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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라산 문학기행
김윤자
여행일 : 2005년 5월 17일(화) ∼ 5월 19일(목)까지 2박 3일
제주도에 간 것은 요번이 세 번째다. 고2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왔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1989년도에 가족 모두 함께 다녀왔다. 그때는 여행사에서 패키지 여행으로 다른 사람과 섞이어 제주도에 갔기 때문에 안내해 주는 명소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형식으로 제주도에 갔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동기는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 적립으로 보너스 항공권이 우리 가족에게 무료로 나왔기 때문이고, 또 하나 큰 이유는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갔을 때 한라산 입구에서 잠깐 바라보고 넘어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번 제주도 여행은 매우 성공적이고 큰 감격이다. 한라산 백록담까지 등반완주하였으니 이보다 더 보람된 여행이 있을까. 그와 아울러 제주도 서회선 및 동회선 해안 도로를 따라 완전히 제주도를 한바퀴 돌아 일주했고, 한라산 외곽을 1100도로와 5.16 도로를 타고 일주한 것, 성산 일출봉에 올라 일출을 본 것, 소가 누운 형상의 섬 우도에 간 것 등도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수필가인 남편과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군복무 중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얻은 큰 아들, 나, 이렇게 우리 가족 셋이 가족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2005년 5월 17일 화요일
김포공항 출발, 제주도착, 용두암 협재 해수욕장, 중문관광단지
* 가는 길
아침 7시에 콜택시를 불러 타고 김포행 리무진이 서는 한일타운까지 갔다. 오전 7시 50분 경에 리무진 버스를 승차하여 김포공항에는 오전 9시 20분경 도착했다. 아시아나 항공 10시 55분 비행기이기에 시간은 충분하다.
먼저 예약번호를 대고 보너스 항공권을 받았다. 왕복권으로 돌아오는 것은 5월 19일 오후 4시 50분 비행기다. 공항세도 1인당 8천원씩 왕복 비용을 지불했다. 시간이 좀 여유있어 공항에 승객을 위해 설치해 둔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나의 시까페에 몇 줄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드디어 아시아나 항공 OZ8917 비행기에 탑승하여 하늘에 올랐다. 1시간 5분 소요되며 제주공항에는 정오 12시경 도착 예정이다. 그 짧은 시간에 본 하늘은 여전히 눈부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투명하고 맑은 하늘이 큰 기쁨을 준다. 제주 감귤 주스 한 잔을 서빙받아 마시고 나니 제주에 가까워졌다. 15A, 15B, 15C 나란한 좌석으로 비행기 날개가 창문 뒤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서 왔다. 우리나라 서해안 해변을 따라 내려가므로 가끔은 저 멀리 하얀 구름밭 너머로 바다 수평선도 보인다. 하늘은 눈밭, 휘날리는 눈발 형상으로 무공해 우주다. 지구 가까이에는 검은 구름떼지만 창공은 하얀 구름과 햇살로 유리빛,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문명발달로 찌들게 한 지구에게 죄송함이다.
비행기는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인 제주에 도착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로 걱정했는데 비도 바람도 없는 하늘을 무사히 달려온 것에 대하여 고마웠다.
* 제주국제공항
광활한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느낌은 남다른 감회였다. 외국의 어느 공항에 온 듯한 착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오래 전에 보았을 기억을 회상케 한다.
정지선에 안착했을 때 여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시아나 버스로 공항까지 모시겠으니 대기 중인 버스에 승차하라는 내용이다. 조금은 이상했다. 왜 복도 통로가 오지 않은 걸까. 중국 장가계 공항에서 작년 9월에 겪은 일을 오늘 한국 제주공항에서 겪고 있다. 중국 장가계의 어눌한 행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모습을 보며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나 마크를 새긴 공항 버스가 줄지어다니며 승객을 나른다.
비행기는 사정에 따라 공항 가까이 다가가지 못함도 알았고, 그것은 공항 행정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내소에 가서 먼저 제주도 안내 지도와 관광 책자를 받았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헤쳐나가며 제주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호기심으로 신비로움이 앞선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야자수 숲이 참 아름다웠다. 오래 전에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두 아들과 우리 부부가 왔을 때 찍은 사진 속의 바로 그 모습이 눈 앞에 전개된다. 그 때는 결혼 10주년, 지금은 결혼 26주년, 참 세월은 빠르지만 변함없는 자연 풍광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제주공항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다음 여행지로 옮겼다.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구.공항 도착하여 용두암으로 가기 전.수필가인 남편과 행복한 마음으로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구.돌하루방과 야자수가 외객을 반기고.남편과 고등학교 교사인 큰아들
* 용두암
제주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용두암으로 갔다. 공항에서 가깝다는 인터넷 정보를 상기하며, 제주시의 대표 명소인 용두암에 들른 것이다. 택시 요금은 3천원 나왔고, 그 곳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타고 간 택시기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 부탁했다. 용두암은 전에 보았기 때문에 사실 요번 여행 예정 코스에는 넣지 않았는데 워낙이 유명한 명소라서 발길이 이 곳으로 온 것이다.
제주 바다의 해안 도로를 따라 용두암까지 가는 드라이브 길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푸른 물빛과 검은 현무암 무리의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그 바위들 사이 용의 머리 형상으로 솟아오른 것이 용두암이다. 16년 전에 본 용두암은 꽤 큰 것으로 기억되는데, 왜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보지만, 우리는 용두암이 잘 보이는 곳에서 원경으로 보았다. 용의 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긴 한데 그 전체적인 덩이가 작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택시 기사의 설명으로 알았는데, 태풍으로 많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란다. 루사와 매미 태풍은 이곳에도 큰 상처를 남겼음을 보았다. 그래서 요즈음은 관광객들이 용두암을 잘 찾지 않는다며, 뭐 볼게 있다고 이곳에 왔느냐 반문한다. 하지만 용두암은 용두암이다. 아무리 쪼개지고 잘려 나갔어도 제주시의 첫 번째 명소임에 분명하다. 꼭 용두암이 아니라도 그 주변 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터미널 가는 길에 제주사대부고를 지남에 남다른 감회로 보았다. 나는 공주사대부고를 나왔기에 동일한 국립고등학교라는 점에서 큰 감명이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2500원, 합하여 5500원을 지불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제주 비닷가 용두암에서.큰아들과 본인 김윤자...다정한 모자.용두암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제주 용두암 안내문 앞에서.제주공항에 내려 맨처음 들른 곳...남편과 큰아들
* 서회선 해안도로 일주
제주시에서 서쪽 해변을 따라 서귀포까지 89km의 거리를 요금 7300원에 20분마다 버스가 다니는 관광 코스다.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제주시 주민들이 볼 일로 서귀포에 갈 때는 내륙 관통하여 빨리 갈 수 있는 도로들이 몇 개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여행객이 개별적으로 와서 제주도에 대하여 알고자 할 때는 이런 서회선과 동회선 일주 도로를 타면 제주의 어촌과 농촌 풍경을 생생히 보게 된다.
