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의 생가로 이동한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어릴때 부터 고전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했는데,
“신곡” 중에서 단테의 인도자가 된 베르길리우스 처럼 라틴 작가를
규범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문학적 전통이나 아랍세계의 사상도 도입하고
구이니첼리의 영향을 받아 “사랑”을 탐구한건 1274년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비안키(백당) 에 속하였던 단테가 로마 교황청에 사자로 가 있는사이에
피렌체에서는 흑당이 우세해져 결석재판에서 단테는 시외추방과
벌금형에 처해졌다.그후 벌금을 지불하러 출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이 선고 되었으므로 이후 고국 피렌체의 땅을 밟지 못하고 떠돌이
망명생활 중에 “신곡”등 여러작품을 남겼다.

두오모 성당 본당

두오모 성당 종탑

두오모 성당 세례당 북쪽 출입문, 일명 천국의 문이라 칭한다.
외벽 수리중이다.
이탈리아 조각가인 로렌조 기베르티의 작품,
이 천국의 문은 이탈리아 미술의 위대한 걸작중 하나로 꼽힌다.
천국의 문이라는 말은 미켈란젤로가 이 문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천국의 문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오모
영어의 돔(dome)과 같으며 라틴어(語)의 도무스(domus)를 어원(語源)으로 한다.
영어의 돔은 반구형(半球形)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의 뜻으로 사용되는 데 대하여
이탈리아어의 두오모와 독일어의 돔은 대성당(大聖堂:cathédrale)을 말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말하는데, 큰 도시에는
모두 두오모 성당이 있으며, 그 중 밀라노와 피렌체의 것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인데, 과거 도시계획자들은 한 도시를 건설할 때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두오모를 배치한 후 주변에 시민광장, 관청, 공공시설, 상가 등을 배치하였다. - 두산백과 -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브루넬레스키의 유명한 돔 지붕이 얹혀 있는, 한때는 세계 최대였던 성당
두오모, 혹은 피렌체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바실리카는
현재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뒤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그러나 이 바실리카가 처음 지어졌을 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3만 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피렌체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배력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성당을 짓는 작업은 1296년에 시작되었으나, 축성을 받은 것은 1436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화려한 녹색과 붉은색, 흰색의 대리석 파사드,
르네상스 거장들 그림과 조각 작품 컬렉션,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돔 덕분에 명성이 높다.
이곳은 또한 1439년부터 피렌체 의회가 있었으며, 종교 개혁가이자 '허영의 소각'
(죄가 된다고 여겼던 사치품과 이교도적인 미술품, 책 등을 공개적으로 불태운 사건)의
주동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설교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성당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다. 1478년 피렌체의 공동 통치자였던
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가 라이벌인
피사의 대주교와 교황 식스토 4세가 보낸 이들에게 찔려 숨졌던 것이다.
그의 형이자 공동 통치자였던 '위대한 로렌초' 역시 칼에 찔렸으나, 무사히 몸을 피했고
이후에는 대주교를 목매달아 죽여 버렸다.
오래된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부지에 세워진 이 성당의 건축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로
시작하여 여러 건축가들이 맡아 보았다.
1331년 작업을 총괄하기 위한 협회가 창설되었고, 1334년에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토가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건축가 안드레아 피사노가 조수를 맡았다.
1337년 조토의 사망 후 여러 명의 건축가가 감독을 맡았으며, 원래의 계획을 확장하고
돔을 짓는 쪽으로 설계했다.
1418년 돔을 건축할 디자이너를 찾기 위한 공모전이 열렸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발되었다.
그의 혁신적인 설계는 발판이 필요 없이 스스로 지탱되는 돔을 낳았다.
돔은 1436년에 완공되어, 독창적인 걸작으로 남아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
이 성당은 피렌체 고딕양식의 걸장이라 손꼽히는 곳인데
이성담이 유명한 이유가 성당내에 있는 유명인들의 무덤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갈릴레오.마키아벨리,로시니등의 무덤이 있고 이도시의
출신인 단테만 이곳에 묻히지 못했고 가묘만 있다라는 얘기와
왜 단테가 이곳에 묻히지 못했는지 대한 재미난 이야기도 들을수있었다.
이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로마로 이동한다(1시간30분)
로마 근교도시의 ALBERGO ITALIA HOTEL에서 1박한다,
여장을 푼 후에 동행하는 일행들과 이탈리아의 진수, 와인과 피자로
우의를 다짐했다. 여행은 역시 좋은 분들과 해야 한다.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들은 모두 여섯 가족인데
서울(나). 부산, 사천(뉴질랜드,외국인), 대전 ,전주, 일산에서
오셨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더 교제가 빠르다.
벌써 전번을 나누고 또 귀국하면 밴드를 결성하자 하니
아이러니 일 밖에.....
5일째) 호텔 조식후에 이태리 남부로 이동한다.(3시간 소요)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했다.

