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4일
제목 노인을 공경하라
본문 레위기 19:32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8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를 따라서 목욕탕엘 갔다. 여탕에 들어갈 때마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다섯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입속에 넣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라고 말하여 곤욕을 치는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든 후에도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엘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나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은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거라며 마음대로 아버지를 비방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때에야 아버지가 자신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게를 지고 살아온 아버지의 등짝의 살이 시커멓게 죽어 있음을 발견하고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주께서 모든 어버이께 하나님의 축복을 내려 주시길 빕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어버이 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나눌 때 큰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노인을 공경하라
존경을 색깔로 표현하면 어떤 색이 어울릴까요? 본문에 존경의 색깔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흰머리 앞에 일어서라”고 합니다. 노인을 공경해야 뜻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말도 역시 노인을 존경하라는 표현입니다. 반복은 항상 강조하는 것이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식고 있습니다. 내 부모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이웃집 노인, 동네 노인, 길거리에서 만난 노인, 버스에서 만난 노인을 공경할 수 있을까요? 지난주 원로 목사님을 뵌 적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회에 참석했는데 한 사람도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다시는 노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경제적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노인은 경제적인 가치가 떨어집니다. 이단들도 노인은 데려오지 말라고 합니다. 노인들은 보살필 일이 많고, 병문안을 자주 해야 하고, 장례를 치러야 하는 번거로움만 줄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산법으로는 노인이 많을수록 손해입니다. 세상은 노인을 짐으로 여길 뿐 존경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노인을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은 사람이 고치거나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따라서 우리는 모든 노인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인 공경함이 하나님 공경함이다
오늘 말씀의 배열을 보면 의미심장합니다. 노인 공경 다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기록자의 실수가 아닙니다.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것입니다. 노인공경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함과 하나님의 경외하는 일을 나란히 배열함으로 노인 공경의 중요성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하나님 공경함과 같은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그분을 믿음이며, 그분을 공경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노인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다른 계명이 아닙니다. 노인공경은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이며,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함이 믿음의 일이듯 노인 공경함도 믿음의 일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노인 공경도 잘해야 합니다. 예배와 전도와 기도가 하나님의 일이듯이 노인 공경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노인 공경이 하나님을 공경함이 됩니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노인 공경은 교회의 사명이다
세상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노인공경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세월이 갈수록 노인을 공경하는 일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10년 후엔 노인 공경은 옛날이야기 책에나 나오는 일이 될지 모릅니다. 15년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부모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5명 중 1명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봅니다. 어두울수록 빛이 필요하듯 세상이 노인에게 무관심할수록 교회는 노인 공경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노인 공경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당연시할지라도 교회는 불변의 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경전으로 삼기에 노인 공경을 계속 해야 합니다. 교회는 노인 공경의 덕행이 땅 위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인류사회에서 노인 공경이 계속될 수 있게 할 책임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노인들을 공경할 때 마을이 훈훈해지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할까요? 이웃 어른을 섬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녀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것이고 그들이 본대로 우리에게 행할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올 때까지 노인 공경을 잘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노인 공경 어떻게 할까?
노인 공경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섬김부터 시작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노인들을 만나면 따뜻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도 아주 좋은 섬김이 됩니다. 나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마을 노인,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노인에게까지 친절하게 다가가서 아는 척해주고 손을 잡아 드리는 일부터 해보십시오. 소외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공손한 인사는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서 섬겨드림도 좋은 방법입니다. 노년에 자녀나 요양보호사들을 통해서 돌봄을 받는 분들도 있지만, 사각지대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발굴하여 빨래나 청소, 시장 봐주기, 병원 동행, 고장 난 수도, 전기를 고쳐줄 수 있습니다. 반찬을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벗이나 전화 안부도 소중한 섬김이 됩니다. 나보다 나이 든 분들이나 몸이 아픈 분들을 보살펴 드리면 좋을 것입니다.
이미 성도님들 중에서 그렇게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박수를 받을 일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역모임 때 돌봄이 필요한 이웃이 없는지 의견을 나누어 보십시오. 학생회원들, 청년회원들도 마을 어르신들을 섬길 선한 뜻을 계획해 보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이면 섬겨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내 이웃 중에 보살핌이 필요한 분이 없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떠오르는 분이 있거든 그분을 섬기십시오. 한 날을 정하여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섬겨드리십시오.
노인 공경은 기도나 전도만큼 중요한 믿음이 일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이웃의 노인들을 섬겨드리기 바랍니다. 노인 공경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다음 주일 어떤 도움을 실천했는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인 공경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노인 공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보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노인공경에 힘쓰는 교회를 크게 복 주실 것이고, 노인 공경에 시간과 물질 그리고 몸을 드리는 개인들에게도 땅에서 잘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2-3)
상을 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지만, 연약한 우리를 격려해 주시려고 땅에서 잘되고, 장수의 복을 내려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다분히 구약적인 색채를 가진 축복인데,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뜻으로 받으면 됩니다. 하늘 아버지는 노인을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하여 땅에서 잘되는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