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자기 사랑
(딤후3:1-5, 2010.08.22, 주일예배)
설교의 단상
제가 요즘에 성경의 어느 한 본문에만 집중하는 설교를 하지 않고…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서 좀 뼈대를 세우는 그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좀 부담스럽게 하고…때로는 여러분의 마음을 아주 “덜컹”하게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저 좀 편하게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내용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설교를 그렇게 오래하지는 않고…아마 다음 주부터는 예전의 그 은혜 위주의 설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저는 설교를 아주 급진적인 것부터…그래서 우리 한국교회의 패턴에 아주 익숙한 분들은 좀 소화하기 어려운 그런 것부터…여러분이 그렇게 큰 부담 없이 아주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까지…제가 이런 여러 가지 설교를 다 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다 할 수는 있어요. 그것은 제 인생 경험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나간 경험
저는 아주 연약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좀 고생을 하게 해주시고…그런 반면에 진리에 대한 갈증은 또 너무 많아서…저는 평생을 하나님의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제 안에는 우리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신앙패턴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부터 시작해서 아주 메마른 교리적인 형식주의에 이르기까지…또 우리 한국교회가 잘 알지 못하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성경원전 연구에 이르기까지…제 안에는 이런 여러 가지 신앙경험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기를 이제 27년째…그러니까 제가 예수 믿은 지 이제 27년이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제가 우리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신앙패턴을 놓고 고민한지가 벌써 27년이 되었는데…그래도 저는 하나님이 주신 이 성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결국 저는 저기 달동네에 있는 일반 대중들을 끌어안고 제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싶은…그래서 이 땅의 많은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좀 경험하고 싶은…그런 생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신학으로 사람들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삶으로…그저 삶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죠.이것은 제 사역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방향을 결정짓는 그런 포인트에요.
미래의 고민
그런데도 아직 이 고민이 다 끝나지 않은 것은…아직도 저를 잡아당기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고…저의 제일 큰 고민은 기독교교육에 대한 미련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느냐…또 제가 우리 한국교회에 다가가는 강도가 도대체 어느 정도 쯤 돼야 하느냐…이게 잘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소정교회를 그만하고 여러분과 함께 어느 한 교회를 부임해서 가면…물론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또 제가 어떤 기독교 교육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서 가면…저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설교도 많이 달라지는데…제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은…하나님이 주신 가장 높은 수준의 신앙…즉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충족성을 경험하는 그런 높은 수준의 신앙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소수가 가는 길을 갔기 때문에…여전히 일반대중을 좀 품고 싶은 저에게는 이것이 잘 맞지를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런 의식으로 저를 자꾸만 부르고 계셔서…이게 도대체 어떻게 조화가 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소수가 가는 길이 대중적인 영향을 끼친 적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매일 매일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지…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아,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고백만 하게 하지…이런 사람들이 무슨 종교개혁을 일으키고…대중들을 하나님에게 인도하고…이런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그래도 저는 이런 의식으로 살아도 우리 일반대중들에게는…그저 그들의 삶에 좀 맞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그런 억지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이제 끝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Go, Go” 즉 행동뿐입니다. 그런데도 제 결정에 따라서 여러분도 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제가 미리 말씀을 좀 드립니다. 제가 추구하는 설교는…우리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은혜와 감동 위주의 설교가 아니라…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그런 자유와 해방 위주의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한번 받으면 금방 또 받아야 되지만…이런 자유와 해방 위주의 설교는 한번 깨달음을 얻으면…그래도 꽤 오래가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자기 사랑
“네가 이것을 알라…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결코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시대가 결코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해요. 제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이 엄청나게 많지만…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게 아니니까…오늘은 제가 이 정도로 하고 그만 넘어가겠습니다.
그 대신 오늘 말씀의 핵심은…요즘 같은 이 시대가 참 어렵고 힘든데…그 이유가 뒤에 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긍하고, 교만하고” 이런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는데…이 모든 것의 원인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즉 인간의 자기 사랑입니다. 인간의 자기 사랑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에요.
