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서
한해가 저물어 간다.
꽃피는 봄날부터 찬 서리도 추워서 눈이 되어 내리는 겨울까지 내 가슴을‘울긋불긋’불태운 우리들의 많고 많은 일들과 일탈 그 사연의 이야기를 아직 다 나누지도 못 하였데 말이다.
일 년 열두 달을 보내는 12월의 말미는 하필이면 이렇게 무지하게 추운 날.
꽃피고 새 울고 비바람에 휘날리는 세월들은 날개도 비행기 없이도 잘도 날아서 간다.
유행가의 리듬 따라 세월 따라 구름에 실려‘두둥실, 불철주야’노니다 보노니
어느새 Christmas Carol 이 흰 눈 사이로 흘러내리고 고드름은 지붕을 타고 흘러내려와 한여름 밤의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바라본 세상들.
흘러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물결과 지난 간 날들을 회생하며 날밤을 새워서 추위에 차디찬 주워서 먹다가 햇살의 구애에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1장 12월의 달력 한 장의 31일.
딱 한 장의 종이가 주인장의 왼 손에‘확’붙잡혀
Apartment Cement 벽면에서 뜯어진 달력1장이 가랑이 갈기갈기 찢기어 휴지통에서 뜀박질해서 쫓아온 새해가 수줍어 창백해진 하얀 떡국과 붉은 동녘을‘헐레벌떡’집어 삼키면.
내일부터는 또 다른 한해의 첫날이란다.
참으로‘세월은 유수와 같다’속담과 같이 비바람에 돛대와 삿대도 없이 잘도 흘러간다.
나는 또 이렇게 나를 뒤 돌아본다.
머리를 극적이다.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을 ‘툭툭’처 본다.
허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수많은 날들 365일 밤과 낯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니 무슨 보람찬 생활을 했는지?
자신에 자아도취 혼란에 빠져서‘흥청망청, 허허실실’무의미하게 살지 않았는가!?
잘난 사람들‘시기질투’하며 허송세월 만 보냈지 않는가!
못난 사람들‘무시’하고‘없이’여기지는 않았는가!?
머릿속에서 생각의 새까만 개미들이‘꿈틀꿈틀, 간질간질, 요리저리’기어 다닌다.
모든 것이 다. 그 모든 것이 다.
힘들고 어렵다.
세상에 막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쓴맛을 알고‘응애응애’울음을 터뜨렸다고 내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어느 유명한 인류학 연구학자가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참 그러니까?
유아시절‘아장아장’ ‘발발대던’걸음걸이 연습.
학창시절‘무궁무진’한 꿈.
청년시설‘웃음만발’한 세상의 빛.
장년시절‘세상미래’를 짊어지고 광야를 물⸱불안가리고 내 달리던 뜨거운 혈기들.
이제는 식어서‘저물고 저물어’석양의 노을에 붉은 빛의 바다.
돛대도 삿대도 빼앗긴 드넓은 우주로 세월의 노를 두 팔로 저어 노을을 찾아서 서편 저쪽의 바다로 가 보려한다.
한참 늦었지만 깊은 밤이 지나면 또 다른 새벽이 기다리고
새벽닭이 울면 동녘이 밝아오는
세상의 이치를‘조금씩, 조금씩’찾아서,
깨우쳐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처마 끝에 고드름처럼 녹아서 흘러내리면 돌아오지 못 할 시간을 붙잡고 부질없이 매달려본다.
내일 아침이면 영상의 온도의 따뜻한 지난여름의 추억에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눈물을 쏟더라도,
봄의 아름다운 꽃들과 여름의 삼복더위 뙤약볕에 녹아내리는 속담의 염소의 뿔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좋아하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 오색찬란한 단풍이 되고 가실의 낮 알과 모든 생명체의 젖꼭지 곡간이 되어
따뜻한 아랫목에 펑퍼짐하게 좌정하고 앉아서
시금털털한 탁주사발의 찬거리로
‘누릿노릿’ 황금빛으로 굽고 삶은 해남 황토 물고구마와‘시큼 새 콥 달 콤’한 동치미에 달라붙은 기다란 무 잎과 섬유질 줄기를 곁들여 씹으며 들이키며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고 싶어서,
‘배부르고 등 따시면’
‘불뚝’튀어나온 배통은 장고 배꼽은 장고 채 삼아 두 둘 기며,
신신놀음에 빠져 보고 싶어서,
내년 봄에 내 곁으로 시집 올.
