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 기간 동안 저희 신자들은 물론 국민들 모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분의 언행과 표정까지도 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무릎을 치고, 깊은 위로 가운데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교종이 다녀가신 뒤에 찾아온 공허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저희에게 스승이 없었고, ‘파파 프란치스코’와 같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었던 분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에게서 기대했던 것을 주교님들의 모습에서 다시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바티칸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분은 여러 주교님들과 더불어 우리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교종은 역시 ‘프란치스코’였습니다. 그분이 방한 첫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주교단을 만났을 때, 그분이 방명록에 남긴 깨알 같이 작은 사인은 그 나머지 여백을 다른 주교님들이 ‘교종과 함께 동반한다’는 의미로 마저 채워주기를 갈망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홀로 수행하지 않고 늘 ‘작은 형제들’과 함께 있었고, 프란치스코 교종 역시 안온한 교황궁에 외롭게 머물지 않고 콘클라베 당시에 자신이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인 성 마르타의 집에서 다른 주교들과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통해 ‘출퇴근하는 교황’을 처음 만나게 된 것입니다.
|
|
|
▲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한국주교단과 만남을 가졌다. 주교단과의 만남후 강우일 주교가 교황의 아주 작은 방명록 서명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사진공동취재단) |
출퇴근하는 교종, 출퇴근하는 주교 “길에서 만난 그들이 하느님 백성이다”
이참에 우리 한국 교회 주교들도 교구청 안에 마련된 주교관이 아니라 주민들의 거주 지역에 숙소를 마련하고, 다른 사제들과 더불어 생활하시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주교관에 머물게 되면 수줍은 신자들뿐 아니라 용감한 사제들도 주교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와 추기경 시절에 어떤 사제라도 자신에게 전화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늘 아침마다 형제인 사제들과 직접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강론 시간에 아무리 주교가 ‘소통’을 강조하더라도 스스로 사제들과도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 진정성을 누가 믿겠습니까?
숙소를 교구청 바깥에 마련하고 출퇴근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많은 선행의 기회가 주어지겠습니까? 교구청에서 늘 만날 만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때로 고위급 정부 각료들이나 군수들의 예방을 받고, 측근 사제들과 대화하는 데 머문다면, 정작 주교가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이 생전에 더욱 자주 소록도에 방문하지 못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따금 빈민촌에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누추한 잠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던 미욱함에 용서를 청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다 한 차례씩 현장체험 하듯이 가난한 이들의 삶의 자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접으시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당신의 천막을 치셨던 것처럼, 주교님들 역시 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래야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고서 골목길을 산책하는 ‘아름다운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교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저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라고 운을 떼었습니다. 아무리 주교라 해도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들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서야 ‘복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신학적 명제일 뿐, 주교님 자신의 삶으로 옮겨오지 못하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이 바로 하느님 백성입니다.
|
|
|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사진제공/교황방한준비위원회) |
거창한 교황 의자 바라지 않는 프란치스코 교종 마주치는 이들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할 특권의식
지난 16일 프란치스코 교종이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셨을 때 어이없는 해프닝이 벌어진 사실이 있습니다. 교종이 수도자들과 만나기로 한 사랑의 연수원에는 이미 4000여 명의 수도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넓은 공간에 선풍기 두 대만 달랑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종을 기다리던 수도자들은 무척 덥고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단상에 마련된 ‘교황의 문장’이 새겨진 거창한 교종의 의자는 새로 주문 제작했는지 비닐에 싸인 채 교황이 오기까지 내내 단상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교종이 오시는 시간이 임박해서 비닐은 벗겨졌지만, 교종 도착 한 시간 전에 먼저 도착한 교황청 의전팀은 그 의자를 곧바로 치워버렸습니다. 대신에 평범하고 작은 의자를 갖다 놓았습니다. 교종은 거창한 의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꽃동네에서 장애아들의 재롱을 지켜보시는 동안 내내 서 계셨던 교종입니다. 교종을 보고 이내 무릎을 꿇는 꽃동네 수도자들더러 황급히 일어나라고 하신 분이 교종이십니다. 다른 주교와 수도자와 자매형제들을 같은 눈높이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교종입니다. 직분으로는 교종이지만, 신앙으로는 다른 이들과 다름없는 형제라는 게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각입니다. 시복 미사를 위한 제대도 교종의 뜻에 따라서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낮게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니, 꽃동네 ‘교황 의자’ 해프닝은 교종이 방한 내내 보여 주었던 메시지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의 실수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단식한 단원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를 시복 미사 전에 만날 때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차에서 내려 김영오 씨와 같은 눈높이에서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한 형제의 마음으로’ 그분의 호소를 직접 듣고, 편지를 건네받으며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종은 자기 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으며, 우리 사회에서 특권층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고급승용차를 거절하고 작은 자동차를 선택했으며, 헬기 대신에 KTX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런 분이시니, 청와대에 방문해 높은 단상에 올라서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시간이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
|
|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가방을 들고 17일 오전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 소성당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교구 관계자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사진제공/사진공동취재단) |
“양의 냄새는 양 가운데서 맡을 수 있다” 교종은 마음속에선 여전히 ‘전하’이고 ‘각하’인 사람들 원하지 않아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교 직분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게 봉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교종은 자신을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주교는 바로 그 종에게서 주교로 임명되셨으니 ‘종들의 종의 종’이 아닙니까? 예전에는 교황을 성하(聖下, His Holiness)라 부르고, 주교를 각하(閣下)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종교가 곧 ‘정치권력’이기도 했던 시절의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폐기되기 시작한 가톨릭교회의 봉건적 유습은 아직도 사방에 잔존하지만,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이미 교황 대관식을 폐지하고 ‘즉위 미사’로 조촐하게 교황직에 올랐으며, 자신을 ‘짐(朕)’이라고 부르던 유습을 ‘나’로 바꾸었습니다.
광주학살을 딛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조차도 항상 자신을 가리킬 때 ‘본인은…’이라는 말을 썼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대주교 시절부터 누가 ‘대주교 각하(閣下, Your Excellency)’라고 부르거나, ‘추기경 전하(殿下, Eminence)’라고 부르면 즉시, ‘호르헤 신부’라고 불러 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대주교요 추기경에게 ‘신부’라니요.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제나 저제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늘 가난한 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호칭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마음속에선 자신이 ‘전하’나 ‘각하’인 것처럼 여기는 주교님이 없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복음의 기쁨>에서 주교를 ‘목자’라 했고, 그 목자는 양을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며, 때로는 양들 한가운데 거닐기 때문에 양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주교들에게서도 양의 냄새를 맡고 싶습니다. 그런 목자는 이미 목자라기보다 양 가운데서 양에게 봉사하는 양일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동일시하셨고, 베네딕토 16세 교종이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라고 하신 것처럼, 세상 가운데, 사람들 가운데 편견 없이 주저 없이 동행하는 주교를 기대해 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