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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토리
조선 제14대 왕 선조는 정말로 무능한 왕이었을까?6
Bodri 이웃추가 | 2014.08.2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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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얘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KBS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104부작으로 방송되었던 <불멸의 이순신> 마저 재방송하기로
결정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가히 '이순신 열풍' 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네요. 더욱이 내년 초에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또한 방송 예정으로 한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열기는
계속해서 이어질 듯 싶습니다.
이순신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 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의 발발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으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상 가장 무능했던 왕 중 한 명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과연 선조는 정말로 무능한 왕이었을까요?
임진왜란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질
만큼 대단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에 대한 평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야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허준' 속 선조의 모습>
선조는 명종에 이어 왕위를 물려 받았지만 명종의 자식은
아닙니다. 선조의 아버지는 조선 제11대 왕이었던 중종의
서자 덕흥군입니다. 따라서 선조는 조선의 역대 왕가운데
최초로 왕의 방계쪽에서 왕위를 이은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선조가 왕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명종이 일찍이 선조를
지목한 덕분도 있었지만 선조가 그만큼 영리함을 보여줬기
때문에 진작에 명종의 총애를 받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당초 왕의 자리는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왕이 되어서 그런걸까요?
선조는 명종 때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었던 훈구 세력을 숙청하고
사림을 대거 등용하게 됩니다. 자신을 지지해줄 정치 세력을
키워낸 셈이죠. 이후 사림 세력은 동인과 서인으로 분리가 됩니다.
이러한 정치 모습은 어느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지만
결과적으로 두 반대 세력의 다툼 때문에 임진왜란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것이 선조에게는 크나큰 불운으로 작용했던 셈이죠.
기껏 훈구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의 우호 세력으로 조정에
불러들였더니 자기네들끼리 기세 싸움만 하고 결국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버리고 당쟁만 일삼으니 선조로서도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흔히 선조가 큰 비판을 받는 이유로,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간 점과 해전에서 큰 활약을 한 이순신을 의심하고 견제한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임진왜란의 발발을 미리 막지 못하고
이후의 수습 과정 또한 무능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에 다녀온 두 명의 관리가 있습니다.
바로 황윤길과 김성일입니다. 이 중 황윤길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고, 김성일은 황윤길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발언을 한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황윤길은 서인이었고, 김성일은
동인이었으며 당시의 정권은 동인 세력이 잡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현재 재조명되고 있는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김성일은 당시 자신은
동인이고 황윤길은 서인이었기에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침략한다고 알려질 경우 일어날 혼란을 우려해 황윤길과
상반된 주장을 펼치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찌됐든 당론은 일본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이 되면서 결국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가 전무하게 되고 맙니다.
<동인 중에선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많았다>
선조는 자신이 직접 일본에 다녀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동인 세력의 입김을 피할 수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만약 김성일이 혼란보다는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면 아마도 선조
또한 임진왜란의 발발에 대비해 미리 대비를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참 아쉬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서인 중에선 율곡 이이의 제자들이 많았다>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개성과 평양, 의주로 피난을 갔던 사실 또한
선조 개인의 의지보다는 신하들의 강력한 주청에 못이겨 행한
사실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만한 내용입니다. 다만, 그러한
신하들의 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끝내는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몽진한 선조였기에 최종적인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이죠.
아마 선조로서도 파죽지세로 북진하는 왜군의 기세에 눌리기도
했거니와 만약 잘못될 경우, 자신의 대에서 조선의 사직이
끝날수도 있다는 엄청난 부담감이 다가왔기에 도성 사수보다는
끝내는 피난이라는 현실적인 사직 보존 방안을 택했을 것입니다.
선조와 이순신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조는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이순신에게 초고속 승진을
내리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에 이순신은 정읍현감에서
무려 7품계나 뛰어 오른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물론, 류승룡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선조
또한 이순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간신들의 말을 믿고 이순신을 백의종군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하고 전사하자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론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조선 왕조에서 가장
무능한 왕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쟁이 원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최종적인
선택권자는 바로 선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선조가 임진왜란을 막지 못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던 책임보다는 임진왜란 당시 훌륭하게 분조 활동을 펼치고,
당시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실리 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 인조 반정으로 인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조가 무능한 왕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단순하게 결과만
놓고 선조를 욕하기 보다는 어릴적 총명했던 선조가 왜 그러한
선택들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실은 한 번 쯤은 짚고
넘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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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ri 이웃보들보들한 보드리 이야기~☆
첫댓글 시리즈로 올려볼까 합니다.징비록 하는 시즌이고 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