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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129)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2022.10.27 목)
본문 : 누가복음 21:5-6
오늘 본문부터 시작하여 21장 전체(5-36절)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성도들의 자세를 교훈하시는 내용입니다.
같은 내용의 말씀이 공관복음서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데(마 24장, 막13장),...
차이점은 마태와 마가는 이 가르침이
‘성전 밖에서’ 하신 것으로 기록한 반면......
누가는 ‘성전 안에서’ 주신 교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 성전의 아름다움>
몇몇 사람들이 성전 내부의 장식과 화려함에
감탄하며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5절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제자 중 하나’라고
되어 있습니다(막13:1).
또한 마태복음 평행본문에는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왔다’고 합니다(마24:1).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한
제자들이 감탄하면서 예수님께 소감을 질문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신앙의
중심지이자 자존감 그 자체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뜻이었고....
자신의 나라가 안전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유대인은 안전감을 얻었고, 민족의 자긍심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서 잠깐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처음 지은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성전(기원전 968-961년) 솔로몬이
최초의 성전을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냈다는
예루살렘 동쪽 모리야 산에 세웠습니다.
그는 이 성전 건축을 위해 다윗이 준비해둔
자재 외에도 레바논으로부터 목재를 구입했고.....
띠로 왕 히람이 보낸 건축기술자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이 성전은 완성된 후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관용 정책을 펴서 바벨론으로 끌려온 유대인 포로들을
이스라엘로 돌려보냈고 성전도 재건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성전 재건에 힘썼습니다.
기원전 536년에 건축이 시작됐으나
여러 방해세력으로 인해 16년간 중단되다가
기원전 520년 재개하여 약 4년 5개월간의
공사를 걸쳐 기원전 516년에 완공하였습니다.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에 비해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제2 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슥4:9).
성전을 재건했지만 법궤의 행방을 몰라 성전 안에
계약의 궤를 안치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궤의 존재는 미궁에 빠짐). 이 성전은 기원전 169년
(중간사 시대)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에 의해 파손되었다가
마카베오에 의해 다시 보수(기원전 164년)되었지만,.....
결국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다시 파손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인의 왕에 오른
헤롯(이방인 이두메 출신,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영아 학살을 주도했던 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 재건에 나섰습니다.
기원전 20년 그는 모리야 산을 평평하게 깎아
오백 미터 길이의 광장을 만들고, 성벽을 쌓고
그 위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엄청난 규모로
공사를 하였는데, 성벽을 쌓는 데 돌 하나의
크기가 길이 13m, 높이 6m, 무게 560t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 벽과 기둥, 모든 문에 황금 칠
(대낮에는 눈이 부실 지경)을 하였습니다.
이 재건 작업은 예수 시대에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서기 64년경 헤롯 아그립바 2세 때에
완성되었는데 매우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동의를 얻고자
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밖의 대답>...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6절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제자들이나 사람들은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에 놀랐지만......
예수님에게 그런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예언은 그로부터 채
40년이 지나지 않아서(A.D. 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유월절 기념 행사 중에
장난 삼아 대제사장의 예복을 입고 음담패설로
유대인의 가장 신성한 믿음을 모독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엣세네인들이 열심당에 줄지어 가담하고
주후 66년 열심당은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로마요새를 공격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을 완패시켰습니다. 로마는 8만 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것이 66년부터 4년에 걸친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격렬한 저항을 했지만 포위된 채
성 안에서 굶주리며 죽어갔습니다.
어머니들은 자기의 아이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주후 70년에 전쟁은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저항하던 사람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학살되었고
나무가 모자랄 정도로 십자가에 매어달렸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을 함락할 때에, 원래는 성전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었는데....
