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영화 촬영 기술의 개척지, 을지로(2)
박승필은 먼저 1904년에 을지로 4가에는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인 광무대(光武臺)를 세워 흥행업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본인 소유주로부터 단성사를 전세로 빌어 영화관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단성사에 영화 촬영부를 두어 직접 영화제작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리고 김도산으로 하여금 연쇄극 「의리적 구투」를 제작했고, 훗날 춘사 나운규에게 영화제작 자금을 대어 주는 등 단순한 흥행사가 아닌 의욕적인 영화인이었으며, 민족흥행 자본의 시조이기도 했다.
두 번째의 인물은 1923년에 「월하의 맹세」를 내놓은 윤백남 감독으로 연쇄극이 아닌 본격적인 영화를 최초로 제작하였다. 「월하의 맹세」영화 또한 극본, 감독, 출연진 모두 한국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본격적 한국영화의 첫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세 번째의 인물은 한국 최초의 촬영기사 이필우이다. 이필우는 을지로 입구의 구리개가 본적지이다. 부모를 일찍 여읜 이필우는 그의 동생 이명우와 같이 공성(共成)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영화에 대한 매력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11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간 후 시계포와 사진관에서 일하다가 일제침략기 때 학교생활을 마친 이필우는 한때 우미관(優美館)의 영사기사로 일하면서 영화기재에 대한 기술을 익혔다.
이필우의 부친은 지금의 을지로 1가 네거리에 「이필우 시계포」를 차려 주었다. 그는 여기에 사진부를 곁들이고, 슬라이드와 영상기를 마련하여 필름을 닥치는 대로 빌려다가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