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4.금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요 4:1~6
*제목; 요한복음강해(12) 그 속에서 생수가 솟아나리라!
1. 지난 수요일 이야기
세례요한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심”을 분명히 고백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진정한 사명자였습니다. 예수님이 흥왕케 되어지는 것을 보고 “신랑의 음성을 드는 기쁨”이라는 최고의 표현을 했던 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진정한 기도자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바로 바른 기도요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과 기도가 이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2.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예수님
‘1~2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요 4:1~2)
지난 수요일에도 잠깐 이야기하였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현대 교회로 치면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3~4절’입니다.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3~4)
예수님은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 것입니다. 주님은 영광을 취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영광이 시작되면 급히 그 자리를 파하시고, “영혼을 구하러” 갈릴리 땅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궁극적인 교회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영혼구원.” ‘마 28:19~20’을 봅시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영혼구원”하여 무엇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사명입니까? “제자”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 성도들의 궁극적인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모든 에너지와 노력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 교회되길 그래서 진정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되길 기도합니다.
바른 교회의 기준은 딱 이것 하나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만들고 있는가?”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제자되어야 합니다.
제자란 무엇입니까? 배워서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서 전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배우고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을 배워서 전하고, 새로운 제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구원받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주님 닮아, 만나는 사람들이 이 인격(온유과 겸손, 성령의 9가지 열매)으로 변하도록 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제자가 됩시다.
그런데 주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아주 특별한 경로를 택하셨습니다. 바로 ‘사마리아’를 거쳐 간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앗수르의 침공’ 때 혼혈정책에 희생되고 수용하여 나중에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이요 죄인으로 취급받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에는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요단 강을 건너 내려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 갈릴리로 가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굳이 사마리아의 길로 가십니다. 왜일까요? 주님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입니다.
이 곳에 주님이 만나고 구원하고 제자 만들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방법이요 역사입니다. 구원은 ‘니고데모’처럼 찾아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허락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이 찾아가시고 허락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앉은 자체가 주님이 찾아오시고 허락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렇게 찾아가신 그녀가 바로 “사마리아의 우물가의 여인”이었습니다. ‘7~9절’입니다.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요 4:7~9)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왜 내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며 예수님께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본심을 밝히십니다. ‘10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0)
“생수”(LIVING WATER)를 주러 오셨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생수”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겔 47:1~2’에 나옵니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겔 47:1~2)
요한복음2장에 보면 예수님은 당신을 ‘새로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썩어버린 성전을 버리고 자신이 바른 성전이 되어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에스겔47장에 보면 그 성전이신 예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영생)을 그 여인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겔 47:9~12’에 나옵니다.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 47:9~12)
이 물이 온 땅에 흘러 강이 되고, 모든 생명을 살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이것은 ‘계 21:6’에서 완성됩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6)
구원은 주님이 정하시고 찾아오신 자들에게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생명수(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모든 것이 회복되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큰 자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12~15절’입니다.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 4:12~15)
주님은 이 여인에게 영적 생명수의 실체를 알려주시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허락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 7:37~39’을 봅시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과 신앙의 가장 중심에는 “성령님”이 계신 것입니다. 아니 성령님이 계셔야 진짜입니다. 이 성령님이 우리를 주장하시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니 믿음생활은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구원받고 성령 받은 증거가 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3. 정리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처럼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자,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만들 자”를 친히 찾아가십니다. 이렇게 아니하면 그 누구도 구원과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수인 성령”을 허락하십니다. 이를 누리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만드는 믿음의 삶”을 삽시다. 주님이 이런 자들의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성령님)을 허락하십니다. 아멘.
첫댓글 교회의 진위는 그 교회가 "영혼 구원하고 제자 만드는" 예수님 사역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느냐에 드러납니다. 성도도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마찬가지로 "영혼 구원하고 제자 만드는 데에" 힘쓰고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를 위해서 오셨고, 이를 위해서 애를 쓰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 성도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수'를 가집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참 성도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