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처제 같은 조카의 매력
류 근 만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고모부!. 오늘 오시는 거죠? 몇 시쯤 오실 거요? 다급한 목소리다. ‘걱정하지 마, 조금 있다가 출발하려고! 나도 거기 지리는 대충은 아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제가 오늘 근무지를 대천으로 바꿨어요. 천천히 오세요, 관광안내소 앞으로 오세요!’ 하면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토요일에 트랙터로 밭을 갈아달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트랙터 주인이 금요일에 시간이 된다기에 하루를 앞당겨 일을 끝냈다. 생각지 않게 황금 같은 토요일이 날 유혹한다. 바쁘게 지낸 탓인지 보령 해저터널이 개통되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농사철이 되기 전에 아내와 함께 나들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서천에 사는 처조카한테 전화했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근무하는 조카다. 대천에 살다가 지난해 남편이 인근 고등학교로 발령 나면서 서천으로 이사를 했지만, 해설사 근무는 여전하다.
토요일 근무지는 대천해수욕장이 아니고, 석탄박물관이란다. 내가 보령 해저터널을 거쳐서 안면도를 가려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해준다. 모처럼 고모부가 자기 관할 구역인 해저터널을 구경하러 간다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대천해수욕장 근무자와 바꿔서 토요일에 근무할 수 있다’라는 조카의 전화였다. 참으로 고마운 조카다. 큰고모 일이라면 언제나 자기 일처럼 알아서 처리하는 조카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나들이에 조금은 들뜬 기분이다.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마스크도 목에 걸고, 약봉지와 물도 챙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서둘러 출발했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도 바라보고, 내가 살던 고향마을도 지난다. 언제나 이맘때면 바쁘게 농사일했던 내 밭에는 다른 사람이 엎드려서 무언가를 심고 있다. 새 주인이 무엇을 심는지 궁금하다.
대천은 대전광역시가 되기 전에 내가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옛 생각에 취해서 달리다 보니 생각보다 일찍 관광안내소에 도착했다. 열 시 반이다. 조카가 반갑게 튀어나온다. 고모의 손을 잡고 관광안내소로 안내한다. 오늘 근무자는 특별히 두 사람이다. 한평생 관광사업을 하던 분이 해설사 시험에 합격하여 예비해설사로 근무 중이란다. 커피를 마시면서 일정에 관한 얘기를 듣는 중인데, 반가운 사람이 또 들어온다. 조카의 짝이다. 조카사위는 고등학교 교장이다. 오늘 동행하면서 고모부와 말동무, 술 동무를 하려고 온 것이다.
해설을 자처한 조카가 자기 차를 타라고 한다. 관광객은 두 명인데, 토박이로 삼 십여 년 넘게 살아온 해설사가 두 명인 셈이다. ‘오늘 하루 멋진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출발합니다’ 하면서 미끄러지듯 달린다. 성격도 활달하다. 해설사의 유창한 설명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고모가 먼저 묻는다. ‘윤미(조카 이름)야!. 바닷속 터널을 들어가면 물고기가 다 보이냐?’ ‘그럼 다 보이지! 하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윤미는 고모들과 제법 잘 어울린다. 고모들 다섯과 만나면 본인은 막내를 자처한다. 궂은일은 막내 몫이라면서 고모들 시중을 잘 든다. 고모부 몰래 고모들만 뽑아서 나들이한다. 제주도, 강원도, 경상도 등등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점수도 올린다.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소통하면서 한통속이다. 고모를 불러낸다고 고모부들한테 야단맞을 법도 한데, 하는 짓이 밉지 않다. 고모부들 해방하는 기교란다. 고모부들 마음 잘 알아주니 고맙기도 하다. 오늘도 큰 고모부 심심할까 봐, 자기 짝까지 대동했으니 말이다.