그래서 어떤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기업들이 원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 토익은 물론이고…요즘에 청년들이 흔히 말하는 ‘실무경력’까지 좀 갖춰서…드디어 기업에 원서를 냈습니다. 그것도 무려 20군데나 냈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군데도 연락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점점 더 절망을 하게 되고…드디어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원인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청년이 이렇게 망가지게 된 이유가 도대체 뭐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들어서…그래서 젊은 애가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졌다고 말을 하지만…이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오지를 않고…이제 교회 월세는 물론이고 집에 생활비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하실에서 밤을 새워 기도했지만…형편은 별로 나아지지를 않습니다. 이러기를 1년, 2년, 그러다가 이제 3년째 되니까… 이 목사님도 이제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를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이제 택시도 보통으로 해서는 돈을 벌기 힘드니까…신호를 막 위반하고…밤에는 목숨을 담보로 총알택시를 하기도 하고…어쨌든 이왕 돈을 벌기로 했으니까 택시운전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실패의 원인
제가 지금은 아주 점잖은 예만 들었지만…제가 이 강단에 서서 할 수 없는 얘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우리 목사님들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살기 힘들어서 그렇습니까? 예, 그런 것도 일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도 세상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좀 경험해보라고…지금까지 저에게 어떤 물질도 어떤 권세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는 얘기는 그저 철모르는 목사의 얘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모르는…그런 사람의 얘기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뭘까요? 세상이 정말 살기 힘들어서 그럴까요? 그리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고…너무 절망할 일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예, 일정 부분은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부분이 정말 있어요. 그런데도 진짜 원인은 그게 아니라 인간의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의 자기 사랑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는 어떤 선한 일에 도전을 해봅니다. 그러다가 한두 번 잘 안되면 더욱 더 노력을 해봅니다. 그래도 잘 안 되면…그때부터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더욱 더 노력을 해봅니다. 그래도 안 되면…그때부터는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과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런가 하면…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되는데…나를 위해 주지 않는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너무너무 보기 싫어서…그래서 내 이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좀 위로받아야 되는데…어디 위로받을 때가 없고…그래서 내가 그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죄짓는 것 밖에 없어서…그래서 죄의 길로 가는 이 과정이 전부 인간의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인간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전부 다 인간의 자기 사랑 때문에 그래요.
이것은 제가 수십 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인생에 철이든 고2때부터…이 세상에서 한번 성공해보려고 수십 년 동안 잠도 안자고 공부하면서…그래도 나를 성공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 그런 하나님에 대한 원망 때문에…남모르게 수없이 죄를 지으면서 내린 결론이에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고 저를 좀 착하다고 생각하는데…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야곱처럼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믿습니까?
그러면서 제가 한 가지 정말 철저하게 느낀 것은…오늘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자기 사랑이 끊어지지 않으면…우리의 고통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기 사랑이 끊어지지 않으면…우리의 고통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참 슬프지만 엄연한 진실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섭도록 슬픈 그런 진실이에요.
영적인 전쟁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든 원인을…우리 자신이 아닌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영적인 세력들에게 돌립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흔히 쓰는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에 영적전쟁에 대한 책이 무려 45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무려 45가지가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책이 다 사단이라는 공공의 적을 겨냥하고 있지…우리 자신을 겨냥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자기 사랑을 겨냥하고 있지 않아요.
저는 영적전쟁에 대한 책 중에서…사탄의 공격보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사랑이 더 문제라는 책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우리 안에 있는 자기 사랑이…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 책을 저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하면…우리 안에 있는 고통이 절대로 해결되지를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슬픔의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를 않아요.
어떤 사람이 은사 집회에 가서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춤출 듯이 기뻐하다가 집에 와서 뭘 하는가 하면…그 기도의 힘으로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그리고 내 남편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늘 이 땅의 지배세력이 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은사를 아무리 받아도 내 속 사람이 변하지를 않습니다. 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은사를 아무리 받아도 내 속 사람이 변하지를 않아요.
그러면서 은사주의 책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가게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을 보면…“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는 출20:5의 말씀을 인용해서…조상이 무슨 굿을 하거나 점을 치고…조상이 우상을 숭배하면…그 자손도 무려 삼사 대까지 저주를 받는다는…그래서 무슨 암에 걸리고…교통사고를 당하고…그래서 온갖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에 전부 혹해 가지고…이 책의 저자인 메릴린 히키라는 사람이 영동제일교회에 오면…사람들이 전부 “우” 하고 몰려가서…우리 집에 있는 이 저주 좀 끊어달라고…그래서 암 병에서 고침 받고…이름 모를 저주에서 고통 받고…안 되고 망하는 이런 모든 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세상에 이 사람처럼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한국교회 그 누구도 이 구절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어느 날 제가 총신대에서 교육학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기도하는데…하나님이 갑자기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이것이 영적인 저주가 아니라…우리 조상들이 한평생 살아온 삶의 흔적…그리고 우리 부모 안에 내재된 삶의 패턴들이 유전되는 그런 성품의 저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하고 정말 깜짝 놀았습니다. 정말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과거의 유산
