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나는 탁구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 부침이나 성패와 비슷한 모습이 어쩌면 한 판의 탁구게임 속에도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평탄하거나 힘들게 시작되어 그와같이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시작과 다른 승패를 맛보는 경우도 있고, 옆에서 숨죽여 지켜보아야 할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굴곡있는 게임도 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이번 일본오픈 시합 중에 나 자신 수비수로서의 처지를 돌아보고 오래 생각에 잠기게 만든 것은 리우시웬과 우양이 치렀던 여자단식 8강전이었다.
평소 수비수에게 유난히 강한 면을 보이는 리우시웬이었기에 최근 우양의 상승세를 감안하더라도 무난히 이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였고, 그저 느긋하게 세계적인 공격수와 수비수 간의 공방기술을 구경할 심산이었다.
수비탁구를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으로 수비수인 우양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번에는 리우시웬을 응원하기로 했다. 작고 야무진 체구를 가지고 탁구대에 붙어서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줄곧 팔팔한 공격을 퍼부어대는 당찬 아가씨^^
내가 수비탁구를 연마하면서도 이따금씩 백핸드 쪽의 롱핌플러버마저 평면러버로 바꾸어 달고 전진에서 공격탁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되는 것도 리우시웬에게 반해서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리우시웬이 평소에 비해 공격 미스를 많이 범하고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워보이는 것으로 해서 불안감이 들었는데, 급기야는 큰 점수차로 앞서 가던 세트마저 내어주는 것이었다.
세트스코어가 3:0이 되고, 4세트마저 계속 한, 두점씩 뒤져 나가다 7:6에 이르자 나는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승패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지는 것 보다 영원할 듯하던 강자가 소리없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는 편이 더욱 슬픈 법이다. 백수의 왕 사자가 늙어 어린 표범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보게된다면 그런 심정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우상 리우시웬은 진정 강자였다.
불리한 전투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묵묵히 분전을 하고 있었다. 4세트를 기어이 따내는 것을 보고는 안쓰러움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반면 상대 선수 우양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듯했다. 5세트를 11:1로 턱없이 내어주는 것을 보니 더욱 그랬다. 이어서 6세트마저 11:7로 내어주고...
마지막 7세트를 앞두고 탁구대 앞에 섰을 때 우양은 어쩌면 아주 비극적으로 패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그리고 11:7로 패배가 확정되었을 때에야 퍼뜩 정신이 들어 쓰라린 후회감을 맛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탁구에서 3세트를 이기고 마지막 세트만 남겨 놓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방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세트는 없다고 보고 전력투구해야 한다. 한 세트의 승패가 그 자체로는 보잘 것 없지만 그 때로부터 마음자세를 바꾸어 놓는 점에서 전체 판세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탁구에서 10:8은 듀스와 같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선수들도 경험상 가장 역전이 잘 되는 스코어가 그것이라고 했다.
이기고 있던 지고 있던 항상 듀스라는 자세로 임하면 더 나은 게임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우양의 경기에 아쉬움이 남는 건 단지 그녀가 져서가 아니다. 단 하나, 수비수가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내리 4세트를 내주었다는 것으로 해서다.
수비수는 공격수 보다 더 끈질겨야 하고, 더 많이 참아내야 한다고 늘 눈물겨운 자기암시를 하고 있는 초보 수비수로서는 아무튼 그렇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글 좋아합니다~ 칼럼방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요 ㅎㅎ
역전패를 자주 당하는 사람으로 게임 시작할때 그 긴장감과 집중력을 끝까지 가져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신적인 부분도 무시할수 없는 본인에 실력이겠죠~~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