폼페이 유적지 출입문 들어서자 마자 광대한 정경이 펼쳐진다.

비운의 고대도시 폼페이유적지
폼페이는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고대도시로 인구는 2만~5만에 이르렀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2~3미터 두께의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여버려 멸망되었으며,
16세기 말부터 발굴이 시작되고, 이후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꾸준히 발굴되어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한 폼페이의 생활상을 볼수 있었다.



당시 사창가로 이동합니다.

손님(?)이 오면 2층에서 호객하는 장소입니다.

18번 집으로 들어갑니다.

당시의 방입니다.
여러개 있습니다.

벽에도 실제 행위사진을 그려 넣었습니다.

아주 장사(?)가 잘 된것 같습니다.

수도관 배수관입니다.


마차가 다녔던 길...저 돌들 사이로 마차 바퀴가 지나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길을 지나갈때 돌다리를 건너는 걸 이해하는건 기본 ㅎ



폼페이는 처음에 발견될때 4미터정도의 흙을 겉어 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시 통째로 발굴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고 인정하므로 1인당
11유로가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폼페이는 빈부 차이가 많은데, 부자집(?)들 보는 재미로 다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집들이 공개를 하지 않아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집들의 내부구조, 정원, 공중목욕탕, 상가, 군사훈련소 등등 많이도 있지만
그걸 모두 보려면 하루에 어림도 없습니다.

벽에 하수관이 밖혀있으니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습니다.

1200년 전 각종 유물이 아무럴게나 전시되어있다.
우리는 500년만 되어도 진귀한 유물로 보관하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유물이 엄청 많기 때문이랍니다,
하기야 어디를 가나 다 유물들이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돌아오라 쏘렌토로 유명한
쏘렌토항구


쏘렌토 해안 절경

멀리 나폴리 항이 보인다.

소렌토-카푸리섬
카푸리섬~소렌토항에서 배를타고~~
나폴리에서 32km정도 떨어진 곳에 하늘빛 바다밖으로 솟아나온 작고 아름다운 섬!!
안나 카푸리를 관광~~~
이탈리아 반도의 남부에 있는 조그마한 향구도시 소렌토는 기후 조건이 좋고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소렌토하면 "돌아오라 소렌토"와 "솔레미오 "세계인들에게 더 알려진곳이기도 하다,


카프리 섬애 도척


카프리섬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리프트를 탔다.
아내는 여전히 고소 공포증 때문에 리프트를 타지 못했다,


정상에서 찍은 모습,
너무 장관이다..




이제 대형 쾌속선을 타고 나폴리로 향한다.
첫댓글 이탈리아를 한번에 어찌 다 돌아보겠습니까?
널린게 유적이고 절경인 것을...
쏘렌토의 아름다운 풍경이 자꾸 부르네요.
저도 얼른 내년 봄이 되어 다 돌아보고 싶어져요.
리차드님 덕분에 오늘도 행복한시간 보냅니다.
함께 흐르는 연주도 좋고...산타루치아~~~
ㅎㅎ
소녀같은 송설님이 있어
저도 재미가 넘칩니다.
정말 이탈리아는 둘러 보이는 것 모두가 유적입니다.
내년 봄에 송설님의 영상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