용두암에서 터미널로 이동하여 삼선짜장과 삼선짬뽕으로 점심 식사를 학 서회선 일주 버스를 타기로 했다. 대합실 2층 화순 반점에 들어선 것은 오후 1시경이다. 요리가 나오는 시간은 육지보다 길었지만 음식은 훨씬 충실하다. 해물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어 앞으로 이곳 여행 중 사 먹어야 할 음식에 대하여 좋은 예감이 든다. 짜장면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주는 것도 넉넉한 인심이다.
아까 택시 기사로부터, 제주도 전체 인구는 50만명이고 그 중 30만명이 제주시에, 8만명이 서귀포에 산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제주시의 상가와 거리 풍경은 육지의 어느 도심과 흡사하다. 물가는 싼 편이어서 은퇴하면 살기 좋은 곳이라 한다. 그보다도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섬 전체가 이국적인 정취로 전원적인 땅이 은퇴자의 발길을 이끌 것 같다.
오후 2시에 서회선 버스에 올랐다. 1인당 2600원씩의 요금으로 협재까지 표를 샀다. 협재 해수욕장과 비양도를 보고, 뒤따라 오는 서회선 버스를 다시 타고 중문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바깥풍경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능동적인 두뇌로 우리가 선택하여 다님에 기쁘다. 제주시가지에는 동백꽃 나무와 조팝나무의 가로수 행렬이 육지의 나무와는 다르게 즐비하다. 기사가 알려준 조팝나무는 느티나무와 비슷한데 밤꽃 모양의 꽃이 피었고, 저 꽃이 지면 열매가 맺는데 가을에 떨어지는 그 열매는 작은 땅콩과 같은 맛이라 한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제주 도심을 벗어나자 들판에는 보리와 마늘이 많이 심겨 있고, 더러는 마늘을 수확하고자 캐서 질서있게 늘어 놓았다. 돌이 많다는 말이 눈으로 들어온다. 검은 현무암이 밭뙈기 사이에 수북이 쌓여 밭의 담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차가 정차하는 읍, 면 지역에 들어오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도로와 사람 사는 곳의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발달된 풍경이다. 완전한 어촌도, 농촌도 깨끗하다. 역시 우리나라는 외형적으로는 분명 어느 국가 못지 않게 발전한 나라임을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제주 특유의 집을 보리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더러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덩이로 담장을 쌓거나, 시멘트 사이 박아 놓은 모습은 보여도, 대문이 없고 허름한 집은 보지 못했다.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심하게 사투리를 쓰진 않는다. 시골 아낙인 듯 한 분과 시골 아저씨인 듯 한, 내 곁과 건너 좌석 아들 곁에 앉은 두 분의 대화는 알아듣지 못할 제주도 방언도 섞여 있지만, 보편적으로 사투리는 많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도시인의 걸음이 잦아진 것이다. 몇 개의 초등학교도 지나고 차는 어느새 협재에 당도했다.
* 협재 해수욕장
애월 단지와 곽지 해수욕장을 지나 오후 3시경 협재 정류장에서 내렸다. 차도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해수욕장이 있고 바로 앞에 비양도 섬이 고운 자태로 앉아 있다.
제주에 바람이 많다 했던가. 바다를 보고픈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도 강풍이 몸을 흔들어 기우뚱거린다. 해변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제일 먼저 큰 아름다움은 물빛이다. 여러 가지 색으로 층층이 고이는 바닷물이 장관이다. 진초록, 연초록, 청록, 하늘색, 뽀얀 살빛, 하얀 빛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다의 색깔들, 도저히 고운 빛에 이끌려 눈을 뗄 수가 없다.
조개껍질 가루로 이루어진 하얀 백사장에 검은 현무암 바위 덩이가 잘 다듬어져 모여 있고, 그와 동일한 직선의 바다 너머에 '날아가 앉은 별' 이라는 비양도가 절창을 이룬다. 우측으로는 비양도에 하루에 2회 들어가는 항구의 등대가 오롯하게 보인다.
사진 속에 무엇을 먼저 담아야 할지 분주하다. 물빛과 비양도 항구, 백사장, 그리고 휘몰아치는 바람까지 찍어왔다. 가만히 포즈를 취하고 서 있어도 강풍은 달려와 두 손과 몸, 머리카락을 휘날려 흔들어 놓는다. 아들은 모래가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며 신기하게 바라본다.
오후 2시∼3시경 비가 온다는 아침예보가 꼭 맞는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림공원으로 가려 했으나 아쉬움을 접고 뒤따라 오는 서귀포행 3시 20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편의점에서 배즙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아들과 먹을 때 참 행복했다.
제주 협재해수욕장.날아가 앉은 섬 비양도 유람 안내문과 아름다운 물빛.남편과 함께
제주 협재해수욕장 환상적인 물빛.가만히 있어도 바람은 비양도처럼 몸을 날아가게 하고.큰아들
제주 협재해수욕장 입구에서.아버지와 아들...나의 남편과 큰아들
* 중문 관광 단지
서귀포 가기 전에 있는 중문은 관광단지이기도 하지만 한라산 제2횡단도로인 1100도로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제주의 남쪽인 중문에서 북쪽 제주시까지 내륙을 관통할 때 한라산 중턱을 넘어서 가는 1100고지도로는 '하늘을 나는 도로' 라 불릴 만큼,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로다. 우리는 그 도로를 따라 내일 한라산 등반을 하고자 하니 중문에서 내려야 한다.
제주시에서 중문까지 버스비가 6500원인데 아까 협재까지 2600원에 왔으니, 나머지 3900원씩 요금을 냈다. 곳곳마다 쉬면서 제주도의 진면목을 보는 기쁨이 크다. 이곳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운전기사도 승객도 행선지와 관광지에 대하여 물으면 아주 친절히 답해 준다. 심지어 술 취한 아저씨도 운전기사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 떼쓰다가도, 내가 기사에게 중문에 하차하려면 어느 곳에서 내려야 하느냐 물었을 때,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해 준다. 술 취한 모습이 밉다가도 관습에 가까운 친절함에는 목이 메인다.
하교하는 중 학생도 많이 탄다. 순진한 모습들이다. 중문에 내렸을 때는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중문은 관광단지라서 울창한 나무와 거리 풍경이 아름답다. 1100도로 버스 주차장과 한라산 가는 차 시간을 알아두고 숙소를 정했다. 민박집과 잘 지은 팬션이 있는데 우리는 한길슈퍼주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아주 깨끗한 신축 사랑방 팬션을 안내받아 들어갔다. 그 이전에 도로를 따라 오면서 중문 하우스를 비롯한 민박 숙소에 갔으나 모두 방이 찼다 하여 좀 걱정을 했는데 친절한 분의 도움으로 숙소를 얻어 마음이 놓였다. 숙박 요금도 점잖은 한가족이라며 3만원으로 많이 할인해 주었다.
