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白華山, 933m)은 모동, 모서와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걸쳐 앉은 상산의 명산이다.
상산지 <고적조>에는, “상서(商書)에 설(契)을 상(商)에 봉하니, 상(商)은 태화(太華)의 남쪽에
있다 하였거니와 우리 주(州) 상산은 백화산의 남쪽에 있다”하였다.
이 말은, 백화산이 명산임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상주가 웅주였던 고려 이전까지만
해도 이 산이 상산의 진산 구실을 했음을 알려 주기도 한다.
이 산은 신라 이래로 국방의 요새로서, 660년(무열왕 7)에는 태종 무열왕이 백제를 정벌할 때 6월 21일 이후 한 달여를 이곳의 금돌성에 머물며 총지휘를 한 곳이어서 지금도 대궐터가 남아있다.
1254년(고종 41) 10월에는 몽고군의 차라대(車羅大)가 이 성을 침공하였으나 황령사의 스님 홍지(洪之)가 이끄는 관민병에 의해 참패하여 주봉인 한성봉(漢城峰)을 속칭 한성봉(恨城峰)이라고도 하니 이는, 차라대가 끝내 이 성을 함락치 못하여 한을 품고 돌아간 데서 비롯되었다. 이 산의 북쪽 자락에 저승골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한다.
또한, 조선시대 임란때에는 이곳의 용추(龍湫)계곡에 향병이 주둔하여 왜적에게 항거하였으며, 그 환란 중에서도 병든 아우(창석 이준)를 업고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하게 한 형(월간 이전)이 있어「형제급난도」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