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2001/12/01
우당탕-탕!!
느닷없이 한 녀석이 교실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조그만 주먹에 쥔 뭔가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모습에 깜짝 놀라 보니 누군가가 교실 밖에서 그
아이를 잡아당기며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잠깐의 몸싸움 끝에 내게 달려온 그 녀석의 손에는 빵 한조각이 들려 있었다.
뒤를 쫒는 녀석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싸움을 벌인 모양이다.
재빨리 내 손에 쥐어주고 나간 그 아이의 마음만큼 순수하고 소박한 빵을 잠시 목이 메어 내려다 보았다.
요즘엔 흔하디 흔한 것이 빵이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다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어 보이는 빵은 쟁취(?)의 대상이 되곤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직 촉촉함이 남아있는 이 빵은 대단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바로 얼마전에도 그 아이는 안쪽까지 딱딱하게 굳은 바게트의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왔었다.
여전히 친구들은 그 한조각을 노리고 몸싸움을 벌였었고.....
정말정말 미안하게도 난 그 바게트 조각을 아직까지도 먹지 못했다.
난 교사로서의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지 싶다.
별로 맛도 없고 오래되어 보였다.
손 때 묻은 아이의 손에서 손으로 싸움을 통해 뜯겨나가간 후의
딱딱한 빵조각은 사실 별로 매력이 없었다.
그렇게 책상 한 구석에서 먼지를 덮고 있는 그 빵을 바라보며 난 새로 가져온 빵조각에 천천히 입을 대 보았다.
맛있다.
아이의 사랑과 애정의 손때가 이제는 더럽지 않다.
왜 난 빵을 받았을때 그 작은 조각에 담긴 아이의 마음보다 그 손을 먼저 생각했을까?
그럼으로 왜 지금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게 했을까?
역시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의 한계인가?
문득 며칠 전 비오던 날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 학교는 급식소와 교실 사이에 몇미터의 공간이 있어서 비가 오면 그 몇 미터는 비를 피할 수가 없다.
비가 많이 오면 우산을 들고 가기도 하지만 번거로워 그냥 잠시 비를 맞으며 뛰어 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 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녀석이 재빨리 뒤따라 나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애정표현에 적극적인 그 녀석은 언제 어디서 마주치든지
달려와 나를 포옹한다.
나를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보통 다른 날 처럼 내 팔을 저당잡힌 채로 걸었는데....
비를 맞아야 하는 장소에 이르자 나는 내 옷으로 그 녀석을 가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한사코 거부하며 자기의 잠바를 높이 올려 나를 비로보터 가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 녀석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더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가진 애정을 보여주는 일은 그 녀석의 조그만 잠바 밑으로 내 머리를 집어넣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작은 키의 3분의 2에 불과한 그 조그만 아이의 잠바 밑에 내 머리를 넣기 위해 난장이 걸음을 걸어야 했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팔월의 크리스마스의 포스터같은 낭만적인 장면은 되지 못하겠지만
내 마음의 보석상자 속에 오래오래 간직될 보석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또 다른 보석들과 만나고 있다.
진실된 마음과 만나는 소중한 추억이라는 보석들을.
난 가끔씩 슬퍼질 때가 있다.
저토록 날 사랑해준 녀석들이 어느덧 자라서 우연히 나를 길에서 만났을때,
그토록 어린시절 동경하고 좋아했던 선생님이
그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인 것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슬퍼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 녀석은 모를게다.
그 녀석의 그 철없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애정이 나이들어가는
교사의 마음을 얼마나 젊어지게 만들어주었는지...
척박하고 메말라간다는 요즘 세상을 살면서도 난 그런 세상을 살지만은 않았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는 용기와 추억을 자신이 만들어 주었음을...
지금 젖어있는 내 눈빛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이 촉촉한 빵 한 조각이 어설프게 선생노릇을 하고있는 이 못난 사람을 얼마나 매섭게 채찍질하였었는지...
그리고,
노년이 되어 꺼냈을 때에도 두고두고 빛이 바래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의 보석으로 얼마나 풍요롭게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채워주었는지를.....
카페 게시글
´″```°³◑이야기 방
내 마음의 보석상자 /심안나 선생님(인천부평초등학교 교사 )의 일기
쥔장
추천 0
조회 53
05.01.19 09:29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이글 훔쳐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