주중인데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음일까. 중문에는 천제연 폭포와 해수욕장, 여미지 식물원, 영하 쉬리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쉬리 언덕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빗속을 거닐었다. 두 개의 우산을 집에서 준비해 갔기에, 남편은 혼자 쓰고, 나는 큰 아들과 둘이 쓰고 우중 데이트의 낭만을 가슴에 새겼다. 이것도 후일에는 큰 추억으로 남을 거라며 즐거운 걸음이다.
이왕 나왔으니 천제연 폭포에 가자고 방향을 잡았다. 숙소에 들어간 시간이 오후 5시 30분, 숙소에서 나온 시간이 오후 6시, 그 때부터 1시간을 거닐었다. 천제연 폭포에 가는 큰 도로변에서 이색적인 보도를 보았다. 나무 조각을 일렬로 깔아 보도를 만든 것이다.
캐나다에 온 느낌이다. 밴쿠버에 나무가 많아 가로등 전봇대까지 둥근 원통 나무기둥이었음을 보고 감탄했는데,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나무가 많아 보도를 나무판으로 깔아 만든 것을 보고 감탄했다. 가로수 나무가 짙푸르고 싱싱함은 나무판 사이사이로 빗물도 들어가고 숨쉴 수 있어 그런가 보다.
꽤 많이 나무판보도를 따라 걸어가니 천제연 폭포 입구에 다달았다. 비가 너무 내리고 어둠이 내리고, 하여 우리는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예전에 본 추억으로 만족하고 온 길을 따라 숙소 근처에 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숙소에 들어가는 초입의 틈새 식당에서 해물뚝배기(7000원)와 정식(4000원)으로 우리는 배부르고 맛있는 제주도의 만찬을 즐겼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양말과 운동화가 젖어 양말을 벗어 싸 들고 왔다. 내리는 물과 바닥에 고이는 물이 우산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양이다. 숙소에 돌아와 젖은 옷과 신발을 방바닥에 깔아 놓고 말렸다.
사랑방 팬션 베란다에서 밖을 보면 큰 오렌지 나무에 노란 오렌지가 푸른 잎사귀 사이로 보인다. 복도 창문 너머로는 지붕 전체를 검은 천으로 둘러 묶어맨 민가도 보여, 분명 이곳은 육지와는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렌지 나무에 열린 열매는 상당히 크다. 귤과는 다르다. 귤나무는 하얗게 꽃이 피어 있었다. 검은 돌담 안의 밭에 키 작은, 동백 나무 잎사귀와 유사한 모양의 나무에 하얀 꽃이 초롱초롱 어여쁘다.
TV 채널도 상당히 많다. 섬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보던 MBC '굳세어라 금순아'와 KBS '어여쁜 당신' 드라마와 뉴스를 보았다. 어느 것 하나 불편한 것이 없다.
방도 참 따스하다. 여정으로 지친 몸을 녹이며 중문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내일 한라산 등반을 꿈꾸며, 오늘 밤에 비가 다 내리고 내일은 맑은 날씨이길 빌며 잠자리에 들었다.
서귀포 중문 사랑방팬션.우리가족이 유숙한 곳.한라산으로 가기 위해 나선 아침에.사랑하는 남자와
중문중학교 교문에서...담장과 교문이 돌로 낮으막하다...고등학교 교사인 큰아들
서귀포 중문중학교 담장이 낮아 학교건물이 다 보이고.큰아들은 고등학교 교사인데 신기한 눈으로
중문관광단지의 나무판 길.분홍꽃 화분까지.참 아름다운 길.제주의 향기가 거기 있었다.고운 길에서
중문해수욕장 가는 길의 야자수.우리나라의 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나는 소녀처럼 서서
중문관광단지 안내팻말과 거리 풍경.한라산에 가려고 나선 아침,남편과 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2005년 5월 18일 수요일
1100 도로, 한라산 등반, 5.16 도로, 서귀포에서 성산으로
* 1100 도로(한라산 제2횡단도로)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어제 그렇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흐리지만 하늘이 훤하다. 7시에 숙소를 나서 가마솥 해장국집에서 선지 해장국(5000원)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젊은 여주인이 친절하고 인심이 좋아 밥 두 그릇을 그냥 더 갔다 주었다.
어제 보아둔 1100도로 정류장으로 이동하면서 중문관광단지의 거리 풍경을 사진 속에 많이 담았다. 깨끗하고 나무가 울창한 것이 큰 특징이다. 중문초등학교와 중문중학교의 담장이 낮아 교사 건물과 우람한 나무들이 다 보인다. 중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 반대 방향으로 1100도로 진입이 이어져 있다.
1100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도로이며 '하늘을 나는 도로' 라 불릴 만큼 하늘 가까이로 달리는 도로다. 제주시와 중문을 오가며 한라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한라산 제2횡단도로' 다. 1시간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제주에서 중문까지 요금이 5100원이다. 중문에서 첫 차가 8시 15분, 막차가 18시 35분이고 총 소요시간은 1시간 15분이다.
우리는 9시 35분 버스를 탔다. 운전기사에게 영실코스로 한라산에 오르고 싶은데 오늘 같이 흐린 날에도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넘어오다 본 한라산은 해가 나온 화창한 날씨라 한다. 한라산의 날씨는 지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산이 너무 높아서 온도도 6도 차이 나고 기상 변화도 심하니 두터운 옷을 입고 가란다. 친절한 운전 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1100고지 한라산 서쪽으로 타고 오르는 도로를 달렸다. 산 언덕 하나를 오르자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이 하늘이 맑고 햇살이 화사하다. 서귀포 중문에서 찌푸린 날씨는 이곳과는 전혀 다르다.
시야는 확 트여 저 멀리 한라산 우람한 봉우리가 보이기도 하고 저 아래 시가지가, 양 옆으로는 말농장의 평화로운 초원과 말들이 간간이 보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감탄사의 연발이 나도 모르게 흘러 나온다. 이런 나의 모습에 운전 기사는 잠시 멈추어 원경으로 보이는 한라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도와 주었다. 승객이 우리 가족 세 사람 뿐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제주 시민은 모두 관광 가이드라는 느낌을, 오늘 아침 또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젊은 남자 기사가 연신 한라산 등반 코스에 대하여 안내해 주며 백록담까지 오르고 하산하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사실 우리는 한라산 향기만 맡아도 행복할 거라는 계획으로 왔는데 기사의 말을 듣고 보니 한라산 등반 완주의 계획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냥 가시면 후회할 거라는 대목을 강조함에 우리의 목표는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으로 굳어졌다.
