 일면 공주과의 역할들이 대다수였잖아요. 미녀와 야수, 로미오와 줄리엣 정도를 봤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그닥 호감가는 배우가 아니었었구요. 그랬던 그녀가 거친 목소리에, 퉁명스런 태도, 상처를 받아서 타인에게 배타적인 모습만을 잔뜩 가지고 있는 펄시역에 이렇게 잘 어울릴꺼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게다가 자신의 원래 목소리를 과하게 눌러서 발성법을 바꾼 것 또한 포크 스타일의 넘버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더라구요. 정말 그동안은 그런 생각을 한번도 못했었는데, 조정은씨 목소리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ㅎㅎ 이주실씨는 나이많은 역할을 딱 그 나이대의 배우가 맡았을때만 보여줄 수 있는 깊이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계시구요. 사실 첫공연때는 그녀의 노래 실력때문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공연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차츰 아쉬운 노래 실력보다 연기에서 더 감정적으로 공감을 이끌어내주셔서 노래 실력정도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되더라구요. 그리고 이혜경씨의 쉘비는 다소 답답하고 바보같아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너무나 착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해 내어 주더라구요.
물론,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고, 엄청난 클라이막스가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루즈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꺼 같긴 합니다. 워낙 잔잔하고 따뜻한 작품이라서... 어쩌면 지루하게 볼 수도 있긴 한데... 이건 극의 감상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극복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두려워하고, 움츠려져 있는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거려 줄 수 있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꺼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울고 있는데, 같이 우는 것은 사실 동정이거든요. 그건 공감과는 분명히 다른 감정이죠. 동정으로는 울고 있는 누군가를 치유시킬 수가 없거든요. 공감만이 삶의 안내자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잖아요. 공감이란, 누군가가 울고 있을때 슬그머니 티슈를 집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거라는 걸 기억한다면.. 이들의 상처에 마음이 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극중 인물처럼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흔치 않거든요. 저 또한 그들처럼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런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꺼 같다고 공감하는 것이구요. 극적 잔재미나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바라지 말고, 한발자국만 멀리 떨어져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그럼.. 아마도 내 안에 있는 상처 마저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