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고픈 저녁|김성춘
바다/안개/여백
- 열일곱, 시(詩)라는 안개 속에 갇힌 소년으로부터
조기현(시인, 문학평론가)
1.
이별의 순간은 아뜩한 것. 사랑의 열정이 고통과 허무로 뒤바뀌면, 익숙하던 길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시詩와 시인은 거기서 거듭나지 않던가.
2.
시인 김성춘의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를 일독하였다. 이 시선집은, 그의 등단 후 시력 50년에 걸쳐 출간한 시집 14권을 집성하여 대표 시를 자선自選한 것이다. 그의 시 세계, (아직은 큰 구도만 더듬어봤을 뿐이다) 진경眞境은 어떠할까.
그가 시작 초기부터 줄곧 열정을 기울여 노래해 온 주요 대상은 ‘바다’였다. 첫 시집부터 9시집까지, 그러니까 어림잡아 30년 동안 그는 줄곧 '바다'를 모티프(motif)로 시를 썼고, 세간에서 ‘방어진 시인’, ‘바다 시인’이라 불리기까지 하였다. 그 시편으로 이번 시선집의 1~2부를 채웠는데 그 비중을 축소한 셈이다.
무릇 시인이 어떤 대상을 깊이 천착해 들어가게 되면 그 대상이 변용되면서 상징성을 띠게 되고, 따라서 그 해석도 다의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의 시 세계에서 ‘바다’도 그렇다.
가장 낮게 엎드리는 사람만이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난 아직도 바다를 발견하지 못했다.
- 「난 아직도 바다를」에서
시인이 ‘바다를 발견’하고자 천착할수록, 그 '바다'는 그가 숨을 쉬고 흔들리는 모든 순간에 그의 의식 속으로 삼투된다. 그리하여 '바다'는 ‘애인’이기도 하였고 ‘모성母性’이자 '고향 혹은 본향'이기도 하고 ‘삶生의 은유'로 내면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점차 육안肉眼으로 보던 ’바다‘는 추상화 되면서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결국엔 '바다'가 한량없고 정체도 없는, 마치 ’안개‘나 ’투명감옥‘ 같은 것으로, 또는 ‘숨은 신(神, Hidden God)’과 같은 존재로까지 변용되었다.
그렇게 확장된 '사랑(혹은 관념 과잉)'은 감당하기 어렵다. 시인도 어느 순간 그 한계를 자각하게 된다. 사실 그 시절은 문학인들도 대개 사회의식에 기울어서 자유와 불평등 문제에 집중하고 민주화를 외쳤으며, 대중들도 그 의식이 자본주의와 유물론 사이를 오가느라, 실제 '바다'란 것에 존재론적 관심을 줄 여지가 적었다. 김성춘 시인의 ‘바다’는 무의미하게 그저 저만치 거기에 있는 것일 뿐이어서, 그로서도 혼자 부르는 노래, 그 사랑의 거리감을 지탱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그 어느 시점에서 그는 난파한 사람처럼 슬그머니 그 '바다'를 떠나왔다.
그 무렵 그는 어느덧 교직의 구속을 벗고, 비로소 ‘자유인’이 될 초입에 이르렀다. ‘사랑은 자유로운 것!’ 또 과연 어느샌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이 ‘경주’였다. 그는 경주 배반동으로 한옥을 지어 이주까지 결행하였고, 수년간 신라문화의 유허지遺墟地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어쩌면 신라의 흔적에서 숨은 숨결이라도 찾아낸다면 자신이 마치 신라인으로 부활할 수 있기라도 하듯이 ‘경주사랑’에 몰입했다. 그렇게 해서 시인 김성춘의 '경주사랑’은 후반기 시의 모티프가 되었으며, ‘바다’를 이별했던 시인 김성춘도 새로이 ‘경주시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기간에 창작된 그의 시가 ‘경주사랑’을 통해 생의 진정성을 담았다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진지한 물음에는 아직은 섣불리 답할 수 없다. 다만 그에 앞서 곱씹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시인 김성춘의 시심이 온 청춘과 시심을 바쳐 사모하던 ‘바다’가 그 자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오는 순간, 그러면서도 그 지향을 곧 이별로 굴절되게 했던 그 ‘아뜩한’ 순간을 되짚어 보려 한다.
바다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바다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은 바다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아무도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건너갈 수 없는 저 심연.
누구도 한순간도 고삐를 놓칠 수 없는 저 생의 얼굴
- 「바다가 나에게」에서
목숨 바쳐 사랑했다 싶은데, 오래 침묵하던 그 사람이 드디어 나에게 말문을 열고 던진 그 한마디가, “나를 사랑하기는 한 거야? 넌 나를 몰라!”하며 거절할 때,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랑으로부터 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러한 물음이 '진정한 신', 언제나 침묵하는 ‘숨은 신’의 물음이 되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성이 발생한다. '바다'라는 숨은 신은 그에게 바로 이렇게 물은 것이다. "너는 가장 낮게 엎드리는 자가 되려는가?" 물론 그는 즉답하지 못했다. 그 물음이 '죽음’까지 담보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3.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내 열일곱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그 시절에 읽었던 시 한 편,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가 있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덤불과 돌은 저마다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다 홀로다
내 인생이 아직 밝던 때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안개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어쩌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떼어 놓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이는 모든 면에서
진정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헤르만 헤세, 「안개 속에서」 전문
그 시절 내게 세상과 삶이란 한마디로 안개 속이었다. 별 뜻 없이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사춘기의 온갖 고민에 휩싸여 심적 방황을 거듭하고 있던 때였다.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는 그런 내게 생의 비극성을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진정 처음으로 '혼자'임을 의식하였고, “누구나 혼자”라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야말로 이 시는 '내 영혼을 처음 울린 시 한 편'으로 지금껏 내 마음속에 여진餘震을 주고 있다.