중문에서 영실까지는 요금이 1900원으로 오전 10시 20분에 도착했다. 산 중턱 널따란 정류장에 내려주고 버스는 다시 1100도로 제주시로 향해 떠나갔다.
1100도로 고지의 풍경.한라산을 향해 달려오르는 차안에서 본인이 촬영.록키산을 달리는 착각!
100도로를 달리며 잠시 내려서 한라산을 배경으로.친절한 운전기사의 도움으로.본인 김윤자
1100도로 버스 시간표 앞에서.한라산 어리목코스로 하산하여 제주행 버스를 기다리며...
* 한라산 영실코스
한라산에 오르는 길은 영실, 어리목, 관음사, 성판악 코스로 4개의 길이 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오늘 우리가 등산하려는 영실코스는 좀 가파르지만, 병풍바위와 철쭉, 오백 나한의 기암이 절경인 코스다. 등산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영실 입구에서 하차하여 영실 생명수 약수를 마시고 오르기 시작했다. 포장된 도로와 나무판 보도가 참 아름답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우리를 계속 따라온다. 산 중에서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가 보다. 아름다운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빛 하늘, 맑은 계곡, 초록 나무, 등등 하늘과 나무와 햇살만 가득한 꿈같은 등산길이다.
영실 휴게소까지는 2.5km로 그래도 완만한 길이었다. 수학 여행 온 학생들이 오르내린다. 대개는 영실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산길을 오르는데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관계로 영실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르니 2.5km를 그들보다 더 걷는 셈이다. 12시에 영실 휴게소에 도착하여 노루샘 약수를 먹고, 휴게소 지붕 위로 산 절벽에 들어선 기묘한 바위를 보고, 정식으로 한라산 영실코스 등반길에 접어 들었다.
돌길, 흙길, 나무 계단길, 계곡 물길, 등등 울창한 나무 숲속의 여러 길을 번갈아 걸으며 올랐다. 상큼한 공기가 몸을 정화시키고, 한라산을 오른다는 행복감에 더없이 기쁘다.
한라산 영실입구에서부터 계속 따라오는 까마귀.반가움에 길 안내하려는지.울창한 숲,새와 큰아들
한라산 영실 휴게소에 이르러.남편과 큰아들...사랑하는 나의 두남자
한라산 영실코스 돌비와 안내문 앞에서.본인 김윤자.이제부터는 가파른 오름길로 들어서고...
한라산 영실 휴게소 앞 약수를 마시며.큰아들과 함께
* 오백나한의 기암
영실 휴게소에서 성큼 성큼 행복한 걸음으로 힘든 줄 모르고 오르다 보니, 빠끔히 뚫린 나무 숲 사이로 신비로운 바위가 보인다. 처음엔 널쩍한 큰 덩이의 바위가 하나 보이더니 차츰 크고 작은 바위들이 파란 나무들 위로 물결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오백나한의 기암, 오백개의 기이한 바위들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워서 한동안 머물러 저 멀리 산 능선의 바위를 바라보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큰 바위 등짝으로는 실폭포가 몇 군데 흐른다. 지난 밤 비가 와서 계곡물도 많고 폭포물도 하얀 끈처럼 내려온다.
오르고, 또 오르고 숲길이 끝난 지점에서 병풍 바위의 위용을 본다. 해발 1500m 고지, 바람도 서늘하고 나무들도 키 작은 수종으로 자작자작하다. 사람 키보다 작은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사방이 환히 뚫렸다. 등 뒤에는 병풍 바위가 우람하게 병풍처럼 펼쳐 있고, 아래로는 서귀포 시가지와 바다, 문섬 등 제주의 서남해안 들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아래의 지상에는 뿌연 안개가 가물거리는데 이곳 한라산 능선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날씨다.
오백 나한의 절묘한 바위 풍경에 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영실 코스의 진면목, 그래서 이 코스를 선호하는가 보다. 우리나라 한국에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있음에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어느 관광객이 와도 감탄할 저 바위 절경, 이 자리에 바위로 굳어져 선다해도 행복하리라는 느낌은 동일할 것이다.
한라산 영실코스의 시원한 숲길에서.오백나한의 바위와 우거진 나무들.우리가족
한라산 영실코스 오백나한의 기암.환상적인 바위 모양은 한라산 산줄기에 즐비하고.우리가족
* 병풍 바위
신기하여라. 검은 병풍이 한라산 정상 가까운 곳에 큰 넓이로 드리워져 있다. 신의 손길은 대단한 예술품을 창조하였다. 영실 휴게소에서 여기까지는 1.8km, 약 2시간이 걸렸다. 산 줄기의 한면을 거의 메운 바위 절벽, 골이 깊고 낮게 아래로 파여 내려와 영락없는 병풍 모양이다.
병풍 바위가 있는 산 능선에서 둥글게 내려가는 산 등줄기에 오백나한의 기암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산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산정 길에서 바라보고 있다. 푸른 신록의 물결과 바위 물결, 아래로 보이는 하얀 운무 물결, 애잔한 들녘, 가히 환상적인 절경이다.
일찍이 올라간 수학여행단 고교생들이 무리지어 내려온다. 무서우리만치 가파르고 광활한 한라산 등반길에서 그들은 큰 위안을 주었다. 아직 윗세오름이 머냐고, 가파른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느냐고 묻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전하는 소중한 만남이다. 더러는 우리 가족 세 사람을 위해 가족 사진도 찍어주고 가기도 하고, 참 으젓하고 고마운 학생들이다.
이곳에서부터의 길은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나무판을 이어 만든 길에서 누워 좀 쉬었다. 숨이 끊어지도록 가파른 오르막 등반길로 많이 지쳐 거의 한계 상황에 이른 것이다. 준비해간 내복을 입어 체온을 보온하고, 건빵, 오징어, 땅콩, 사탕, 물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걷고 또 걷는다. 이제 병풍 바위는 우리의 등 뒤로 잠들고 구상나무 초록 숲길로 들어섰다.
한라산 영실코스 병풍바위 가파른 산길에서 남편과 함께.서귀포 시가지가 아련하고.해무와 운해 비경
한라산 영실코스 병풍바위 앞에서 우리 가족.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바위 절벽의 비경.가파른 산길
* 백록담 아래 철쭉꽃 축제
한라산에는 여러 수종의 나무 군락이 있다. 영실 입구에는 관엽 식물로 키도 크고 잎도 큰 나무들이 많고, 병풍바위까지도 주로 그런 나무 군락이더니, 가파른 오름이 끝나는 오백나한 기암의 맞은편 산 능선부터는 땅에 낮게 붙은 상록수 종류가 살고 있다. 다부지고 진초록의 뾰족한 잎들이 당당하게 하늘과 마주하여 군락을 이루었다.
지금 들어선 이 길, 역시 구상나무 숲길로 사람이 지나갈 땐 서늘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좁은 자갈길에 밤 사이 내린 빗물이 고여 있기도 하고, 도란도란 속살거리는 느낌의 고운 길이다.
