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진도 이전 속담을 모테 농 것이 잔 있어가꼬
간간이 멫 개썩 싸묵싸묵 올레보께라.
가는 시월(세월) 오는 백발.
가는 손님언 뒤꼭지도 이삐다.
가라고 가랑비 있으라고 이슬비.
가뭄에넌 상동(향동) 사램이 양반.
가시나 못된 것이 홀엄씨 중신선다.
여시굴서 나옹께 호렝이 굴이더라.
까지 나무에 목매단다.
깨구락지도 움쳐야 뛴다.
개 꼴랑지 삼년 묵헤도 황모 안 된다.
개 폴아 두 냥 반.
모도 에레서 들어덜 봤을 거고 모도 알만한 야기덜인데
여그서 ‘가는 손님 뒤꼭지도 이삐다’넌 말언
내나 몬야치께 나온 야기로 먹으 껏이 읎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든 옹삭한 시절에 딸 집에 온 친정엄매한테
‘엄매 엄매 우리 엄매~! 엄매럴 봉께 내 눈은 요케도 방간데 엄매 그 입이 무서서 어짜꺼니라!’ 했든
그 안씨런 야기나 마찬가지로 먹으 껏에 대접하 껏도 벤벤찮항께 손님이 오래 눌러 앉이믄 꺽정이고 성가신데 얼릉 가 중께 그란 손님은 뒤꼭지도 이삐드란 야기제. 어짜답닌쨔?
이전 우리 풍속덜이
무슨 손님이든지 일단 그 집에 오먼 먹을 때 같이 먹고 잘 때 같이 재와주는 인심덜이었지라.
그랑께 이전 김삿갓 같은 이도 암 데서나 자고 먹고 글 잔 아넌 양반네 과객이로 또는 부잣집 행랑채서 시 한 수 읊어주고 자고 먹고 때론 새옷까장 얻어 입음시로 평생을 떠돌 수가 있었고
우리 에릴 때만 해도 지주도서 온 청(꿀의 궁중말) 장시나 대처서 온 상장시 항애장시... 덜언 모도 공짜(인사치레로 꿀 한 종지나 그 집 상을 한나 고쳐주든가 뭣 째깐한 거 주는 정도)로 자고 그 잠 잔 집이서 지녁이랑 아적밥까장 얻어 먹고 그케 숙박비 없이 공껏이로 댕갰잉께 그남둥 멫 푼 벌어가꼬 돌아갔었지라.
요새같일로 숙박비가 들었다먼 고까짓 것 한 짐 지고 온 그 물견덜이 멫 푼이나 된다고 돈을 냄겨 갔겄능가라? 일제강점기에 공출과 착취의 암울했던 시대럴 지내고 한국전쟁에 후유증이로 모도가 형편덜이 그케도 에럽든 그 시절까장도 널리 이로운 ‘홍익인간’ 이념에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남어있었지라. 덜!
그래서 없으먼 없넌대로 서로 함께 상부상조함시로 항꾼에 살어간다넌 미풍양속이 고대로 남었든 시절이었응께라.
12대(300년간) 만석꾼에다 9대 진사의 명문가 경주 최 부잣집이 있지라? 그 집에 가훈과 철학으로 육훈(六訓) 육연(六然) 역시 유명한 그 최 부잣집의 예를 봐도 소작으로 들어오는 3천 석 중에 1천 석은 가용에 쓰고, 1천 석은 집에 찾아오는 과객들 접대로 쓰고, 나머지 1천 석은 주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썼다고 했잉께.....
http://cafe.daum.net/jindogoon/IdOm/101
◈'가뭄에넌 상동(향동) 사램이 양반.'
봉호산 밑에 여그럴 이전 함씨 조보씨덜언 향동보담 상동이라고덜 불렀었지라.
그랑께 물 좋기로 진도서 젤인 이 동네넌 이전 말에 상동 사램이 읍에 와가꼬 "어디서 오솄소?" 하고 물으믄 날이 가물찍에는 "사~앙 도~동 서 왔소!" 하고 지~일고 거만하게 대답하고 마통이나 물찔쩍에는 "상동서 왔어라." 짜룹게 얼릉 대답 한다는 웃움에 소리도 있었어람쨔.
