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만의 이사 - 오랜만에 불암의 품속에 들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담은 석양 모습. 석양이 두 고층 건물 사이로 보였다.
오른쪽 높은 봉우리가 북한산 보현봉이고, 그 아래 능선으로 동지까지는
태양이 내려가면서 질 것이니 며칠 있으면 건물에 가려 석양 풍경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이 능선을 오르며 지는 이른 봄과 내리며 지는 늦은 가을이면 태양은
괴물같은 저 두 건물 사이로 불그스레 지면서 이처럼 얼굴을 보일 게다.
** 11월 30일(음력 시월 아흐레) 달의 모습이다. 태양이 지던 두 건물 사이로 높이 떠올라
서북쪽으로 흘러가다가 떨어질 것이다.
2014년 11얼 20일(목), 21년 간 정을 붙이고 살았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했다.
이사 전문 업체에 맡기는 식의 이사는 평생 해본 적이 없었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게 좋다는 진언을 들어 여러 날을 정리해 버릴 것들을 버렸지만 장기간
한 곳에서 살면서 쌓아놓은 물건이며 옷가지 등이 워낙 많아 이사를 와서도 다시
정리를 하며 버리는 고생을 했다.
내일이 12월 초하루, 짐 정리는 거의 되었지만 아직도 필요해서 쓰려면 그 게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몰라 헤매고,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집사람이
내 방으로 문득 들이닥쳐 '그 게 없네 '하면서 찾느라 야단이다.
불암산 기슭에서 살다가 새로 이사 온 아파트도 불암산이 지척이니, 어머니 같은
불암은 나를 벗어나지 말라며 붙잡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이사 덕분에, 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11월 들어 오랜 동안 조용히 지낼 수가
없었으며, 불암의 품속에 들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오후 마침 내리던 비도 그치고
여유가 생겨 집을 나섰다.
아파트 주변이나 양지 바른 곳에 피어 있는 꽃, 아직 나무 가지를 붙잡고 있는 단풍잎,
가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어서.
모처럼 갖는 이 자유로운 시간도 여느 때처럼 '마음에 닿는 연기(緣起)의 순간'을
포착하고, 나를 겸허히 돌아보면서 대자연과 침묵의 소통을 하는 작은 여행이었지만,
꽁꽁 얼어붙은 겨울, 죽음의 계절을 의식하면서 무거운 회색빛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싱싱함을 유지하며 피어 있는 화단의 꽃들을 만났을 땐 곧 닥칠 영하의 추위에 시들어
버릴 것을 생각하며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었다.
야초들은 거의가 누렇게 마르거나 말라가고 있었는데 군데군데 별꽃아재비는 초록의
빛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녀석의 그
여전한 끈질김에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오히려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에 끝내 매달려 있는 단풍잎은 그 자체가 고운 꽃처럼 여겨졌다.
바위 위에 떨어지고, 난간 기둥 위에도 떨어지고 ...... 단풍잎은 떨어져서도 아름다웠다.
우연히 허공을 날아 떨어지면서 순간 자리를 잡았는데, 그 자리잡음 자체도 예술적이었다.
우연함도 대자연의 섭리일진데 그 섭리 자체는 예술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 자주 걸었던 불암산 산길은 떨어진 낙엽으로 뒤덮여 누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불암은 어머니 가슴처럼 따뜻했고,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21년만의 이사, 불암의 품속을 벗어나지 못함이 어쩌면 운명처럼 여겨진다.
사실, 어릴 때 고향 집 산에 올라 멀리 마들평야 너머 아득히 보였던 불암산의 모습과
그 품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마을들을 바라보면서,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으며, 그런 세상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동경했었으니........................
지금의 불암산은 그 긴 산줄기들이 잘리고 까뭉개졌지만, 고층 아파트들에 둘러싸인 신세가
되었지만 그 깊은 마음이야 여전하리라 믿는다.
불암의 자비심을 믿고, 의지하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글, 사진(2014. 11. 30~12. 1) / 최멜라니오
이사 온 아파트(8층)의 내방에서 내려다본 거리 모습.
철책을 경계로 노랗게 떨어진 은행 잎으로 덮힌 안쪽과
인도쪽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빨갛게 익은 남천 열매. 오전에 내린 비로 물방울이 맺혀 있다.
바위 위로 떨어진 단풍잎. 임의로 떨어졌지만 그 자체가 예술이다.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붙어 있는 단풍잎.
떨어진 단풍도 아름답다.
햇볕 좋은 자리에 있는 덕으로,,,,,,아직도 꽃이 싱싱하다.
낙엽이 쌓인 곳에서 혼자 푸른 별꽃아재비
가지 끝에 핀 개나리꽃. 너무 서두른 것 같았다.
불암산 모습
탱탱항 배풍등 열매. 영하의 날씨가 되면 쭈글쭈글하게 변할 게다.
누런 낙엽으로 뒤덮인 불암산 산책로
한 겨울 떨어진 그대로 곱게 있었으면 좋겠다.
떨어진 단풍잎
나 아닌 너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최상의 아름다움에 앉게 하고,
그래도 아쉬워 뜨겁게 울며
굽는 손 끝내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토했다.
붙잡으려다 미끄러지며
손가락 끝이 살이 밀리어
진물이 났다.
진다고 당장 죽는 게 아니니
져서도 살아 땅위에 꽃으로 필 걸 아니
두려울 게 없으나,
마음이 붉고, 노랗고
온통 정으로 순수한
그냥 가슴뿐이었으니...........
단풍잎은 떨어져서 다시 산다.
세상 가장 고운 색의 얼굴들
서로 어울려 그 가슴을 마주 하며
떨어짐으로
평화로운 세상
찬란한 삶을 만난다.
글/ 최멜라니오(2014. 12. 1)
첫댓글 이사를 하셨군요? 5단지를 떠나셨나봐요?
새로운 집에서 더욱 행복하게 지내시고 새집이라면 환기 잘시키시고요...
낮설고 어색함이 있겠으나 새로움속에서 즐거움 찾으세요...
냄새가 좀 거시기합니다.
매운 날씨에 안녕하시죠?
고맙습니다. /최멜라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