구상나무 숲길이 끝나자 또 다른 풍경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책에서, 인터넷에서 이미 알고는 왔지만 백록감이 보이는 광활한 터에 철쭉꽃 물결이 장관이다. 5월 말에서 6월 초순까지 철쭉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아득한 산자락에 진분홍의 꽃술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디카에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다.
선작지왓이라는 너른 평원이다. 좌측으로는 민둥 벌판이다. 파임을 막으려는지 얼기설기한 망으로 흙을 눌러 씌웠고 사이사이 푸른 풀이 나 있다. 밭뙈기같기도 하고, 한라산의 이색적인 정경이다. 우측에는 온통 철쭉꽃 축제 꽃불로 시리도록 아름답다. 저 멀리 배경으로 깔리는 하얀 구름밭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한라산에는 노루가 많아 약수이름도 노루샘이다. 철쭉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노루샘 약수를 만나 지친 몸을 추스르고 백록담을 향해 걸었다.
한라산 영실코스 병풍바위를 지나 구상나무 숲길을 걸으며.정상에 가까워지고...큰아들과 함께
한라산 영실코스로 오른 철쭉꽃 너른 평원.꽃과 여인...본인 김윤자.한라산 백록담은 장엄하고...
한라산 영실코스 철쭉꽃 축제의 평원에서. 꽃과 남자...큰아들.서귀포 바다의 해무와 운해도 장관
한라산 정상부근 선작지왓 너른평원을 가로지르며.산봉우리가 백록담.남편과 함께 환희의 만세
한라산 백록담이 보이는 곳에서 만난 노루샘 약수.큰아들과 함께
* 한라산 백록담
백록담이 보이는 길을 계속 걸어 올랐다. 참으로 향기로운 길이다.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다. 이제 서서히 정상에 다가서는 것이다. 병풍 바위에서 이곳까지는 2.2km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영실 휴게소에서 병풍 바위까지의 가파른 오르막길과는 다르게 쉬운 길이어서 체감으로는 더 가까이 느껴진다.
오롯한 백록담 분화구 벽을 바라보며 윗세오름에 다달았을 때 태양열 전기가동 건물과 휴게소, 화장실이 사람의 냄새를 전해준다.
이곳이 해발 1700m 고지 한라산 최고 높은 곳의 윗세오름 봉이다. 백록담 연못까지는 2.2km 더 가야 되는데 자연 휴식년제로 통제하여, 사람이 오를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다.
'한라산 백록담' 이라는 팻말을 보며 우리는 크게 감격했다. 전설적인 일이며, 가문에 기록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영광스런 일이기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오르면서 힘겨웠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그저 마냥 보람되고 기뻐서 노루처럼 신나게 백록담을 향해 눈과 발이 분주하다.
백록담 위에 솟은 낮달이 아슬하다. 슬퍼서 지지 못하였는가. 백록담을 사랑하여 떠나지 못하였는가. 푸른 하늘에 영롱하다. 수학여행온 학생들로 한라산 백록담이 오늘은 외롭지 않으리라. 윗세오름봉 나무 기둥을 붙들고, 한라산 백록담 안내문에 기대어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오지 못한 작은 아들에게 '한라산 백록담에서 엄마 아빠 형이' 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어리목 코스로 하산의 걸음을 옮겼다.
한라산 백록담 가까이에서 만난 풍력계와 태양열 전기발전소 건물.큰아들
한라산 백록담처럼 앉은 우리 가족 모습.뒤에 보이는 산정이 백록담...그날은 영원히 기록될 날
한라산 백록담 안내문 앞에서...그 환희...'전설적인 기록이며 가문의 영광이리라'...우린 그날 그랬다!
한라산 윗세오름봉 돌비 앞에서. 우리 가족...수필가인 남편과 시인(본인 김윤자), 그리고 큰 아들
* 어리목 코스
한라산 등반은 영실 코스로 올라와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들었다. 운전기사도 그랬고, 인터넷에서도 여행 가이드 책자에서도 그랬다. 영실 코스는 경치가 좋고 어리목 코스는 경치는 빼어나지 않지만 길이 좋다는 것이다.
백록담에서 오후 3시 30분, 어리목 코스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곳곳에 안내 팻말이 있어 그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안전하다. 산정을 뛰어다니는 노루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기쁨의 소리를 지른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좀 두려움이 엄습하여 빠른 속도로 걸어내려왔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도 없다. 알고보니 아침에 어리목에는 짙은 안개로 등산 통제를 했다는 것이다. 같은 한라산인데 남서편의 영실코스에는 눈부신 맑은 날씨이고, 북서편의 어리목 코스에는 흐린 날씨였다니, 한라산의 넒음과 기후 분포 차이를 실감한다. 높은 곳은 더욱 해가 밝고, 하늘이 코발트 빛이다.
하산길 중간에서 모노레일로 빈 박스를 실어나르는 소형 경운기 같은 운반차와 그 차를 조종하며 휴지를 주으며 내려오는 한라산 관리요원을 만났다. 참 반갑고 우리를 평안케 해준다. 하얀 해무가 바다 위에 뒤덮여 설경을 방불케 하고, 사방은 짙푸른 나무 물결 뿐,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고적한 산길에서 인적과 기계음은 큰 위안이다. 또다른 한라산 경비원이 올라와 길목을 둘러보고 내려간다. 역시 큰 반가움이다.
나무 계단과 바윗길을 넘어지지 않으려 긴장하며 걸어내려오니 무릎이 아프다. 그래도 행복한 마음은 여전하다. 오후 5시 20분경 해발 970m의 어리목 휴게소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과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지상에 가까왔음을 알게 해준다. 뒤돌아 보니 아득한 푸른 능선의 한라산이 꽉 차 있다. 우리가 2시간 동안 휴식 시간을 갖지 못하고 속보로 걸어 내려온 저 한라산 어리목 코스, 서서히 어둠에 묻히고 있다.
산의 해는 빨라지는 법, 금새 주변이 어둑하다. 그것이 무서워서 우린 재촉하여 내려왔다. 오르막에는 무거운 느낌으로 힘들었지만, 내리막은 다리의 후들거림으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겐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 한라산 등반 완주에 대한 보람과 기쁨 뿐이다. 영원히 우리에게 영광과 행복으로 존재할 이 기록적인 장엄한 행군 앞에서 숙연해진다.
