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1:20-22
한 노인에게 임종이 다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면회를 금하였고,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자, 이름을 써서 누구누구가 지금 밖에 왔다가 그냥 간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명단을 듣던 노인이 한 친구만은 면회를 받아들였습니다. 입원실 안으로 들어온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니 다른 친구들은 왜 안 만나고 나만 만나려는가? 저 친구들이 오해하면 어쩔려구?’ 그러자 그 노인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곧 천국에서 만날 걸세 그러나 자네는 고집을 부리며 예수 영접을 안 했으니 이제 자네와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히 갈리는 거야. 지금 보지 못하면 영원히 못 볼 거야. 우린 다시 못 만나, 이 친구야.”하며 흐느꼈다고 합니다. 인생은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삽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말을 통해 용기를 얻고 사랑을 얻고 위로와 격려를 얻기도 하지만 무심코 흘린 말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와 수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는 말이 몇 마디일까요 ? 여러분 살아오시면서 가장 의미있는 말을 몇 마디나 하셨습니까 ? 누에고치가 입으로 실을 뿜어서 집을 지어 살듯이 사람은 일평생 그가 하는 말에 의하여 자기 인생이라는 집을 지어 가는 것입니다. 말에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들은 말은 뇌에 새겨지고, 그것은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에는 견인력도 있습니다. 들은 말은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한번 토해진 말은 씨가 되어서 심겨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끔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쏟아진 말은 나를 이끌어 가는 힘, 내 삶을 완성해 가는, 성취해 가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좋은 말을 많이 하며 사는 사람들은 좋은 열매를 먹습니다. 반면 나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나쁜 열매를 맺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운명을 바꾸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8) 말을 하더라도 의미있는 말을 해야 할 것이고 뜻있고 용기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은 축복의 용어를 많이 써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껏 살아오며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한 말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했습니까 ? 처음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옹아리 한다고 합니다. 옹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어머니들이 아이의 옹아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 아이가 말을 한다고 떠듭니다.
자기 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착각일 것입니다. 이 의미없는 옹아리를 시작으로 인간은 자기의 말에 무게를 싫게 되고 책임감을 느끼는 말을 하는 성인으로 자라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무게 있고 영향력있는 말이 언제 주어질까요 ?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는 말이야 말로 한 인간의 진실이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영혼에서 우러 나오는 말일 것입니다.
말에 얼마나 많은 거짓과 위선과 가식과 허영이 숨어 있던가요 ? 말이라고 다 믿을 수 없잖아요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말이야 말로 참이지요 , 단지 죽고 싶다는 말만 빼고요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족장들인 이삭과 야곱 요셉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서는 믿는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계시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는지를 보여 주고자 기록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역사적 사실성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지요 신약시대의 기록인 성경은 예수님의 일대기에서부터 조직 교회가 갖추어지는 과정 특별히 바울 사도로 인해 복음이 어떻게 세계로 전해 져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과의 관계를 연결하는 시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만이 구약의 율법과 계시가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이루어 지는가를 보여주며 신약과 구약을 연결하는 쇠사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 시대의 많은 믿음의 인물들에 대한
영웅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죽음 , 에녹의 승천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일대기 , 모세의 출생과 출애굽 , 기생 라합 삼손 ....,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믿음의 용장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것은 오시리라 약속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바라 본 것이라고 믿음을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위대한 믿음의 관한 소개 가운데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들은 모두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할 이야기로 말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이들에 관한 언급을 한 줄씩만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죽으며 유언을 남긴 것뿐입니다. 여러분 이삭이 누굽니까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제사하겠다고 손을 결박하고 칼을 높이 들었을 때 순종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엡6:1절에서 자녀들아 내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때의 자녀라는 말이 “ 테크난 ” 인데 이 단어를 창세기 22장에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여기서 아이 라는 단어가 테크난입니다. ,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길 것이니이다. = 여기서 청년이 테크난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힘을 쓸 때의 나이가 청년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25세 정도 였고 이삭의 나이는 25-27 살 정도 된 힘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나이 많아 늙고 힘없는 아버지 , 정신까지도 이상하게 되어 자신을 죽여 하나님께 제사한다고 하는 이 아버지에게 대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의 칼을 받아 들입니다.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머리굵은 자녀들이 순종하던가요 ? 무시하고 불순종합니다.