꽃동네‘아지랑이’손잡고 봄나들이를 미리 하고 싶어서,
‘플라스틱 눈가래’로 앞뒤 마당과 골목의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을‘대충대충’치워 놓고
또 이렇게 기다린다.
하얀 눈덩이 두 개를 질퍽이는 진흙땅바닥에‘이리저리’
‘때굴때굴’굴려서 위아래로 포개 만든 거지차림 눈사람에게 눈. 코. 입을 숯덩이와 지푸라기로‘비틀 바틀’붙이고,
여름에 태풍에 날아버린 허수아비 밀짚모자를 쓰레기통에서 훔쳐 와‘삐딱하게’씌워 놓고.
주마등에 촛불처럼 흘러가버린 세월과 쓰디쓴 인생이 눈썰매처럼 미끄럼을 타고 달리는 젊음 날의 그때 그 시절.
갈증에 매달려 놓고 보고 싶은 온 누리의 그리움의‘초롱초롱’빛나는 밤하늘 아래
노인네들 지팡이 발걸음 소리마저 끊인 한적한 시골 오두막집 배고픈 송아지 어미의 배 가죽에 착 달라붙은 젖통꼭지를 찾다 지친
지금은 다들 노인이 되어버린 1955~1963년생들의 비화.
박정희 대통령 시절「Baby Boom 세대」먹거리가 부족해서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하는 Campaign’ 에 동원 예비군훈련에서 제외해 준다는 하얀까운 보건소 아줌마의 말씀.
산하제한 정부시책에 착실하게 순응하여 보건소에 따라가서 각시 몰래 불알 두 쪽 까기 이전 날.
나만 믿고 따라 사는 미련곰탱이 마누라와 단 둘이서 날 밤새워 만들어 낳은 자식새끼들 곤충채집용 잠자리채를 만들려고 찢어버려 세월에 그을려 낡아빠져서,
한 가닥 남은 허름한 거미줄사이로 보이는「조약돌 토담벼락」 절반이 무너지고,
유실된 우사틈새로 엄마 몰래 도망쳐 뛰어나온 송아지들‘음매 엄매~에’울다가‘쌔근쌔근 푸~우 푸~푸~푸우’조용히 잠이 들어 잠꼬대하는 마실.
길모퉁이 녹슨 철판때기주름구멍마다‘가득가득’한 가득‘똥 보’터지게‘꾸역꾸역’다 채운 가로등 그늘의 찬바람에 눈보라 휘날리는 양철지붕 처마끄트머리 한해 말미에 매달려서
‘12월11월10월9월7월6월5월4월3월2월1월~~~ 어~어~어 올 해도
올해도하고, 거꾸로 매달려서‘자꾸자꾸’헤아려 본다.
‘내가 뭘 했는지 내가 누구지 나는 난’하고 슬레이트 박공지붕 양조장에서 마트에 납품한 천 원짜리 동네 막걸리 병 조동아리에서 국 사발에‘콸콸’쏟아 부어‘쪽쪽’빨고 또 빨아대는 취중의 꿈결!?
수줍어 고개 들어 처다 보지 못하는 낭랑 18세.
솜털이 뽀송한 처녀 봉긋 솟아오른 대리석처럼 곱고 매끈하고 하얀 젖 봉오리와 꽃가마 타고 엊그제 시집온 새색시
눈부신 오색 색동저고리 양팔 끝단 소매 깃의 유선형 같은 한옥지붕의 치미를 타고 흘러내린 봄. 여름. 가을의 이슬방울.
처마 끝에 와송(지붕지기)이‘덕지덕지’자라 파란이끼 녹슨 기왓장에 매달린 이슬의 눈물 고드름이 된 한해를 회상하며‘키득키득’실없는 미소를 머금고 웃으며, 또 다시 되 새겨본다. 끝
또 한해를 보내며
時人⸱隨筆家
서옥(書屋)/김 평 배(Kim Pyeong-Bae)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서옥오산길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