그래서 이제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 봅시다. 생명과학에 ‘후성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분야를 무려 15년 동안 연구한 전문가잖아요? 삼성에서 제가 바로 이런 분야를 연구했잖아요? 그런데 이 후성학은 아버지가 가진 음주 습관…그리고 아버지가 받은 인생의 스트레스가 자녀들에게 그대로 다 유전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911사태를 당한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가족들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죽은 그 유가족들 말이에요. 이 사람들 중에 상당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것은 이 사람들이 911사태로 가족을 잃고 난 다음에…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 스트레스를 막는 물질인 항 스트레스 물질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911 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 후성학은…부모가 살면서 무슨 죄악 된 습관을 가지거나…오래 동안 무슨 음주나 흡연을 하거나…또 무슨 스트레스를 받으면…그 부모의 유전자 중에 어느 한 부분이 블로킹 되고…결국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호르몬이 안 나오게 되고…그것이 결국 그 자녀에게도 삼사 대까지 유전되어 결국 똑같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모가 남겨준 어떤 성품이나 자기 사랑의 흔적을 말하지…사탄과 같은 그런 영적인 세력들과 관계돼서…예수 믿는 사람도 그 조상이 우상을 섬기고…성적인 죄를 저지르고…오래 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았으면…그 자손도 이것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대를 이어서 저주를 받는다는…그런 영적인 저주가 아닙니다. 절대로 여러분, 이런 영적인 저주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랑의 교회 옥 목사님은…이『가게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이 우리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을 때…“만약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런 영적인 저주 하나 못 끊는 그런 분이라면…나는 그런 예수님 차라리 안 믿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결국 맞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결코…정죄함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이 메릴린 히키처럼 출20:5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엉터리 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전부 사탄과의 싸움…그래서 우리 외부에 있는 적으로 돌려서 정작 더 중요한 우리 안에 있는 적을 못 보게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사랑을 못 보게 해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적인 싸움이 전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그런 허탄한 것이 되게 해버립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에서 소위 영적전쟁이라는 말을 쓰는 은사주의자들의 문제가…이들이 오히려 사탄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운동은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애 극복
그래서 결국 우리가 아무리 신앙운동을 하고 은사를 추구해도…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인간의 자기 사랑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인간의 자기 사랑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끈질긴 집착을 끊어낼 수 있겠어요? 그것은 매일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매일 우리 자신을 시간마다 분초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우리 한국교회는 또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 한 가지 꼭 조심해야 될 것은…이 십자가가 또 하나의 율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날 이때까지 많은 책을 읽었지만…이단은 딱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이단의 글은 하나 같이 사람들에게 아주 큰 두려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꼭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앞으로 여러분이 어느 모임에 가고 또 어떤 책을 읽든지…그 모임과 그 책이 이단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고 난 다음에…또 내가 그 책을 읽고 난 다음에…내 마음이 아주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느냐…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해방을 누리느냐…바로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그 모임과 책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시금석이에요.
예를 들어서 지난 1992년에 우리나라에 휘몰아쳤던 시한부 종말론을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휴거’라는 말을 제일 먼저 쓴 이장림이라는 사람이…다미선교회를 만들어서 시한부 종말론에 불을 붙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생명의 말씀사에서 미국의 기독교 책들을 번역할 때…제일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이 세상을 완전 철권 통치한다는 것이고…두 번째는 미국에서 이런 영적전쟁에 대한 관심이『엑소시스트』와『오멘』이라는 영화로 대폭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1976년인데…이때부터 준비를 시작한 이장림은 1990년대 초에 권미나와 하방익이라는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서 시한부종말론을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아주 강력하게 역사했던 것이 바로 두려움의 영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짜는 아무도 모르는데 오직 깨어있는 소수만 알 수 있고…이때 휴거되지 못한 사람은 이 땅에 남아서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고통을 당해야 된다고 해서…우리나라 전역에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어떤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그것 때문에 내가 안절부절못하고…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정말 내가 그 사람이 말한 대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단입니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단이에요.
교회 안의 율법
그러나 정말 이단은 아니지만…그래서 이단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지만…정통 교회 안에서도 어떤 설교는…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욱 구속하고…나는 도저히 저렇게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주는 설교가 있습니다. 그 말 자체는 정말 옳고…꼭 해야 되는 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러면 성령이 근심합니다.” 이런 설교가 있습니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옳고 당연히 해야 될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이런 말은 우리를 살리는 말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는 성령이 근심하지 않을 정도의 영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죄를 짓죠. 그리고 늘 불순한 생각을 하죠.
그런데도 우리 한국교회에 이런 생각이 아주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를 좀 안 했기 때문에 이게 안 됐고…내가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를 안했고…또 내가 이래서 생명이 없고…저래서 능력이 없고….’ 우리는 이때 아주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으로 다 넘어갑니다. 율법으로 다 넘어가요.