분명한 일인데도 꿈처럼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가족 일원 중 어느 누구 하나라도 지치거나 다치면 이룰 수 없는 일인데 무사함으로 완주가 가능했던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함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휴게소에 들러 육개장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울 때 한라산 영실 코스 초입에서 본 검은 까마귀가 우리를 따라온 것처럼 주변을 맴돈다. 물어보니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워서 따라다닌단다. 기이한 일이다. 부지런히 1km를 걸어내려와 어리목 정류장에서 6시 20분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까 타고 온 그 운전기사다. 참 큰 인연이다. 우리들은 웃으며 기사와 한라산 이야기로 꽃 피웠다. 1100도로의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진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어리목코스로 하산하며 아쉬움에.늠름한 모습의 큰아들
한라산 백록담에서 어리목코스로 내려오며 본 운해설경.아들이 손에 받쳐든형상으로 찍은 본인김윤자
한라산 백록담에서 내려오며 본 짐 운반용 모노레일.남편과 큰 아들
한라산 백록담에서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여.안내 간판 앞에서 남편과 함께
* 5.16 도로(한라산 제1횡단도로)
어리목에서 6시 20분에 2100원씩 요금을 내고 탄 버스가 제주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 서둘러 다시 5.16 도로행 버스에 올랐다. 제주에서 자도 되지만, 한라산을 걸어서 완주하기도 하고 차도로도 완주하고픈 마음에서다. 5.16 도로는 제주와 서귀포를 오가며 한라산 동쪽을 관통하는 높은 고지의 도로다.
제주에서 종점인 서귀포까지 요금은 3600원, 소요시간은 1시간 5분으로 10분간격 배차되는 행로다. 이 길은 한라산 백록담 연못까지 오름이 가능한 성판악 코스를 지난다. 그 길은 9.5km로 상당히 멀지만 완만하여 시간과 체력만 허락하면 정상의 연못까지 올라갈 수 있는 코스다.
5.16 도로는 같은 한라산 능선의 길인데도 느낌이 달랐다. 1100도로가 남성적이라면 5.16 도로는 여성적이다. 어둠이 깔리자 도로변과 중앙에 야광판이 작동하여 환히 밝혀 준다. 차선도 왕복 4차선으로 넓고 안전하다. 1100도로는 7시경에 막차가 끝나지만 5.16 도로는 9시까지 막차가 있다.
깊은 산중에 접어들자 숲 터널길이 이어지며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완전한 숲속을 버스가 지나간다. 한라산 도로변의 나무는 자연 그대로 둔다고 한다. 가지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호하여 흐드러지게 퍼진 모습이 평화롭다.
한라산 능선을 넘어가자 숲속 곳곳에 민가가 보이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린다. 서귀포시에 접근한 것이다. 서귀포는 제주시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캐나다 밴프 공원의 아름다움이다. 록키산중에서 본 그 풍경이다. 야자수와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서귀포 시가지의 밤은 이국적인 향기가 흐른다.
5.16도로를 주행하는 버스 앞에서.제주에서 서귀포 갈 때...
2005년 5월 19일 목요일
성산 일출봉 해맞이, 우도 일주, 산호사 해수욕장, 제주공항 출발
* 성산 일출봉 해맞이
서귀포에서 8시 20분 성산행 버스를 탔다. 성산까지는 동회선 일주도로 주행으로 요금은 3700원, 1시간 20분 소요된다. 한라산 등반 완주로 시간을 다 보내고 밤길 이동이라서 바깥 풍경은 잘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밤 여행길이다.
내일 성산 일출봉에 올라 해맞이 하기 위해서다. 친절한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용궁팬션에서 숙박했다. 처음에 기사가 잔다는 팬션은 방이 없어, 그 주인의 자가용으로 다니며 얻게 된 숙소다. 신기한 것 하나는 그 젊은 주인 남자가 77학번 부산해양대 졸업생이고 서귀포 시청에 근무한다는데 우리와 얘기할 때는 표준말을 쓰고 핸드폰으로 통화할 때는 제주도 토박이 사투리를 쓴다는 점이다. 어미가 '∼강' 으로 끝나는 '있수강?' 형식의 말투다.
용궁 팬션은 성산 일출봉 바로 아래에 있어 좋았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주인이 5시에 우리를 깨울 때는 이미 아침 식사로 어제 사온 두유와 찰떡 등으로 요기할 때다. 창 밖으로는 우람한 성산고봉이 보인다. 5시 30분에 해가 뜬다하여 5시 10분경 숙소를 나섰다. 골목길 끝에 성산 일출봉이 우람하게 서 있다.
2000원 입장권을 사서 먼저 해맞이 장소로 갔다. 해안 절벽에 선 전망대다. 어둠을 밟고 선 땅에 바다를 가르고 해가 올라온 시간은 정확히 5시 32분부터였다.
저 찬란한 해맞이, 제주도 최동단에서 환상의 빛을 본다. 검은 구름이 약간 있어 완전한 해돋이가 드러나진 않지만 하늘과 왼쪽의 우도, 오른쪽의 성산 고봉을 향해 퍼져오르는 빛은 절정의 극치다. 해는 빠른 속도로 하늘에 오르고 우리는 이제 성산 일출봉에 올라 보고자 뒤돌아 계단길을 따라 분화구 봉우리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면서 본 풍경들은 모두 한 폭의 수채화다. 위쪽에는 바위 무리와 성산이, 아래쪽에는 푸른 말 농장이, 조금 더 아래편에는 아름다운 해변 시가지가, 저 멀리에는 한라산 거대한 봉우리가 장관이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마다 절경이다.
처녀 바위, 코끼리, 곰, 장군, 별장 등등 다양한 형상의 바위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위 사이에 나무가 살기도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모두 비경이다.
성산은 해발 182m의 분화구인데 꽤나 긴 계단이 가파르다. 고도와 걸음 걷는 높이가 거의 비슷하여 사실은 300∼400m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한다. 정상에 올랐을 때 놀라운 분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초록 식물이 잔잔하게 살고 둥근 가장 자리에는 바위가 어여쁘다. 천연보호구역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아 온전히 보전되는 땅이다.
가파른 절벽에 나무 기둥으로 울을 쳐서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해는 높이 떠오르고, 그 빛으로 한라산 정상이 훤히 드러난다. 그렇게 성산의 일출은 장엄했다. 세상 모든 곳까지 밝히는 해맞이, 행복한 걸음으로 하산길을 인도한다. 숲 사이 현무암 모양의 스피커에서 고운 선율의 노래가 흐르고, 꽃과 나무가 향기롭다. 오전 7시경 매표소 광장에 도착했다.
성산일출봉의 장엄한 해맞이.바다를 가르고 우도에게로 퍼져오르는 환상적인 햇살.남편과 큰아들
성산일출봉 정상의 분화구 분지.출입이 금지된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초지와 바위울타리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한라산 전경과 성산항 주변의 아름다운 사가지와 해변 풍경
성산일출봉 오르는 길에 만난 별장바위 앞에서.바위 틈에 사는 아슬한 나무 풍경
성산일출봉 아래 초원의 평화로움.아들이 찍어준 말 두마리와 우리 부부의 조화로운 모습
성산일출봉 입구 환영안내문.해맞이 후 밝은 햇살에 드러난 문구와 성산풍경.큰아들
* 우도
성산 일출봉에서 주차관리요원이 불러준 택시로 성산항에 와서 우도행 배에 올랐다. 택시 요금은 2000원, 성산에서 우도까지 배요금은 2500원이다. 15분 소요되는 우도까지는 1시간 마다 배가 오간다.
