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라 할머니들의 고통의 눈물
사회에서 물질적·정신적으로 소외된 어르신들의 삶은 고난의 나날이다. 사진은 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겹게 길을 걷고 있는 할머니.
이 지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임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됐습니다. 모임에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모임이 없는 날은 온종일 집에서 홀로 지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곳 어르신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지혜와 신앙으로 삶의 어려움을 모두 지나오신 분들입니다.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어르신들
이들의 지나온 삶의 여정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모진 세월을 꿋꿋이 견디고 살아낸 어르신들의 모습은 제게 무한한 존경과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운동도 하고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저 또한 다른 삶의 모습을 체험하기도 하고 이들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홀로 살고 계시는 올해 78세의 사비나 할머니는 “지난 주일부터 계속 배가 아프지만 병원을 믿을 수 없어서 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할머님들이 서로 자신이 알고 있는 민간요법을 알려 줍니다.
스페인어를 몰라 할머님들은 아이마라 원주민말을 쓰시는데 청년들이 제게 통역을 해주는 내용이 황당합니다. ‘눈이 아플 때는 당근을 잘라서 귀 뒤에 붙여라’, ‘위가 아프면 양파를 갈아서 뒤통수를 문질러라’, ‘아플 때는 코카 잎을 찧어서 물에 타 마시라’는 식입니다.
이들이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이곳 알토의 병원을 믿지 못하는 탓도 있습니다. 알토의 병원은 면허가 없는 직원이 있는 보건소여서 의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 시술의 분배와 불평등함을 곧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전통 의술보다 현대 의술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도 약품을 사거나 의사의 진찰을 받을 경우에 드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현대 의술에 접근하기가 거의 힘듭니다.
아래 라파스 대도시의 사람들은 과학 기술 문명의 혜택을 받고 발전하는 반면 이곳 알토의 절대다수의 사람은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며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이들을 지배하고 소외시키며 무시하게 하는 자본주의 경제 원리가 바탕이 되어 있는 이 나라의 사회 경제적인 특징이 그 이유입니다. 이들은 충치가 생겨서 치료가 필요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치아를 아예 뽑아 버립니다. 우리 본당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치아를 살펴보면 벌써 치아가 몇 개씩 비어 있습니다.
인생의 가시밭길도 신앙이 있기에
혼자 사시는 모니카 할머니는 가족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눈물을 보이십니다.
앙헬라 할머니는 손주 세 명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데 매달 나라에서 250볼리비아노스(4만원 정도) 받는 것과 집 앞에서 들나물 등을 팔아 생활을 하십니다. 열 살 된 손녀가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써야 하는데도 벌써 몇 년째 안경을 못 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새로 오신 마르셀라 할머니도 혼자 살고 있는데 이제는 눈이 잘 안 보이고 늘 집에 혼자 있는 게 슬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이 있으니 이제는 일주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합니다.
프란체스카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수도자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다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가 모두 떠나버려서 혼자서 노년을 외로이 보내는 어르신들은 서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울다가 웃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저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다가 웃다가 아이마라어 성가를 부르고 묵주기도를 하며 가난한 이들의 삶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이들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는 모두 고통의 가시밭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느님을 찾고 있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 때문에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의 신앙이 비록 민간 신앙과 혼합되어 가톨릭 교리와는 다른 전통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이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분의 이끄심을 믿고 있습니다.
이들의 마지막 바람은 평안히 기도 속에서 하느님 품으로 잘 떠나는 것입니다. 외로이 쓸쓸하게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두려움이고 공포입니다.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돌봄이 가장 먼저 전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려면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바탕을 둔 인간 관계를 지향하기보다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누어 주는 인간애를 발휘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 심지어 당신 자신의 몸과 피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으니 우리가 그분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이들의 고통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겠지요.
이들도 나눔의 기쁨을 알고 있고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비록 가난한 나눔이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도움을 받으면 갚을 줄도 알고 봉사할 줄 아는 민족입니다. 아이마라 원주민의 전통은 약속했으면 그것이 곧 법이고 스스로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이들의 좋은 풍속은 지금도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멀기만 한 복음화의 길
다음 모임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각자가 간식을 싸 오는 날입니다. 감자 하나라도 삶아 오라고 서로서로 당부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5볼리비아노스(850원)씩 걷습니다. 이를 못마땅해 하는 할머님들도 계십니다. 이들은 “이제 곧 죽을 텐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며 모임 유지를 위해 돈을 걷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저도 달걀과 고구마도 삶아 가고 고깃국을 끓이기도 하고 좋은 옷들이 들어오면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 본당 청년들은 돌아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임에 함께 봉사합니다. 봉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이곳에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가족이 아닌 남을 위해서 시간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청년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청년들에게도 큰 배움의 시간이 됩니다.
청소년 견진 교리 수업 중에 십계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제일 지켜지지 않고 있는 계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는 뜻밖의 대답에 왜 이 계명이 지켜지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정 폭력으로 맞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면 부모를 학대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들을 소유물로 여겨 온갖 궂은일을 시키고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가 늙고 힘이 없어지면 부모를 버리거나 찾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인들이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거나 버스에 좌석이 없으면 도와주거나 양보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혹시 돈을 주면 모를까!”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지켜지지 않는 계명은 ‘살인하지 마라’고 대답합니다. 싸움이 나면 욱하는 마음에 쉽게 사람을 죽이고 한번 형제들끼리 싸우면 평생을 안 보고 살고 이웃끼리도 쉽게 복수전을 펼치고 그것이 대물림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선교사로 살며 학교를 운영하는 수사님들은 이곳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려면 적어도 한 세대(40년)가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게는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모든 선교사는 현실에 발을 딛고 먼 미래를 향한 믿음과 확신과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야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주신 주님의 사명을 따르기 위해 현실의 벽 너머에 반드시 존재하는 희망을 품고 달려갑니다.
♥도움 주실 분♥
시티은행:622-00044-252-01 <김효진수녀>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도움 주실 분(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