요새사 걍 틀믄 촬촬 나오는 수도 꼭징께 그라제만
이전에 가물어가꼬 물떼~리믄 존~ 샘 있는 동네 유세가 엥간했었지라? 덜?
지왕 상동 야기 나온 짐에 동리 유래럴 군지에서 찾어봉께
1570년에 뽕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뽕골’에서 ‘상목동’으로 의역했다가 약 300년 전에 상을 향으로 개칭하여 ‘향목동’ 또는 ‘향목구미’라고도 했당구만이라.
이전 고일면의 지역이로 지형이 목처럼 되었잉께 상목골 또는 향막동, 향동이라 하였넌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향동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항구만이람쨔.
고군면 향동리의 가련봉(佳連峰) 범바우에가 굴이 시 개가 있는데 여그 굴에도 마애불이 있어가꼬 내나 금골산 마애여래좌상과 유사한 입지적 조건에 똑같이 배꼬락지서 쌀이 나오다가 한 그럭썩 배끼 안 나와 가꼬 더 나오라고 짝대기로 배꼬락지럴 쒸신대미 그남둥 나오던 쌀도 인자 영영 더 안 나와뿌렀단 똑 같은 전설이 여그 굴 불상에도 전해지고 굴에는 구도자들이 머문 흔적이 있다항구만이람쨔.
상동이사라 자주 가 봤제만 여그 범바우굴은 저도 못 올라가 보고 야기만 듣고 전합니다.
◈‘개 꼴랑지 삼년 묵헤도 황모 안 된다.’
요 말에 황모(黃毛)넌 족제비의 꼬리털인데라. 요 황모로 빳빳한 세필(細筆)의 붓을 만드는 데 씅께 쓸모없넌 개털보담 훨썩 더 귀한 것이다 봉께 나온 야기로 요새 말로 하자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될까?’
야기 나온 짐에 붓 만들던 재료 야기 잔 더 하자먼
다람쥐보담 더 크고 시커먼 청설모라넌 짐성덜 알지람쨔?
어짠 사람덜언 외래종 다람쥐라고 하제만 이는 잘못 아는 야기고 이전부텀 우리나라에 있었든 짐성이여람짜.
요 청설모에 바른 이름은 본래 청서(靑鼠)로 이 청서에 털이 붓으로 만드는데 많이 쓰여서 그 털을 이르던 말이 청설모(靑鼠毛)였다 하지라.
그란데 이 청설모란 붓 재료의 이름이 유명하다 봉께 본래 이름 청서(靑鼠)보다 청설모로 부르는 사람덜이 많애가꼬 말무리(言衆)에 굳어진 결과 지끔은 청설모(靑鼠毛)도 청서(靑鼠)도 둘 다 표준어로 항꾼에 그 동물을 뜻하는 복수 표준어로 등록이 되었답니다.
◈'개 폴아 두 냥 반.'
그라고 우덜 에릴쩍까장만 해도 진도서넌 당골래같은 천민 구벨이 있어가꼬 양방 집안, 상놈집안 고런 구벨로 그런 칭하진(層下지다. 격차가 있는) 집안간엔 혼사도 안 하고 그라다봉께 ‘지미랑 은제쩍 양반인데 껀뜻하먼 양반 양반잉고? 그래 개 폴아 두 냥 반이다.’ 이케 말하기도 했었넌데라.
상민(常民)과 양반(兩班)에 구분이로 행세할라넌 옛날 지배 계층이었든 양반을 비꼬니라고 ‘개 한 마리 폰(판) 금사(가격의 진도 사투리)가 두 냥(옛날 화폐의 단위) 반잉께 개 한 마리가 양반 둘이나 같으다’는 야기로 비꼬고 놀리넌 말이지람쨔.
참고로 양반(兩半)이라는 명사도 있는데 이는 ‘한 냥에다가 닷 돈을 더한 금액’을 뜻하지라.
내나 ‘달포’란 말이 ‘한 달에 보름을 더한 날’로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얼 뜻하데끼람쨔.
** 진도 송현 출신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