율법과 복음
제가 오늘 여기서 율법과 복음…그리고 인간의 행위와 하나님의 은혜의 차이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율법은 내가 하는 것이고…은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꿰뚫는 사상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보십시오. 제가 제 성경책 맨 앞에 뭐라고 썼는가 하면…“앞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 즉 성경전체의 독법은…율법은 내가 하는 것이고…은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앞으로 성경은 전부 이런 시각으로 봐야 된다.” 제 성경책 맨 앞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내가…내 힘으로 하나님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또 내 자신의 잘 잘못에 의해서 즉 내 행위에 의해서 어떤 일의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된다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물론 우리가 말은…우리가 말은…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그렇게 말을 하죠. 그러나 우리의 실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실제로 끌고 가는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이런 일에 절대 복음적인 생각이 안 듭니다. 우리는 아예 태생적으로 복음적인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하루에 5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아주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면…‘아, 하루에 기도를 5시간씩 하면 교회가 부흥되는 구나.’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하루에 5시간씩 기도해도…이번에는 교회가 부흥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또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면…‘아! 내가 뭘 잘 못했을까? 어떤 사람은 개척 1년 만에 폭발적인 부흥을 했다고 하는데…그래서 요즘에도 부흥이 안 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하는데…그럼 내가 뭘 잘못했을까? 초신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불신자를 위한 열린 예배를 안 해서 그럴까?’ 이렇게 어떤 일의 되고 안 되고가 전부 나에게…바로 나에게 달려있는…그래서 이 사이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은 들어갈 틈이 없는…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이죠. 교회부흥이 되든 안 되든…모든 것이 그 일을 한 당사자에게 영광이 돌아가는…그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에 그 많은 개척 세미나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많은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하면~되더라.” “이렇게 하면~” 이렇게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사고방식이 우리 한국교회를 지배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 이것이 율법이 아니고 뭡니까? 우리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일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바로 이것이 율법이 아니고 뭐에요?
십자가 적용
그래서 이런 율법적인 생각이 결국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십시오. 인간의 자기 사랑을 없애고…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우리 한국교회의 생각은요. 내가 기도나 큐티 같은 이런 신앙적인 행동을 하면~이런 신앙적인 행동을 하면~영성이 유지되고…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저는 기도는 대찬성입니다. 저는 기도를 성경연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도를 하면~기도를 하면~즉 행위를 하면~내가 경건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루에 2시간씩 한번 해보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하루를 경건하게 살려고 한번 노력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토록 갖고 싶은 경건이 단 몇 시간도 유지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또 쉽게 화를 내고…쉽게 죄를 짓고…쉽게 내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이 지긋지긋한 인간의 행동…그래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정말 죽고 싶은…그래서 내 행동을 고치려고 해도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 마지막 절망의 끝에…바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면요…내가 기도를 좀 했지만 마음속에 교회 유지에 대한 부담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생계에 대한 부담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건강과 자식 문제…그리고 음란의 문제…그리고 눈만 뜨면 벌어지는 이 세상의 불안한 일들에 대한 생각이 가지시를 않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위대함은…이런 것을 그 자리에서 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마치 문어발을 끊듯이 하나하나 다 끊어내는 거예요.그래서 “나는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이제 나는 없다.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문제도 없다.” 이러면서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마치 문어발을 끊듯이 하나하나 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제가 다음 시간에 또 말씀을 드리겠지만…어쨌든 하루 종일 이렇게 살면서 우리를 공격하는 문제들을 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다 이렇게 끊어내는 거예요.
이루시는 삶
그러면 정말 놀라운 것은요…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버리면…그때부터는 어떤 목사님의 말대로 하나님이 켜집니다. 하나님이 켜져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우리 대신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대신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해요. 바로 이것이 은혜이고…바로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러면 우린 아무 것도 하지 말고…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얘기냐?”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용납하지 않아도…그래서 인간의 행위를 의지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아도…하나님은 딱 한 가지 행위는 용납하십니다. 딱 한 가지 행위는 용납하세요. 그게 뭔가 하면…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거스르게 하고…음란한 생각을 하게 하고…악한 일을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을 다 십자가로 끊어내는 것…바로 이 한 가지 행위는 용납하십니다. 바로 이 한 가지 행위는 용납하세요.
그러면서 나머지는 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또 기회를 따라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내가 전도하니까 사람들이 오겠지. 내가 전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왔지.” 이게 아니라…“내 전도는 그저 일상적인 삶일 뿐이고…사람을 보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지. 그리고 안 보내주셔도 하나님의 뜻이지.” 이런 생각으로 초지일관 그저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열매는 하나님이 주신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고…또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십자가 안에서 참된 안식과 사죄의 길을 발견하는…그래서 그 안에서 인간의 자기 사랑을 이겨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는 많은 율법적인 사고들을 봅니다.
인간의 자기사랑..
좀 더 나 자신을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