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동안 5만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짖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불렀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 재회하고 싶은 마음처럼 절절했다. 염불스테이 기간 동안 동산법당의 공기는 뜨거웠다. |
▲ 염주를 돌리거나 겹겹이 감은 손. 손등에 패인 주름 안에는 저마다의 간절함이 깊게 고였다. |
髻相), 발감유리상(髮紺琉璃相)으로 시작해 진금색인 아미타 부처님의 몸과 좌대인 연꽃까지 마음에 담았다. ‘나무(南無)’를 먼저 부르고 아미타불로 끝맺으면서 귀의하겠노라 수십번씩 마음을 다했다. 정수리부터 나발, 눈썹 사이, 눈썹, 눈, 귀, 코, 입을 통틀어 부처님 상호를 하나씩 마음에 새겼다. 문종순 동산 기획실장이 힘을 실어 한 마디 더했다.
“번뇌와 맞써 싸울 시간에 차라리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고 마음에 새겨라. 끊임없이 부처님을 부르고 마음에 새길수록 내 마음은 부처님을 닮아간다.”
“나무아미타불”에 몰입하던 염불행자들은 ‘거리의 성자’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주는 순간 단 한 번 염불로도 성불의 길이 열린다고 믿은 거리의 성자 잇펜 스님. 잇펜은 1289년 8월23일 51세 일기로 정토에 들기까지 끊임없이 걷고 춤 췄으며 염불의 공덕을 알렸다. 그는 일본 90대 천황 가메야마의 배우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 몸이 죽고 사는 무상의 도리를 자각하고 아미타불에 귀의해 단 한 번 나무아티마불을 부른 뒤에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마음도 거동도 말도 나무아미타불 마음이자 거동이며 말입니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목숨도 아미타불 목숨, 죽어가는 목숨도 아미타불 목숨입니다.”
동산법당에 ‘나’는 설 자리가 없었다.
법보신문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염불,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행”
안동일 전국염불만일회장
그는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재차 언급하며 염불수행을 당부했다.
“깨달음이나 성불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금생에 이뤄지면 다행이고, 내생이나 그 다음 생에 이뤄질 수도 있으니 끊임없이 정진하라.”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