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연 수요칼럼]
포용과 화합의 정치
변방의 소수민족으로 중원을 장악한 淸나라의 황제들은 늘 이중의 과제를 안고 고심한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지배민족의 정기가 흐려져 漢族으로 동화되는 일을 막는 동시에 대다수 한족의 민심을 사서 영구적으로 청나라 왕조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淸 황제의 존재이유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표는 적어도 300년 가까이 성공했으며 그러한 토대는 강희제에서 건륭제에 이르는 소위 강건성세기에 대부분 이루어진다.
강희제는 만주족과 한족간의 민족적 화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 전국적으로 만주족과 한족의 고유한 먹거리들을 모아 올리도록 지시하여 108가지의 음식을 최종 선발해 차려 놓았다. 그리고 이 음식들이 차려진 자리에 만주족 출신과 한족 출신 관료들을 함께 불러모아 대연회를 연다. 이것이 이름하여 그 유명한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강희제가 만한전석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한마디로 음식의 나눔을 통한 민족간의 화해와 통합이다. 아무리 서로 으르렁거리고 싸우다가도 먹는 자리에 와서는 서로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서문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만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그토록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일까?”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로마인의 강점은 ‘개방과 포용’이다.
로마인은 결코 단일민족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의 우산 아래 들어오고 싶어하는 민족이 있으면 언제든 받아주었고, 일정 기간만 흐르면 로마 시민과 동등한 시민권을 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원로원 의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했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개방과 포용정책에 관한 연설을 듣고 찬성으로 돌아선다.
로마는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 피를 흘렸지만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었다. 로마는 ‘개방과 포용’으로 천년 제국을 일구었고, 이 두 가지 미덕을 잃어가면서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허구한 날을 특검 정국으로 소일하는 정치인들에게 ‘포용과 화합’은 기대난망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정치도 AI로 대체하는 것이 비용과 능률의 차원에서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분열과 대립보다는 포용과 화합을, 이념의 주장보다는 애로를 경청하고,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십이 발휘될 때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정과 국가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전술은 우승을 만들지만 철학은 왕조를 만든다-필 잭슨
2024년 6월 5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