헤세의 시에서 말하듯, 삶이 환했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정겹고 빛난다고 느낀다. 바다든 하늘이든 모두 사랑으로 벅차다. 하지만 밤이 오고 안개가 가득 끼어 우리 시야를 가리면 세상도, 사람들도, 나날이 만나던 바다도 모두 알 수 없는 존재로 그 모습을 감추고,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 본디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혼자로서 마주하는 무명無明의 고독감보다, 그것을 뛰어넘는' 역설적인 현명함'이다. 우리가 실은 언제나 누구나 혼자이고 그런 사실을 어둠과 안개로 해서 새삼 깨닫지만, 그것으로부터 참다운 깨달음을 갈무리하는 것이 현명하며, 그러지 못하는 자야말로 진정 현명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차원의 현명함인 것이다.
헤세의 「안개 속에서」를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시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헤세의 '안개'로부터 나는 내내 시의 길을 걸어가려 했다. '안개'가 끼었다 싶을 때면 절로 시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시를 쓸 때면 늘 '안개'가 더 짙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열일곱 살이던 소년으로부터 어느덧 예순이 지났다.
4.
시인 김성춘은 평소 자신의 시론으로서 늘 "시에는 정답이 없고 명답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비스바와 쉼보르스카의 시 세계를 소개하면서도 그는 “모른다”라는 시어를 가장 유심히 되새겼었다. 그는 이번 시선집 서문에서도 “바다도 모르면서 바다를 노래했다.”라고 자백하고 있다. ‘모른다’는 것도 ‘안개’의 다른 말이다.
그러던 김성춘 시인이 경주로 와서는 무언가 답지를 써냈다. 나는 헤세식의 '역설적인 현명함' ― “모른다”를 되뇌면서도 “잘 안다”라고 역설할 수 있는 그런 경지를 김성춘의 시 「여백」에서 본다.
여백
- 경주 대릉원에서
대릉원은 여백이다
왕들이 떠나고
나도 어느 날 곧 그렇게 떠나겠지만
오늘은 살아서
그로테스크한 폐허 속을 걸어간다
그로테스크한 하루 속을 걸어간다
포플라 나무 위 저 까치 부부
왕들과 함께 산책 중이다
무덤이 말한다
삶은 노루꼬리보다 짧은 여행이라고
오늘은 잠시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빛나는 별에 와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걷는다
살아서 걷는 이 사소한 즐거움
삶은 아주 짧은 천국이라고
포플라 나무 가지 위 저 까치 부부도
잘 안다
왕릉 옆 흰 구절초도
잘 안다
“그로테스크한 폐허 속을 걸어간다.”라는 구절이 말하듯 경주에 와서도 시인 김성춘의 행로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그래도 이 시에는 비로소 그가 깨달은, 일종의 응답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삶은 노루꼬리보다 짧은 여행"이며, 또한 "천국"이며 "기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의하게 되는 것은, 마치 "그로테스크한 폐허" 속을 걷는 자신을 관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걸음 더 가면, ‘까치’도 ‘구절초’도 잘 아는 '사소한 즐거움'을 그제야 그 자신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고백, 곧 '역설적인 현명함'에 닿는다. 그의 마음이 '까치'와 '구절초'만큼이나 낮은 자리로 엎드리었으리라.
이 지점에서 다시 지난 물음 ― "당신은 바다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이 바다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다시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던져오는 물음에 그는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여전히 그저 “예!”로 답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답할 수도 없다. “예!”로 답하든 “아니.”로 답하든 서로 다른 말이 아니게 된다. 궁색해진 시인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예와 동시에 아니오”라고. 그러나 그런 말은 세상에 없다. 그래서 시인의 답은 침묵이거나 독백이며, 실제 현실에서는 그것이 무응답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그 답지는 '여백'이다. “대릉원은 여백이다.”라고 시작한 것이 같은 까닭에서다. 그래서 ‘경주’가 또한 ‘바다’가 된다. 이 시선집의 제목을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로 하면서 다시금 '바다'를 소환했던 근저가 여기에 있다.
5.
‘바다’와 ‘안개’와 ‘여백’, 이들은 이제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그 모든 본질이 '이별'이기에. 그러므로 누구든 진정 시인이라면 언제든 '이별'을 바탕으로 삼고서 사물을 대해야 하며, 그래야만 비로소 사물이 시 속에 용해될 수 있다.
‘바다’를 이별한 시인, 김성춘 시인도 '여백'을 발견하면서 거듭났다. 그의 시 「여백」에서 '까치 부부'와 '흰 구절초'와……, 그런 미미한 사물들까지 모두 하나의 명징한 응답이 되어 '여백'에 새로운 존재감을 더해 주었다. 이제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시와 시구들이 마치 난바다를 이루는 파도처럼 쉼 없이 출렁이며, 때로 윤슬을 깔기도 하고, 때로 폭풍을 일으키며, 속삭이며, 소리치며……, 우리에게로 무시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대여, 지금 그대가 보는 이 시대 세상살이가, 늘 보던 바대로 환하기만 하다면, 여전히 그대는 진정 현명하다고 할 수 없으리라. 오히려 '안개'가 끼거나 '여백'이 보인다면, 설레어도 좋다! 저 너머서 우리를 향해 오고 있을, '천국'이거나 '기적'이거나, ‘가장 낮게 엎드리는 자’의 몫일지도 모를 어떤 시詩를 곧 만나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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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시인, 문학평론가, 1982년 《시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경북대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시와반시》에 「아나키즘 시학의 가능성」 등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시집 『길들의 여행』이 있으며 경주문학상 수상을 수상했다. 현 국제펜경주지역위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