끝까지 저항하던 열혈 당원들이 성전으로 도피하자
성전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에 달궈진 돌들로 인해 성전 내외부에
발라진 금도금이 녹아 돌과 돌 사이로 흘러 들어가자,
불이 꺼진 뒤 황금에 눈이 뒤집힌 병사들이 돌을
무너뜨리면 창과 칼끝으로 금을 긁어모았다고 합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 그대로 성취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쪽 벽’만 온전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헤롯 대왕이 성전을 지을 때 유대교 랍비들이
찾아가 이런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우리를 위해 초라했던 성전을 허물고
다시 새롭고 멋있게 건축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가 손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지금 공사하고 있는
성전 건축공사에서 일정 부분을 우리에게 할당해 주면,
그곳은 우리의 힘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에 헤롯은 “나는 지금 이 성전 건축을 위해
엄청난 돈과 장비와 인부들을 동원해서....
당신들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짖고 있는데,......
당신들이 이 공사의 규모에 맞춰서 동참할 수
있겠는가?”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유대교 랍비들은 “일정 부분을 할당해
주신다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동참하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헤롯은 “그렇다면 서쪽 성벽은 아직 공사 전이니
당신들이 맡아서 공사해 주십시오”하고 맡깁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헤롯 대왕이 우리의 성전을
알아서 공사를 잘해 주고 있는데.....
서쪽 벽을 왜 할당받아 왔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공사에 참여하였습니다.
헤롯처럼 크고 멋진 돌로 쌓을 수는 없었지만,
정성스럽게 돌을 다듬어 서쪽 성벽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롯 대왕이 지은 다른 성벽의
큰 돌에는 금칠을 해 놓았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이 공사를 맡은 서쪽 성벽만
금칠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열혈 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성전에 불을 질렀는데....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탈 때, 성벽에 칠한
황금이 녹아내렸습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돌과 돌 사이로 금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이 꺼지자, 병사들은 그 거대한 바위를 쓰러뜨려
가면 거기에 눌어붙은 금을 긁어갔습니다.
결국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금을 바르지 않은 서쪽 벽만 남아, 지금 유대인들은
그곳에 모여 통곡하며 기도합니다(통곡의 벽).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외면만을 보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마치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닮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썩었고, 마치 ‘회칠한 무덤’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가려져 있는 유대교의 타락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임박한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감람산 기슭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고 우셨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눅19:41-44).
그때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당할 고난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일어난 재앙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비유컨대, 하늘의 매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려고 할 때.....,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어서
자신은 죽어도 병아리는 보호하려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그렇게 사랑으로 품고자
하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모욕하고 나아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정확하게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재앙의 이유>
저는 여기어 왜 예수님은 우시면서까지
이런 재앙의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적 성결함입니다.
내적 진실함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는 것을
내세웁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모양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형상을 만드는 순간, 우상을 섬기게 되고,
우상은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내적인 신앙을 유지하기를
원하셨지만(말씀 신앙),
우상은 자꾸 우리의 시선을 자신의 외부를
향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게 합니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이는 장소로서의 교회 건물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을 짖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일어나고,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우상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들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들의
위세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에 사람들은
압도당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교회가
세계 곳곳에 건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축구장보다 더 큰 교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에 압도당해왔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아십니까? 그런 성전은
언젠가 모두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유럽의 교회들을 보십시오.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은 남아 있지만,
거기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관광 수입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더 중요한 성전>...
사람들은 외향적인 규모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그런 건물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무너지는 성전보다 더 중요한 성전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더라도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켜 부활하시겠다는 예언입니다.
둘째, 성도들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곧 성전입니다. 그 성전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벽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는 성전입니다.
셋째, 성도들 하나하나가 ‘모퉁잇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모인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엡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물이 아니라, 우리 신앙공동체가 곧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지어져 가는 중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외식하는 신앙을 조심해야 합니다.
겉으로만 드러나는 신앙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쌓아 올린
거룩한 성전을 세워가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지만,
우리의 몸에 세우는 성전은 영원히 파괴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성전을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우리 몸에 세우고 있습니까?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성전을 세우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