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장(2)
지구의 주소는 우리은하계, 오리온의 나선형팔, 태양계의 세 번째 별이다.
홍적세(洪績世) 마지막 빙하기(氷河期)인 사르탄 빙기.
지구상에 있는 모든 땅과 강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생명의 존재를 찾기 어려운 불모지로 변했을 때 유일하게 숨을 쉴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준 곳.
그곳은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바이칼이었다.
스스로 뜨거운 온천을 사방에 뿜어 풀과 나무가 무성한 초원지대를 형성하였으며 메가파우나(자동차 만한 거북이, 곰 만한 비버, 길이 10m에 이르는 뱀, 코끼리 만한 들소, 황소 만한 사슴, 사자 만한 고양이 등)의 천국이 되었다.
그곳에서 인간은 더 이상 추위와 굶주림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바이칼이 제공하는 물과 풍부한 물고기 그리고 사방에 널린 짐승들은 그들의 양식과 의복이
되어 가족을 이루고 씨족을 형성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무리중에 가장 강한 집단이 있었으니 이들은 바이칼의 한가운데 가장 큰섬에 씨족을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섬을 생명의 근원이라 하여 ‘알혼’이라 하였으며 스스로를 일컬어 ‘코리’라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만칠천년전 코리는 거기에 있었다.
태양은 동쪽에서부터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없는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로 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동토의 대지에도 봄의 기운이 찾아
들고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태평양 연안의 땅이 얼음에 녹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이윽고 새싹들이 그 동안의 기다림을 참지 못한 양 하나, 둘 앞다투어 땅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새로운 초원의 형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날짐승이 날라들고 뒤이어 들짐승이 찾아오자 초원은 이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서쪽으로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해 나갔다.
코리인들이 이땅을 찾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새로이 ‘삐알랑’을 건설하고 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사냥한 짐승으로 가족의
수를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늑대를 길들인 개를 사냥에 사용하였고 면돗날 같은 세석기로 짐승의 가죽을 벗겼
으며 낚시바늘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잡은 생선과 짐승의 고기는 흙으로 빗은 ‘그릇’에 담아 국을 끓여 숟가락으로 이를 떠먹었
으며 가족중에 아픈이가 있을 때에는 무궁화의 씨앗을 진통제로 사용하였다.
일년중 가장 고귀한 날을 선택하여 그들의 거주지 주변의 가장 높은 곳에 제단을 설치하고
잡은 물고기와 짐승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앉았다 일어서고 빙글빙글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함께 춤을추었다.
그들의 평화로운 나날이 그렇게 삼천년을 이어온 어느날 이땅에 갑자기 추위가 찾아들고 칼
바람이 초원을 유린했다. 짐승들은 풀을 뜯다가 선채로 얼어죽었으며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
위로 죽음으로 내몰렸다. 천년에 걸쳐 이땅은 다시 동토의 땅이 되었다.
사냥감을 잃어버린 코리인들은 짐승들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이윽고 도착한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바다였다.
황하와 압록수가 만나는 지점은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였고 남쪽으로 이어진 긴강을 따라
이때까지 볼수 없었던 수많은 무리의 사냥감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풍부한 물고기와 짐
승들은 그들의 굶주림을 한꺼번에 해결하였고 삶의 터전을 열어가는 원천이 되었다. 바야흐
로 그들은 새로운 번성기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 다른 인간들이 나타나기 전까
지는 그러한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이들은 이전부터 그곳에 터전을 마련하
고 살던 사람들로서 새로운 이주민과 사냥감을 공유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주민과 원
주민간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코리인들보다 체구가 작았으며 무기도 열악하
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코리인들은 그곳에 거대한 신전과 성을 건설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가축을 기르게 되었
다.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천문을 발전시켰으며 보다 크고 튼튼한 건축물을 짓기 위하여 수
학을 공부하고 발전시켰다. 그들의 새로운 평화는 그렇게 다시 삼천년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초원에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은 순식간에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켰으며 바닷물이 일으킨 해일이 초원으로 밀려들게 되
었다. 해수면이 엄청나게 상승하여 높은 산은 섬이 되었고 초원은 바다로 변하였다.
그들이 이룩하였던 찬란한 문명의 금자탑은 그렇게 바닷물속으로 사라져갔다.