우리가 탄 배는 원래 8시 배인데 해녀들이 많이 타서 7시 30분에 출항했다. 봉고차와 트럭, 자가용이 승선하여 340명 정원의 아주 큰 여객선이다.
우도는 소가 드러누운 모양의 섬이라 하여 우도라 불리운다. 배에서 바라본 모습은 소의 머리와 꼬리 부분만 잡히지만, 성산 고봉에서 본 형상은 꼭 소가 앞발을 구부리고 꼬리를 땅에 둥글게 말아 앉은 모습 그대로였다.
남편이 소띠라서일까, 유난히 정감이 가는 섬이다. 배 난간에 서서 아름다운 뱃길, 하얀 물보라와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우도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우도 순환버스가 있어 타고 우도를 일주했다.
650세대 1800명이 산다고 운전기사는 안내설명을 해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있는 꽤 큰 섬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 어촌 마을을 굽이굽이 돈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들은 디카에 담아왔다. 버스가 속도를 내지 않아 바다와 내륙 풍경이 다 잡힌다.
무공해 지역임이 육안으로 보인다. 바닷물도 영롱하고 마을도 영롱하다. 얕으막한 들녘에는 그 어느 지역보다 돌담이 높이 쌓여 밭과 밭 사이 경계선을 이루고,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와 마늘 밭이 멋진 풍경으로 스쳐온다. 맥주용 보리라는데 키 작은 밀과 흡사하다. 집들은 모두 깨끗하게 지어서 고운 빛깔의 지붕이 섬마을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낮고 대문이 없는 것 외에는 육지의 어느 마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풍경은 아련 그리움이 깔린 낭만이다.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높은 산봉우리도 하나 보이고, 낚시하는 바다의 아기자기한 정취도 보이고 바다 물빛은 검푸른 코발트 빛, 참으로 축복받은 땅이다. 집들은 주로 해안가에 모여 있다. 바다에 기대어 산다는 것이 증명되는 대목이다.
운전기사는 다음 8시 배로 들어오는 손님을 받아야 한다며 우도항을 향해 달린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내려서 둘러보고 싶은데 오늘 오후 4시 50분 비행기로 가야 된다는 계획이기에 내리지 못하고 창문 너머로 우도를 관람한 것이다. 중요한 건 우도를 일주했다는 것이다.
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인 산호사 해수욕장에서만 내려 우도의 짙은 향기를 보았다. 우도항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운전기사는 구경하시고 저기 앞으로 15분쯤 가면 성산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햇살 고운 해변이다.
우도 전경-성산 일출 전망대에서 우도를 배경으로.시인과 수필가-우리 문인 부부 모습
우도행 여객선에 승선하기 직전의 우리 가족.자동차도 함께 승선하는 모습
우도 섬에서 본 제주의 정취-돌로 담을 쌓아 만든 밭 풍경
* 산호사 해수욕장
우도항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돌며 우도 관광을 마무리할 때쯤 내린 곳이다. 이미 정보 매체를 통해 모래와 물빛이 빼어난 경관이라는 해변이라는 것은 알고 왔지만 저토록 눈부신 아름다움일 줄이야.
해녀 동상이 해변 모래 언덕에 서 있고, 달려가도 될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성산 일출봉이 바다 위에 오롯하고 정면 앞으로는 한라산을 축소한 듯한 모양의 둥그런 산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측 해안 도로변에는 스위스 풍 팬션과 캐나다 풍 카페가 외국 여행을 연상케 한다.
우도와 성산 사이, 바다이면서도 호수 같은 좁은 해협에는 아까 우리가 타고 들어온 여객선이 유유히 우도로 들어온다. 강아지 한 마리가 외객의 안내자인양 우리를 바라보고는 산호사 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내려가 바닷물 가까이로 거닌다.
이곳 해변은 두 가지로 큰 아름다움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나라 유일의 산호 모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협재 해수욕장과 유사한 비취빛과 에메랄드빛의 환상적인 물빛이다. 사진을 찍어도 영화 속 주인공이고, 바닷가 산호가 부스러져 하얀 빛으로 누운 해변에 주저앉아도 영화 속 주인공이다.
성산 일출봉 쪽 해변에는 고운 모래가, 우도항 쪽 해변에는 작은 감자알만한 산호 알갱이들이 깔려 있다. 산호의 가지들은 바다 짠물과 해풍과 세월에 잘리고 부스러져 비늘같은 모래가 되고, 산호의 아랫도리 덩어리는 닳고 닳아 곱고 동그란 모양으로 되었다. 검은 현무암 바위 무리가 해변 중앙에 자리잡아 정취는 한껏 빼어난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 꿈같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자기의 이름도 새기고, 산호 알맹이들을 보듬으며 행복한 시간 속에 영혼을 묻고 있었다. 떠나기 싫은 것은 동일한 의견이고, 나는 가지 않겠다고 어린 소녀처럼 떼를 쓰기도 했다. 층층으로 겹쳐 발하는 저 황홀한 물빛, 이토록 몸을 다듬어 아름다워진 산호 조각들, 너희들을 두고 나는 어이 가란 말인가.
정말 마지막 여행지, 우도의 산호사 해수욕장은 떠나기 싫은 곳이었다. 전혀 가감되지 않은 소감이다. 다음 기회에는 꼭 이 우도에서 유숙하며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리라.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모래 언덕을 오를 때 제주도 특유의 돌덩이로 쌓아올린 담벼락 곁에 분홍빛 메꽃 몇 송이가 환히 웃으며 하직 인사를 한다.
신라 민박이라는 간판의 이국적인 집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육지 손님을 보고는 처음에는 짖더니, 큰 아들의 동물 사랑법에 녹아 꼬리치며 반긴다. 향기로운 풍경들을 가슴에 새기며 10시 성산행 배를 타고자 우도항으로 향했다. 아까 배에서 본 해녀들이 바닷가에서 자맥질로 바다 속을 넘나든다. 그렇게 우도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산호사 해수욕장 해녀동상을 어루만지며
산호사 해수욕장-옥빛 바다 물결과 아들의 아름다운 포즈
산호사 해수욕장-산호조각들이 아름답게 깔린 해변 풍경
산호사 해수욕장-어여쁜 산호조각들을 어루만지며 아들과 함께
산호사 해수욕장-다듬어진 산호조각과 아름다운 해초가 깔린 모습
산호사 해수욕장에서 수필가인 남편과 함께
* 성산 해물전골
우도항에서 오전 10시 배로 나왔다. 올 때는 2500원이던 요금이 나갈 때는 2000원, 배표를 받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올 때 500원은 성산에서 여객 터미널세를 받는 것이란다. 우도에서는 배삯만 받는 것이라며, 그 차이일 뿐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우도에서 성산으로 나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 1층은 자동차가 타고, 2층은 사람이 타는 곳인데, 하나의 넓은 마루 바닥의 방에 어느 부부와 우리 가족 세 식구뿐이다. 마루에서 휴식을 취하며 왔다. 15분은 금새 흘러가고 성산항에 도착했다.
