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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황혼의 낙원 ♡ 원문보기 글쓴이: 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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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基督敎) 또는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아들 혹은 현현으로 일컬어지는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다.[1][2]
기독교는 예수를 구세주("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의 교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 중 성부ㆍ성자ㆍ성령의 성삼위의 하느님을 믿는 교파들이 주류 기독교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구약성경에 예언된 구세주, 곧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한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독생자이자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파생되었으며,[3] 이슬람교와 더불어 이 세 종교는 아브라함계 종교라고 불린다. 그들이 믿는 공통의 경전인 구약성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중심 인물 중 하나이고 선택된 공통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교리를 담은 대표적으로 공인되는 고대의 경전으로는 성경(성서)이 있다.
목차 |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Χριστός'(Christos) 의 중국어 음역으로서, 현재의 중국어 발음으로는 '지두'이지만 구개음화하기 전의 옛 발음은 '기도' 또는 '기독'에 가깝다. 중국 청 제국 시대에 만주족이 '기'의 발음을 '지'로 변화시킨 것이 영향을 끼쳐 현재의 발음이 되었다고 하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언급이 있다.[4]
기독교를 일컫는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교'가 있다. 이 말은 라틴어 'Christianismus'에서 번역된 말이며, 크리스트교, 기독교와 같은 의미이다.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초기에 '야소교'(耶蘇敎), 곧 예수교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당시 청 제국에 와 있던 로마 가톨릭의 가장 큰 국제수도회 조직 가운데 하나인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를 '야소교'로 표기한 것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5]
'기독교'라는 개념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개신교와 같은 뜻으로 잘못 이해되지만, 성공회, 천주교,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개신교 등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성삼위 하느님을 믿는 모든 기독교 교회들을 뜻한다. 이들 교회들은 교단 분열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소모전으로 전교에 지장을 받기도 했지만, 교의가 아닌 복음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천으로 극복되고 있다.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가 회원교단이고 천주교는 참관인으로 활동하는 세계교회협의회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의 첫 총회로 시작된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실이다. 성서를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원천으로 이해하는 복음주의 교회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긋나는 사회구조를 외면한 채 성공(成功)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계가 있지만, 탈 교단주의 시대의 도래라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교단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있다.[6]
따라서 한반도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시기는 천주교가 당시 조선에 전파되었던 시기(1784년)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개신교(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구세군, 안식교), 성공회, 정교회, 몰몬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한반도로의 기독교 전파는 천주교의 전파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승훈(세례명 : 베드로)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이후에 자발적으로 전파되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선교사, 성직자의 선교활동 없이 자발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는 대한민국(당시 조선)이 유일하다. 그외 정설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지만, 임진왜란 때에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예수회의 전교로 기독교인이 되었고[7], 경교가 신라에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어서 기독교의 유입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8]
나사렛 예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창시자로 본다. 서기 30년경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사건 이후부터 이 사건의 증인이 된 12사도가 이끄는 교회가 운영되었다. 이 사도는 결원이 생기면 다시 충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 후 많은 박해를 받게 되어 사도의 순교로 결원이 생겨도 충원을 위한 회의를 소집할 수 없어서 결국 십이사도회는 그 권능과 함께 이 세상에 존립할 수 없게 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초기의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던 교회는 '초기 기독교', '원시 그리스도교', '초대교회','고대교회'로 불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콘스탄틴 대제의 주도하에 로마 제국은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박해를 끝내고[9] 기독교를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들 중의 하나로 만들어[10] 사실상 기독교 신앙을 보호 또는 장려하였으며[11],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국교로 공인되었다. 관점에 따라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기원후 325년까지를 초대교회로 보기도 하며, 동방교회(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이 갈라진 1054년 이전의 단일교회까지 시대를 확장하여 초대교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수가 사망한 후 마티아(맛디아)가 합류한 사도들[12]과 그 외 신자가 예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열흘 동안 마르코(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받고 사목하기 시작하는데, 교회력을 지키는 교회들은 이 사건을 성령강림주일(성령강림절)로 기념한다. 이후에 그리스도교 복음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를 만난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전도로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은혜로 어느 사도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다고 고린토(고린도,코린토스) 교우들에게 말할 정도로 열성적인 전도를 하였다.[13]
하지만 사도시대의 교회는 전도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선교도 하였다. 사도행전 6:1-4에 따르면 예루살렘교회에서는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회선교를 하였는데[14], 이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더불어 인권옹호와 복지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시쳇말로 사회적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 떠돌이와 고아의 인권을 짓밟지 마라. 과부의 옷을 저당 잡지 마라.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해 보아라. 그런 너희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니, 너희는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가 손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올리브 나무 열매를 떨 때, 한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가지들을 샅샅이 뒤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포도를 딸 때에도, 한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다시 뒤지지 마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해 보아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니, 너는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신명기 24:17-22 공동번역성서 | ” |
그런데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 과부[15]들이 교회에서 구호음식을 받을때마다 푸대접을 받자[16],사도들은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명에게 부제(디아코노스)서품을 주어서 사회선교를 담당하게 하였다.