이것이 사람이예요 그런데 이삭은 가장 혈기 왕성한 시기에 아버지께 순종합니다.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 , 자신의 욕심 , 자존심이 죽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야곱을 소개할 때는 죽을 때에로 소개하고 , 요셉은 임종시에로 소개하면서 이삭 만큼은 장차 오는 일에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칼날 아래 있을 때 죽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은 언급도 안하고 죽을 때 에서와 야곱을 축복했다는 기록만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어때요 ?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천사를 만나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 격는 이야기 그의 12 아들 ,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던 이야기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어떴습니까 ? 형들의 시기에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에 감옥살이에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순결한 믿음으로
결국 총리가 되고 형들을 용서한 너무도 존귀한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의 믿음의 영웅담은 히브리서 13 장 전체를 채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이야기는 다 빼놓고 죽어가면서 자식들에게 유언하며 축복한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연구하며 이 부분에서 많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세 사람의 영웅담은 빼놓고 죽어가며 유언한 내용만을 소개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웠을 때 취했던 행동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이지요. 창 27 장을 봅시다. 1-4 죽기 전의 유언입니다. - 유언의 축복이 이어지지요 창 47 장을 볼까요 27-29 - 야곱의 유언 창50장 22 -26 - 요셉의 유언 이들의 유언의 내용을 보면 이삭은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라” 곡 축복한 것입니다. 야곱의 유언은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바라 나이이다 과 축복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때 자기의 유골을 애굽에 남기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가지고 갈 것을 자손들에게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 또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지금은 비록 남의 나라에서 더부살이 하는 신세지만 자손들이 복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축복입니다. 이렇게 이 세 명의 족장은 마지막 남겨진 시간 죽음의 끝자락에서 유언을 남겼으며 그 유언의 내용은 축복입니다. 축복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빌어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아무리 사랑해도 자녀에게 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돈을 주고 집을 주고 차를 줄 수는 있으나 복 만큼은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습니다. 복에 관하여서 부모는 자녀에게 빌어 줄 뿐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날마다 울며 기도하고 새벽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하는 것 모두 축복하는 거예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저축됩니다.
부모의 기도는 저축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시간에 역사하는 거예요 자녀가 그 축복의 통장을 꺼내서 사용하는 날이 옵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 우연이 아니예요 다 하나님께 빌고 빈 축복의 기도가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오래전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이 있었는데 4층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더랍니다.
주일낮 예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주일 저녁예배, 밤 예배, 철야를 하려고 하면 심각합니다. 교회에서 분위기 있게 찬송을 부르면 위층에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술집에서도 분위기 있게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부르면 위에서도 이름도 몰라요 ~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웅장하게 노래를 부르자! 위에서도 웅장하게 누가 사랑을 ~ 예배가 안되는 겁니다.
목사님이 한달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술집 좀 없어지게 해달라고. 작정하고 기도한지 25일이 지났는데 술집에 불이 났어요. 그런데 5층 술집만 새까맣게 타고 4층에는 예배당과 식당이 있었는데 커튼 하나도 안 탔어요. 술집 주인이 아래층에 있는 목사님이 술집 없어지게 작정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 불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는 겁니다. 목사님을 경찰서에 고소했어요.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술집 사장의 얘기인즉슨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 목사님이 "내가 술집 없어지게 기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기도했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그랬더니 조사계장이 "목사님 이상하네요. 술집 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사의 결론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믿음없는 목사의 기도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음.>
이 목사님 , 가장 중요한 순간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기도의 능력을 부인해 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 , 말 한마디가 천근의 무게 만근의 무게가 결정지어지는 순간에 하나님의 손을 높게 들 수 있는 것 그것이 신앙이 아닐까요 ? 만약에 이 목사님 기도의 능력을 시인했다면 하나님의 그 분의 목회와 교회를 손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모두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시간을 늘려야 하는 겁니다.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있어서 위대함은 그들의 마지막 시간에 가장 무게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축복을 빌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파란 만장한 인생의 멋진 삶 , 위대한 믿음의 삶 , 순종했고 천사를 만났고 총리가 된 이 사건은 그들의 잘남이 아니요 그들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였음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순종할 수 있는 위대한 믿음을 이삭에게 주셨습니다.
사기꾼 야곱을 족장으로 삼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불화 가정에서 태어나 형들을 고자질 하던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꿈을 주시고 해몽케 하시며 풍년과 흉년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들의 지혜와 힘으로 이룬 성공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인생의 가장 무게있는 시간에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의 말을 남긴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삭에게 가정 클라이 막스 같은 시간은 모리아산에서의 재물 사건이요 , 야곱의 클라이막스는 얍복 나루요 , 요셉의 클라이막스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제를 용서한 시간 같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때 그들의 클라이 막스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순간 믿음으로 자손들을 축복한 것이었습니다.
