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엑스포 성공의 작은 밑돌들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단군이래로 이번처럼 여수에 많은 인파가 모여든 적이 있었을까. 420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도 출정하는 거북선을 응원하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바닷가로 몰려나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대규모 인파는 돌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건 바로 여수 신항 일원에서 세계적 축제인 엑스포가 열리고 있어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여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번 행사로 여수는 세계 4대 미항으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진 느낌이다. 숨어있는 보석의 땅이 그야말로 김춘수님의 시 <꽃>에서 처럼 그 이름을 불어주니 의미가 살아나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여수는 빼어난 풍광으로 한껏 조명을 받고 있다. 아마도 이 엑스포를 계기로 이 지역은 앞으로 레저스포츠도시로 크게 도약을 할 것 같다. 그동안은 늘 교통과 숙박시설이 문제가 되어 각광을 받지 못했는데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그런 것들이 크게 개선되어 숨통이 트였다. 얼마나 잘 된 일인지 모른다.
여수에서 펼쳐진 엑수포는 장장 93일간 이어지며 수많은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 기간만도 5월 12일부터 8월 12일 까지 장장 4개월이다.
이 행사기간 인구 30만 명 소도시에 102개 국가가 참가해 각종 진기록을 쏟아냈다. 입장객은 총 820만3900여 회에 이르고 문화공연은 1만 3천 여회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유무형의 효과는 과히 메가톤급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사 운영 면을 보아도 성공적이다. 4년 전에 열린 인구 70만의 도시 스페인 사라고사의 엑스포가 고작 550만 명을 불러 모은 것만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번 여수 엑스포에서는 문화공연만 1만 3000여회, 국가의 날 행사 100여회를 넘게 개최하였다. 그리고 최대 볼거리인 빅오 쇼는 매일 빠지지 않고 선을 보여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처음에는 열기가 달아오른 건 아니었다. 홍보부족과 지리적 여건으로 한 달 남짓을 넘기면서도 일일 관람객을 채 4만 명을 유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분발하여 전시물을 다양화하고 홍보를 강화한 덕분에 당초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초장의 분위기다. 얼마 동안은 좋은 시설과 볼거리를 갖춰놓고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데 그런 염려는 여수 시민의 애향심과 이웃 시군민의 참여를 자극했다. 그 결과는 전 기간권 구입으로 나타났고 단 며칠 사이에 수만 건이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일찌감치 그 대열에 합류 했다. 나 한 사람이 무슨 큰 도움이 될까마는 이웃주민에게 참여 열기를 높이는 자극제가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마음은 결과적으로 74회를 다녀오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주로 현지 외국인이 자리를 지키는 국제관과 국가의 날 행사장에 스케줄을 맞췄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거다.
나는 그런 행사장을 찾으면서 특별히 두 나라를 잊지 못한다. 첫 번째가 투발로인데, 그 나라는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국가의 존폐를 기약 할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국가 행사장을 꾸미고 공연 팀 까지 파견했다. 자국 국가의 날에는 장관이 참석하고 남녀 공연 팀 10명이 전통 민속춤을 보여주어 콧잔등을 시큰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단지 나무 잎 몇 조각으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외침이 마치 세계를 향해 '제발 우리나라를 좀 구해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 하나는 인도양의 작은 나라 세이셀이었다.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겁다는 씨앗인 코코드메리 씨앗을 가져와 전시를 한 것이다. 특별히 보여줄 것이 없기도 해서겠지만 달리 보면 무엇하나라도 이색적인 것을 보여서 나라를 알리겠다는 의도가 읽혀져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듯 여러 나라에서 준비한 공연과 나라 소개는 더할 수 없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각국의 국기와 배지를 상당량 수집할 수 있었다. 그것을 지금은 잘 보이는 거실에 걸어놓고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엑스포를 생각할 때마다 어느 한 지인을 잊지 못한다. 바로 최대식 사장으로, 그는 영어와 일어 중국어를 무리 없이 구사하는 실력으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자원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그는 종합안내소에 배치를 받자 차량통행이 없는 새벽 시간에 나와서 구간 거리부터 점검을 했다고 한다. 보다 빈틈없는 안내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봉사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걸 들었다. '불평을 늘어놓은 사람을 위해서 때로는 여수시장이 되었다가, 때로는 박람회 조직위원장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국가수반이 되기도 했다'고 .
이 말 속에는 그간 사람들에게 부대낀 고충과 애향심의 열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단순히 안내만 해주고 말벗이나 해준 것이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을 위해 집에 대려와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표나지 않는 숨은 봉사가 있었기에 엑스포는 성공한 행사가 되고 또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엑스포 기간 동안 자원봉사자는 연인원 4만 5500명이다. 이들의 수고로 쓰레기 1692톤과 캔. 페트병 60여만 개가 무리 없이 치워졌다. 그런가 하면 가장 많이 입장한 날은 27만 명을 기록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사고한 건 없었던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태풍까지 비켜간 것도 부조를 한 셈이다. 하늘까지 도와주었음이다.
그런 뜻에서 행사 말미에는 주최 측에서 여수시민 감사의 날을 정하여 사의를 표하고, 행사 후에 자축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엑스포를 빛낸 5대 스타는 여니와 수니, 연안이, 디지털 겔러리, 듀공, 흰 돌고래다. 내방하여 추억을 담아 간 사람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상징물이 아닐까 한다.
새삼 돌이켜 보지만 이번 여수엑스포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먼 곳까지 발품 팔아준 관광객, 묵묵히 봉사해준 자원봉사자, 유관기관 종사자가 힘을 모아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행사는 폭염의 한증막 속에서도 작은 힘이라고 보태겠다는 시민들의 애향심이 심시일반 힘을 쳐져 빛을 발한 성과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2012)
첫댓글 청석님의 글을 접하니 여수엑스포가 새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엑스포 관람의 正鵠과
핵심을 잘 작품화해주셨습니다. 청석님의 글은 엑스포의 殘像을 샅샅이 적나라하게 정리 아름답게 표현하셨습니다.
최대식!? 좋은 글 잘 읽고 엑스포를 새삼 추억에 떠 올림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은 자원봉사자 대표로 시민회관에서 발표도 하고 서울도 올라갔습니다. 그분의 애쓴 봉사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엑스포는 누구하고 할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합쳐져서 성공엑스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수시민으로서 뿌듯하셨겠어요. 태풍까지 피해갔다니 천운까지 따랐네요. 성황리에 행사를 마치고 세계 4대 미항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으니.. 여수는 더욱 발전해 나가겠네요.
여수의 발전과 이미지는 에스포 전과 후로 확연히 바뀌었습니다.우선 도로가 대폭 개선되고 호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셨지요. 관광객도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요즘은 섬을 연결하고 대교가 놓여져서 볼거리가 더욱 많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