코리인들은 갑자기 닥친 재앙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으며 동서로 혹은 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일부는 서쪽으로 초원을 따라 이동하였으며 삼천년에 걸쳐 대륙의
서쪽 끝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전에 볼수 없었던 거대한 초원의 바다를 보
게 되었으며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하였던 문명을 다시 한번 꽃피우기 시작했다.
북으로 떠난 일부는 얼음의 바다를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였으며 수천년동안 남하하여
꿈에 그리던 대초원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곳에서 그들의 조상에게 물려받은 문명을 다시 일
으켜 세웠다.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길 수천년동안 계속하였으나 더 이상의 재앙은 그들앞에 나타나
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은 대륙의 동쪽끝에서 서쪽끝까지 새로운 대륙의 북쪽끝에서 남쪽끝
까지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지금으로부터 사천년전에서 삼천년전후반에 걸쳐 지금의 유럽에서 이집트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또한 멀리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거대한 제국을 구축하게 된다.
코리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그들의 이 위대한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거나 묻혀져야할 과거의 아픈 잔재들일 뿐이며, 그들의 후손들에겐 철저히 숨겨야할 비밀로서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수천년에 걸쳐 그들의 거주지에 지금의 건축기술로도 풀 수 없는 동일한 형태의 크기가 다른 세 개의 구조물(피라미드)을 건설하였다. 모든 구조물은 그 배치형태가 오리온의 별자리와 일치하고 있다. 홍산(紅山)과 서안(西安), 이집트 그리고 마야, 잉카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갖고 있는 이 위대한 커넥션은 지금까지도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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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왼쪽부터 서안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마야 피라미드를 찍은 사진이며 맨 오른쪽은 오리온의 별자리를 찍은 사진인데, 아무래도 글로 보는 것 보다는 사진으로 보는 것이 더 실감이 날것 같아서 첨부해 보았네. 더 보기 좋은 사진이 있는데 급하게 찾으려니 잘 안보여서 이것이나마 올려드리니 양지 하시길...
우일님!
서장을 읽고 글의 방향을 파악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이!
한데 이 글은 무협의 장르내에서 다뤄지니 크게 깊이 있는 역사를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네.
수박 겉핧기나마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피라미드의 비밀을 찾아 나서는데 주안점을 둘것이네.
이미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풍부하니 한결 대화가 쉽게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드네.
우일님이 종교의 뿌리를 흰두교에서 찾고 있다 하니 그 결과가 무척 기대되는군.
한가지 덧붙여 드리고 싶은 의견은 기왕 가시는 길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시지 않으시겠는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몹시도 궁금하다네...
첫댓글 거사님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실에 꿰고 있습니다...역사에 남는 대장정이고 민족사적 과업이라 생각합니다...무협의 장르라고 스스로 폄하함은 왜곡을 사실이라 오해하고 있는 우중 또는 사실을 밝히면 안되는 자 들이 날리는 돌팔매질을 피할려고 하는 자기 방어책인 듯 보입니다. 오늘날 힘의 역학구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같습니다. 그러나 전 그것을 밝힐 수 있는 싯점이 임박해 있다 생각합니다..그 때가 되면 무협지라 칭할 필요 없이 정사로써 역사책에 당당히 오를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흰두교는 불교를 낳았고 예수도 불교와 전혀 상관없다 할 수 없고(기독교인들 양해해주시길..) 마호메트는 기독교와 분리 할 수 없으니 4대종교의 시발점은 흰두교라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흰두교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코리족이 천손민족이라 하였고 태양을 숭배하였으니 그것보다 더 큰 종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것이 거사님이 주장하는 민족의 이동시기에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발전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너무 억지 같은 추측이지만..
영국이던가 유럽 어느 나라에서 현존하는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조상을 찾았더니 만주지방 어느곳으로 나왔답니다. 약 1만2천년전이랍니다. 개는 사람과 같이 동행하는 것이니 거사님의 서장은 과학적으로도 뒷받침 됩니다. 바이칼 호수의 위도가 북쪽이라 겨울의 추위가 고대인들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나 화산호수여서 주위가 따듯했다는 것도 받아 들여집니다..추위가 찾아 왔다는 것은 화산활동이 잦아들고 지표면이 냉각되어 얼어 붙은 결과일 것 같습니다..혹은 그당시 발생한 대홍수가 이동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는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접어 들어 녹은 물들이 약해진 빙하뚝을 무너트려 대홍수가 빈번히 발생한 시기입니다
대홍수로 삶의 근거지를 상실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을 하였다는 가설도 고려해 봄직 합니다..
다음장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