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사회와 선정의 필요성
얼마 전, 한 남성이 외상값 10만원 때문에 말싸움을 벌이다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방화를 저질러 4명이 사망하고 29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운전 도중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방 운전자에게 보복운전을 가하여 피해를 끼치는 일도 잊을 만하면 발생합니다. 이러한 삐뚤어진 범죄행위의 이면에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쏟아내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폭력성의 방향이 자신으로 향할 때, 자기살해, 즉 자살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률은 2017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28.7명으로, OECD 35개국의 평균 자살률인 10만 명 당 12.1명이라는 수치의 2.4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든 보복운전이든 자살이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는 그 방향성과 대상만 다를 뿐, 같은 원인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면역력과 힘을 키우고, 외부의 질병에 대응하여 튼튼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근육을 키워두면 갑자기 추운 날씨가 닥쳐도 감기나 몸살 등을 앓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나 병균이 몸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기에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 또한 몸과 마찬가지로 운동이 필요합니다. 몸의 근육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걷거나 뛰고, 때로는 아령이나 덤벨을 듭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선정’입니다.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자신의 내면 고요히 관찰하는 선정 또는 명상이 거의 생활화 되고 있습니다. 산업화 정보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는 개인의 가치관을 흔들어 아노미 상황에 빠지게 하거나, 그러한 사회변화에 대한 부적응 현상을 유발합니다. 좀 더 일찍 산업화를 통한 사회변화를 겪은 선진국들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선정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지요. 실제로 미국의 존 카밧진 교수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선정을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적용시켜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하는 새로운 의학적 패러다임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선정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2. 선정의 원리 – 멈추고(止) 바라보기(觀)
선정이란 명칭은 오히려 오늘날 명상이나 참선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종류에 따라서 약간씩 상이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그 기초적인 방식은 사실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멈추고 바라보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혜민스님께서 쓰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 또한 불교 수행의 기본 원리인 선정의 방법을 풀어서 쉽게 말씀하신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언젠가 한번 쯤 작은 웅덩이에서 가재나 물고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성급하게 물고기를 잡겠다는 의욕만 앞서서 웅덩이를 휘저어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가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흙탕물을 가라앉혀 웅덩이를 맑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멈추기(止)’입니다. 웅덩이가 맑아졌다면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자세하게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간혹 물고기가 숨어버렸다면 바닥의 돌을 조심스레 들어서 살펴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라보기(觀)’입니다.
이러한 선정의 원리가 실제 생활에서 적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멍 때리기 대회’라는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서울에서는 지난 2014년 제1회 서울 시청 앞 멍때리기 대회를 시작으로 2018년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가장 멍을 잘 때리는(?) 사람을 뽑아 왔는데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예선 경쟁률이 18:1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 채점방식의 기준이 되는 것은 먼저 얼마나 편안한 자세로 오랫동안 멍을 때리는지, 그리고 심박수가 처음보다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라고 하니, 나름 과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등수 여하를 막론하고 그동안 걱정과 불안해하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마음이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좀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니, 이 ‘멍때리기’ 또한 ‘멈추고 바라보기’라는 선정의 기본 메커니즘을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선정의 준비 – 지자량(止資糧)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선정을 실천해 봅시다. 멈추고 바라보기, 즉 선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앞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웅덩이의 흙탕물을 먼저 가라 앉혀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정을 효과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평소 욕심과 분노 걱정들로 흙탕물이 되어버린 마음 웅덩이를 맑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티벳의 쫑카파 스님께서는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에서 선정을 잘 닦기 위한 여섯 가지 준비단계로서 지자량(止資糧)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 적합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나) 욕심이 없어야 한다.
다)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라) 욕심 등으로 인해 꺼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마) 의미 없는 일을 버려야 한다.
바)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
먼저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과 관련하여 쫑카파 스님께서는 어렵지 않게 걸식을 행할 수 있고 훌륭한 스승과 좋은 도반이 있으며, 시끄럽지 않은 곳이라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본래 스님들을 위해서 설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가 불자들의 경우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마실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화장실이 가깝고, 좋은 도반과 스님들이 있는 번잡하지 않은 곳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정을 행하는 동안 방해요소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첫 번째 ‘지자량’인 것입니다.
‘욕심이나 욕심 등으로 꺼리는 마음이 없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같은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되어진 말입니다. 즉, 지나친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욕심뿐만 아니라, 기도나 수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또한 일종의 욕심으로서 선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마음마저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일을 버린다는 것’은 불필요한 잡담이나 생각들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말은 많이 할수록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처음 발심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할 때에는 반드시 두 가지 원칙을 지키게 하는데, 첫 번째가 묵언(默言)이요, 두 번째가 하심(下心)입니다. 묵언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방편이며, 하심은 출가 이전의 아상과 아만을 무너뜨리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청정한 계율’은 모든 수행의 기초이며 근본입니다. 미세한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외부의 거칠고 산란한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재가불자 여러분들의 경우라면 기본적으로 삼귀의계와 재가오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즉 몸과 마음을 다하여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살생, 투도, 사음, 망어, 음주라는 다섯 가지 불선업(不善業)을 행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4. 선정의 자세 – 좌선의(坐禪儀)
선정에 들어가기 위한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서는 중국의 선승이셨던 자각종색(慈覺宗賾) 선사께서 저술하신 좌선의에 그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좌선의 방법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만 인용해 보고자 합니다.
“음식의 양을 헤아려 너무 배부르거나 배고프지 않게 하고 잠을 조절하여 모자라거나 지나치게 하지 말라. 좌선을 하고자 할 때는 고요한 곳에서 두터운 방석을 두텁게 깔고 하라.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 후에 결가부좌를 한다. (중략) 두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고 서서히 허리를 편 다음, 좌우로 몇 번 움직여서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는다. 왼쪽으로 기울거나 오른쪽으로 기울거나 앞으로 구부리거나 뒤로 넘어가게도 하지 말고, 허리와 척추, 머리와 목을 똑바로 세워 그 모양이 부도(浮屠,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와 같게 한다. 또 몸을 너무 긴장시켜 호흡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귀와 어깨는 가지런히 하고, 코와 배꼽을 일직선상에 두며, 혀는 입천장에 대고 입술과 치아를 다문다. 눈은 반만 떠서 혼침과 수면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만약 선정을 얻으면 그 힘이 매우 뛰어날 것이다.”
오늘날은 사찰을 제외하고는 주로 의자나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 생활이 일상화 되어 있기에 그 방식을 일상생활에 맞게 다듬을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즉 가부좌를 틀고 앉기 어렵다면 의자 등받이를 세워서 자세를 바르게 앉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입니다. 다만 자세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점은 자세를 바로하기 위해 몸이 너무 경직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내려놓아 호흡을 편하게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혀를 입천장에 붙여서 공간이 뜨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눈은 너무 크게 뜨거나 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눈을 어떻게 떠야할지 잘 모르시겠다면 법당에 계신 부처님을 떠올리면 됩니다. 즉 부처님처럼 지긋이 내려 뜨는 것이지요. 그런데 눈으로 코끝을 보려고 애쓰기 보다는 자신의 무릎 앞으로 약 15센티 지점에 편하게 시선을 던져두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눈을 크게 뜨지 말라는 것은 주변 시야에 마음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눈을 완전히 감지 말라는 것은 수면이나 혼침, 잡생각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