해저터널 속으로 빠져들듯 자동차가 미끄러진다. 해설사의 설명 들으랴, 주변 살피느라 목 운동, 눈 운동에 바쁘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보령 해저터널이 명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해저터널 중 다섯 번째로 긴 터널이란다.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 길이 6,927m의 터널이다. 상행선과 하행선이 분리된 구조다. 육상구간에서 암반 콘크리트를 뿜고, 암벽에 죔쇠를 박으면서 파고 들어가는 공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해저터널은 해저 면으로부터 55m, 중앙지점의 가장 낮은 곳은 80m다. 대형선박의 운항을 고려한 설계라고 한다.
바닷속을 차로 이동하지만 바닷속이라는 실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천정을 뒤덮은 조명과 CCTV 카메라, 대피 통로, 유입되는 지하수 배출 저수로, 유사시를 대비한 대피 회로 시설 등을 실감 나게 설명한다.
해설사 공부하느라 고생깨나 한 것 같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윤미 조카가 대견스럽게 보인다. 관광객이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해설사!.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이쁘다. 외국인들이 해저터널과 원산 안면대교의 위용, 공사 기법과 정교한 기술에 찬사를 보낼 때, 그럴 때는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해저터널을 나오면서 해설사인 운전자와 조수석의 짝이 소곤거린다. 네이버를 바꾸는 것 같다. 원산도에서 제일 유명한 찻집이란다. 전망 좋고, 차 맛 좋은 ‘바이더오’ 카페다. 회전식 계단을 걸어 삼층의 전망대에 올랐다. 삼면이 바다다. 밤하늘 작은 별들만큼이나 많은 섬이다. 환상의 풍경에 탄성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서 볼 수가 없다. 바이더오 포토존에서 조카사위 교장 선생과 인증샷!
원산안면대교로 진입했다. 진입인지? 진출인지? 두리번거리다 보니 영목항이다. 대천항에서 영목항을 가려면 90분 걸리던 길을 10분으로 단축했다. 영목항에 도착하니 횟집 앞에 걸린 횟감들이 유혹한다. ‘현해탄’ 횟집으로 안내한다. 술친구가 있어 좋다. 해설사가 짝을 배려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생각하니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회 맛도, 소주 맛도 밥맛도 짱이다.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행복, 긴 시간인지 짧은 시간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들이 눈치챌까 봐 살며시 일어나 식당을 나왔다. 이어지는 코스는 고남패총박물관이다. 역사유적이다.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당시 생활상을 보면서 숙연해진다. 일정을 끝내고 다시 해저터널로 접어들었다. 터널 안의 양면이 수족관 같은 시설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닷물의 압력에 의해 현 기술로는 불가하다는 해설사 설명은 이해하지만 말이다. 머지않아 수족관 같은 해저터널의 기술개발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처조카 부부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루를 보낸 시간이 정말로 행복했다. 공부할 때 가까운 거리에서 지낸 조카이기에 더욱 정겹다. 성격이 활달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조카, 고모뿐 아니라 고모부들한테도 칭송받는 조카다. 시댁의 장손 며느리, 친정의 맏딸로 듬직한 양가의 대들보다. 사회활동도 왕성하다. 싹싹한 문화관광해설사, 자상한 한글 선생님, 부지런한 교장 사모님, 그 외 내가 모르는 호칭도 여러 가지다.
만인한테 사랑받는 처조카 윤미 부부가 고맙다. 직장 없이 백수로 지내는 큰 고모부 심심할까 봐, 주말에는 언제든지 연락하란다. 주말에는 짝한데 해설사가 되라고 당부해 뒀다는 윤미 조카가 있어 스스로 위로가 된다. 대천에서 줄곧 살다가 지난해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잠시 외유 중이다. 올해 구월에 다시 금의환향한다니 기쁜 일이다. 부디 놀던 물 찾아와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나도 나이 한 살 더해지기 전에 대천에 자주 가고 싶다. 막내 처제 같은 조카가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