성산항에서 내려 식사할 곳을 찾았다. 새벽 5시에 간단히 아침을 먹었기에 점심 식사를 이곳 성산 특유의 해물 요리로 하고 싶다. 제주시로 가야 하니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걸어가며 찾았다. 성산항 주변에는 큰 짐을 들어나르는 크레인과 어선들이 즐비하다.
조금 벗어나니 푸른 초원 위에 말 한쌍과 망아지 한 마리가 한가롭게 쉬고 있다.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엄마, 아빠 사이의 아기말이 앉은 모습이 너무 귀엽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조금 더 걸어 시가지에 들어서니 '전라도 식당' 이 깨끗한 외형으로 우리의 걸음을 이끈다. 그 곳에서 해물전골로 식사를 했다. 중으로 30000원, 밥값은 1000원씩 따로, 괜찮은 값이다. 주문하고 아침 신문을 보며 기다렸다.
젊은 여인이 차려준 해물전골, 우리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육지에서 먹어 본 해물요리와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잡힌다. 먼저 널따란 냄비에 해물만 한 가득이다. 다른 부 재료는 전혀 없고, 파와 마늘 다진 것 외에는 바닷가재, 게, 소라, 조개 등 모두 해물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전복이 7마리나 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작은 새끼 전복들이지만 육지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어서 신기했다. 껍질 속에 육질이 한 가득 들어찬 전복을 빼어먹는 기분이 묘하다. 껍질도 신기하였다.
또한 소라가 세 마리 들었는데 몸통 곳곳에 뿔이 나 있는 아주 크고 특이한 모양이다. 알맹이도 충실하고 맛도 좋다. 전복 껍질과 함께 세 개의 소라 껍질을 닦아서 가져왔다. 후일에 그것도 큰 추억이 될 것이다.
바닷가재도 단단한 각질이지만 넉넉한 인심으로 많이 넣어주어 푸짐하게 잘 먹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아주 맛있는 제주의 해물요리였다고 곱씹으며 왔다.
성산 해물전골
* 동회선 해안도로 일주
성산에서 정오 12시 제주행 버스를 탔다. 제주에 오던 날은 서회선 해안도로로 달리며 제주의 서편 풍경을 보았고, 지금 여행을 마치고 가면서는 동회선 해안도로를 달리며 제주의 동편 풍경을 보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서귀포에서 성산까지 온 것과 오늘 성산에서 제주까지 가면 동회선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것이다. 성산에서 제주까지 요금은 3800원,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이제 제주 여행은 이것으로 마치는 셈이다.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잘 마무리되고 있다. 긴장이 풀린 것일까. 한낮의 버스 안은 졸음이 엄습한다. 나는 조금씩 눈을 붙이고는 아름다운 제주 동해의 풍경을 디카에 담았다. 남제주에서 북제주로 오면서 보는 들녘 풍경은 서회선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르다.
짙푸른 동해 바다의 원경이 참 아름답다. 함덕 해수욕장 해변에는 풍력 발전소 풍력 바람 개비가 열 개도 넘는 숫자로 줄지어 서서 해풍에 빙빙 돌고 있다. 또한 야자수가 오랜 연륜의 몸통으로 숙소인 듯한 고층 건물 정원에 꽉 차게 들어서 있다. 돌담 밭과 감자밭 모두 정겹다. 만장굴 정류장도 지나고, 어느새 버스는 제주 시가지에 들어섰다. 울창한 가로수 풍경을 보며 제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 하차했다.
동해안 해변 풍력계
* 제주국제공항
제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공항까지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운전기사가 그렇게 알려준다. 세 사람이면 그게 낫단다. 그만큼 여기서 공항까지는 가깝다는 것이다.
제주 시가지에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특색이 가로수다. 예전에 왔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횡단보도 앞의 동백꽃 가로수는 절경이다. 붉게 핀 동백꽃과 울창한 잎사귀들이 곱다.
제주 공항까지 택시요금이 2000원, 기본 요금이 1500원이니 아주 가까운 거리다. 국내선 주차장에서 내려 공항으로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바깥을 구경하는데는 무리다. 예약한 비행기 시간은 오후 4시 50분인데 성산에서 낮 12시 출발하여 제주에 오후 1시 10분경 도착, 공항에는 오후 1시 20분 경 도착하였으니 장장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캔슬(취소)된 예약권이 있어 14시 10분 OZ8296, 아시아나 항공권으로 바꿔 주었다. 수학여행단 고등학생들이 공항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예전 나의 고교시절 목포에서 배멀미하며 제주 수학여행가던 것과는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다. 활기찬 모습들이 보기 좋다.
비행기 보딩타임은 출발 전 15분부터다. 1시 55분에 탑승하여 오후 2시 10분 비행기는 제주를 떠났다.
제주국제공항 아시아나 항공 앞에서
* 돌아오는 길
제주국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정확히 1시간 후인 오후 3시 1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오렌지 쥬스와 삼다수 제주 생수 1잔씩 승무원으로부터 서빙받아 마시고 나니 서울에 온 것이다. 새로이 바꾼 비행기 좌석이 1B, 1C, 1E 이어서 맨 앞좌석에 앉게 되어 오르내리기가 수월했다.
비행기 안은 꽉 찼다. 역시 수학여행단 학생들이 한 가득 메운 것이다. 1A에 앉은 창가의 서양 남자분은 신문을 조금 보다가 잠을 잔다. 여승무원은 그에게 음료수 대신 '편히 주무셨습니까' 라는 문구가 씌어진 종이 스티커를 그의 앞 벽면에 붙이고 간다. 기내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우리의 머리 위에 설치된 모니터 자막에 비행 행로와 속도 등 외국을 왕래하던 비행기의 안내와 동일하게 나온다. 798km/시, 눈에 들어온 속도가 어마어마한데 창밖은 고요하다. 서해 해안 위 육지를 따라 계속 오르고 있다. 군산을 지나 청주를 지나 서울 김포공항에 무사히 착륙하고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날씨는 제주와는 조금 다르게 시원했다.
김포공항에서 3시 40분 리무진 공항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오후 5시 30분, 꿈 속을 헤매고 온 듯 제주 여행이 아련하다. 종아리도 아프고 조금은 피곤하지만 한라산 백록담을 등반 완주한 이번 제주도 문학기행은 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준 뜻깊은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