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 2019년 4월호[제210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는 농부로 성장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수필과비평≫은 작품수준, 신인다운 치열한 작가정신, 앞으로 창작활동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신인상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 유인실, 오양호, 백남오
| 김경희 <봄봄>
| 석위수 <영어가 서툴러서>
| 이지영 <달콤한 울림>
신인상 심사평
김경희 <봄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펼쳐 보이는 글이다. 이제 청년들의 취업문제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시대의 문제가 되었다. 계속되는 취업 준비는 결국 부모 자식 간의 관계마저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과장도 위악도 위선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취업 준비에 배어 있는 고통은 그런 상황을 둘러싼 부자간의 냉랭하고 짠한 무늬들로 그려지면서 그 긴장감이 매우 절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행간에 깔려 있는 메시지는 ‘봄’의 의미이다. 겨울을 견디고 나면 머지않아 봄이 오듯이 부모와 아들이 감당해 내는 고독한 신념이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다한 메시지 전달보다는 ‘보여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삶에 진지하게 근접하는 작가적 자세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우리 시대에 대한 수고로운 질문이 믿음직스럽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을 축하한다.
석위수 <영어가 서툴러서>
수필이 자조의 글이라 할 때 그것은 고독한 자기성찰이기보다 자기애가 되기 쉽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과시Narcism 욕구가 그런 충동을 유발한다. ‘수필은 필자의 인격이다. 수필은 인격과 덕성의 반영’이라는 말은 이런 인간 성정과 관련된다.
<영어가 서툴러서>는 곧 절제와 위트를 활용하여 독서욕을 자극한다. 가령 “회사가 큰 상을 받게 된 것은 영어가 서툴러서입니다.”가 그렇다. 이 문장은 ‘회사가 큰 상을 받게 된 것은 영어를 잘해서입니다.’가 되는 게 좋다. 중요한 대화는 보통 긍정문이고, 상을 받으니 그렇게 말해야 듣기 편하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상식적 발상을 뒤엎어 버리는 반전反轉으로 독자의 기대를 순간적으로 배반한다. 그런 뒤 정색을 하고 딴소리를 하나 더 보탠다.
“혹시 저를 아십니까?” 슬쩍 끼워 넣은 이 말이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석위수가 원래 이런 어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선천적으로 수필가가 될 자질이 있고, 임기응변이라면 글재주가 상당하다.
정진을 바란다.
이지영 <달콤한 울림>
엄마는 매일 아침 자식들의 안부를 전화로 묻는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내용이며 때로는 새벽잠까지 깨워 귀찮기도 하다. 그런 엄마의 전화가 어느날 갑자기 잠잠하니 궁금증이 밀려올 수밖에 없고 확인 결과 치매초기라는 진단이다. 유달리 기억력이 좋았던 엄마가 일흔 초반이라는 나이에 이런 증상이 온 것은 외삼촌 장례식 후 두 번의 교통사고와 삶의 애환이 원인이었으며, 지금은 엄마의 전화가 달콤한 울림이 되어 기다려진다는 내용이다.
현대사회에서 치매라는 수필의 소재는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영의 <달콤한 울림>이 돋보이는 이유는 논리사유가 아니라 형상사유로 잘 직조되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치매의 증상들을 희화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미세한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더불어 고향집 뜰에 있는 한 그루의 감나무를 엄마의 객관적 상관물로 등치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문학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유와 글의 전개능력이야말로 오랜 습작의 결과로 보이며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라 하겠다. 등단을 축하드리며 훌륭한 수필작가로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