아무힘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고 아무 즐거움도 없는 그 시기 이제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그 순간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 잡고 자녀들을 힘있게 축복하는 그 믿음이야 말로 참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 성도님들 자녀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그 외롭고 고독한 시간 =
여러분은 가장 무게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자녀를 위해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 세명의 족장에게서 나타나는 또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약속의 백성으로 축복받았고 자기들도 약속의 백성으로 축복했지만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유목민으로서 또한 야곱은 조국을 떠난 애굽 땅에서 요셉도 애굽에서 이국인으로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마지막 무게 있는 시간을 위대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 평생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땅 한 평 없는 이방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소망을 갖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죽음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죽어도 하나님의 약속만큼은 살아 있음을 믿었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고 꿈이 현실로 되기 이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연결하는 쇠고리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날이 얼마입니까 ? 주채없는 말 , 헐거운 말 하지 마시고 인생의 가장 무게 있는 시간에 정말 복된 말만 하십시오 자녀들을 축복하세요 그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인생은 잠깐 왔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잘 산다고 뻐기지 마세요 잘사는것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돈 없다고 기죽고 한숨 쉬며 원망하는 말 마세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요 그 말이 자녀들을 옭아매는 저주가 됩니다. 우리 아파트에 노인정에 갔더니 두팀이 열심히 구들을 다지고 있어요 어르신들 20 명 정도가 되는데 화투를 치고 담배 냄새 가득하고 그것 뭐하는 거예요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 ? 젊은 사람이 왔다고 그냥 가면 안된다나요
노인들 있는데 막걸리 값이라도 내놓고 가래요 왜 이렇게 시간을 보내요 얼마나 부끄러워요 그들의 자녀들이 뭐라 생각할 거예요 10 원짜리 고스톱치는 부모에게 무슨 축복을 기대하겠어요 늙더라도 추하게 늙으면 안되요 나이 먹어가며 은퇴하고 등산다니고 낚시하고 골프치러 다니는 것 좋아요 한평생 고생하며 살았으니 마음껏 먹고 놀고 건강 챙기는 것 당연한 보상 같아요 . 부락산에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좀더 건강하게 살려고 - 그런데 그렇게 해봐야 10 년 더 살까요 ? “9988 234” - “아흔 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아프고 사흘째 죽는다.” 노년에는 잘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삶의 가장 무게 있는 그 시간을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아깝지 않습니까 ? 예수 없이 살면 절망이요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하지않을까요 무게 있는 말 할 수 있는 시간에 정치 , 경제 이야기 보다는 예수 이야기 해야 되지 않을까요 ?
몇 년 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복장을 한 이가 전쟁터에서 군사들에게 ‘나를 따르라’하며 그들을 이끌고 산위의 고지로 고생 고생하여 올라가서는 “ 여기가 아닌가 벼 ” 그래서 군사들이 다 뒤집어 집니다. 돈 , 명예 , 쾌락 , 합격의 고지를 향해 죽을 고생하는 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그것이 인생의 참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다.
인생의 참된 목표는 예수 믿어 죄사함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복되게 살다가 천국가는 것 그것이 목표 아닙니까 ? 그럼 그같은 사실을 알려주셔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 보다도 먼저 자녀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는데 그 기업들이 잘못될까 두렵지 않나요 ? 운전하기가 두렵습니다. 순간에 갑니다. 이번 주에도 새벽 시간에 운전하다가 갈뻔 봤어요
하나님의 축복 , 육신의 축복이 없는 것 같고 고생 스럽나요 ? 손에 쥐인 것이 없나요 ? 아닙니다. 하나님은 빈손의 기도 , 육신을 의지할 수 없는 절망적인 기도 그 기도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비록 나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한 것을 믿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며 약속의 고리를 이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우리 젊으신 분들요 연세드신 우리 성도님들 이야기 귀담아 들으세요 나이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 분들 얘기 고리타분해요 그런데 그 고리타분한 얘기 들으면 여러분 복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믿음 생활 잘하세요 , 하나님 사랑하세요 말씀대로 사세요 - 이 고리 타분한 말에 순종하는 것이 복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평생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삽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 , 꿈 많은 청년 시절 , 힘써 일하는 장년 시절 ,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출가시키고 = 이 인생의 좋은 시절이 지나면 누구나 어김없이 육신의 장막은 노쇠하여 벗을 날이 가까워 옵니다. 찬란한 인생의 황금기가 가고 인생이 저물어 갑니다.
정말 무게있는 말과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시는 어르신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전하시고 남겨진 인생의 걸음을 후배들이 귀감 삼아 걸을 수 있는 진실한 성도들 되어 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에게 부탁합니다. 옛날 것은 구닥다리로 취급하는 이 시대 , 나이를 숫자로 하잖게 여기는 이 방자한 시대지만 어른들의 진실한 권면에 귀 기울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셔서 복을 받는 젊은이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 교회에 어르신들의 축복하는 유언과 같은 무게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것이며 이 교회가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며 나라를 복되게 하며 세계 선교를 담당하는 유대한 교회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런 무게 있는 축복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복된 교회되고 이것을 누리는 가정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