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일보/ 2012.9.7(금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살만한 집
홍연희
비가 내리면
쏟아지는 빗줄기 다 받아내고도
여유 있게 운율을 불러주는 삶
양철지붕이 있다
엊저녁
골목 끝 집 수돌아비 술 걸음에 한방 채였어도
퍽! 소리 하나로
찌그러진 몸통 건들거리며
여전히 둔탁히 노래 부른다
측간 살이 서러워도
햇볕 그대로 다 받아 낸
엉덩이까지 치솟는 똥물쯤이야
아랑 곳 없이 잠시만의 찌푸림이
흔들거린다
하루 연탄 두 장으로
한 겨울이 따뜻한
아랫목 송사에 귀에 걸린 웃음
흐느적 바싹 마른 두 종아리에
불끈 힘주어진,
아직도 살 만큼 견디는 근육
◆시 읽기◆
근래 OECD국가 중에 한국이 자살률이 가장 높고, 행복지수가 가장 낮게 나왔다고 한다. 왜 일까? 사람들은 행복의 측도를 어디에 기준하고 있을까?
불과 50여년 사이에 초가집에서 슬레이트집으로, 양철지붕 판자촌이 고층아파트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하루에 연탄 두 장으로 한겨울이 따듯했던 시절, 함께 나누던 이웃이 있고, 빗소리에 젖고, 별을 헤던 아이들이 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두레반이 있던 시절, 붕어빵, 군고구마가 식을까봐 옷깃에 품고 걷던 아버지와 골목길이 있었다. 그때는 차라리 웃음과 꿈이 더 많았다. 온갖 고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낡은 골목에서 삶의 힘과 의지가 느껴지지 않을까? 물질문명 발달에 비례한 정신문화의 발달,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함께 가꿀 수는 없을까?
현대화에 밀려 황급히 지워진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성찰의 시 한편을 읽는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문예창작 전담>
첫댓글 제가 모셔 갑니다
편안하고 정겨운 풍경입니다.
어린시절 딱지치기, 구슬치기,전쟁놀이로 해를 넘기던 골목이 그리워집니다.
어머나.... 홍연희 시인님... 반가워요..
건필의 달인 홍 시인... 여전히 좋은글로 만나게 되는군요...
원주 여성 문학회장님으로 동분 서주 바쁘게 생활한다는 소식 전해 듣고 있지요....^^
아련한 추억의 세월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