“ | 이 무렵 신도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리스 말을 쓰는 유다인들이 본토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과부들이 그날 그날의 식량을 배급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신도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 식량 배급에만 골몰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내시오. 이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겠습니다." 모든 신도들은 이 말에 찬동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파노와 필립보와 브로코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르메나와 또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유다교로 개종한 니골라오를 뽑아 사도들 앞에 내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고 예루살렘에서는 신도들의 수효가 부쩍 늘어났으며 수많은 사제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 ”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이 사회선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예루살렘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로마인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소 종파에 불과했고,[17] 기독교인들도 유대교의 신앙전통을 따랐다.[18][19] 그러나 A.D 90년 유대교에서 '나사렛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도문을 발표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나사렛 도둑, 나사렛 도당[20], 나자렛 사람 등으로 불리던 유대교 소종파로서의 성격을 잃게 되었으며, 로마 제국 내의 비 유대인사이에 전파, 세계종교로 발달해 가게 된다. 초기 기독교 시기는 기독교 발달에 중요한 시기였는데, 현재 사용되는 신약성서의 정립 (기원후 45년~140년경), 로마의 기존 종교와의 경쟁, 그리고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한 국교 인정 등 주요한 사건들이 이 기간 동안에 일어났었던 것은 확고하다.
로마시대 당시 기독교는 캘수스 등의 반대자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캘수스의 경우 "기독교인들은 무지한 사람들을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에게 적합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리석고, 천하고, 우둔한 사람들과 노예들, 여자들, 그리고 어린이들만 바라고 개종시킬 수 있다."고 당시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배움이 없는 사람들임을 지적했다.[21], 약 100년대 중반부터 순교자 유스티아누스(유스틴)등이 기독교를 변호하였는데, 이들을 기독교 변증론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독교가 반사회적 종교가 아님을 변호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기독교는 세계에 2만개 정도의 교파가 있으며 한국에는 천주교(로마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그리고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의 여러 개신교회가 있다. 이중 개신교는 1950년대 장로교회의 분열 등의 교파분열로 약 250 여개의 교파가 있다. 교파마다 교리도 다양하지만 기독교의 공통된 가장 큰 특징은 메시아 및 속죄 사상이다.
다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 복음서 1장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선언을 통해 예수를 "말씀"(로고스)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시기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는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질서와 힘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예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그리스도론을 강조하는 경향은 기독교 초기부터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신약성서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바울서신서(로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니가 후서, 갈라디아서)와 제2 바울서신(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에베소서, 디도서) 역시 예수를 주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그리스도론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로마 가톨릭 신학자 존 도미니크 크로산과 성공회 신학자인 마커스 보그는 바울의 그리스도론을 로마제국 신학 즉, 로마제국의 황제를 주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하느님, 하느님의 아들로 우상화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정치 사상과 질서를 옹호하는 다분히 현실순응적인 신학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한다.
즉,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복종해야 할 분은 예수이지,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지배에 저항한 것이다.
장로교 신학자 김회권도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하느님의 아들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지만, 부활했다는 신앙고백으로 이해한 것은 로마제국이라는 현실권력의 무력함을 말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바울로가 보기에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갈릴리의 예수가 로마제국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고 죽었지만, 하느님은 그를 부활하게 함으로써 현실권력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22] 이러한 기독교의 저항적인 교의는 당연히 기독교가 반국가적인 종교로 인식되어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게 하였다.[23]
초기 기독교의 분파중에서는 인간 예수가 하느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에비온주의처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따라서 요한복음서 역시 부정하는) 종파도 있었으나, 절대적으로 소수에 속했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고 나서부터는 이단으로 지목되기도 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세력도 극소수로 줄어들었다.
그 반대로 가현설을 주장하는 그노시스파나 카타리파 처럼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종파들도 있었다.
이들 영지주의 및 가현설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다는 이분법을 갖고 있었으므로 예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썼을 뿐이라는 주장으로 예수가 완전한 사람임을 부정하였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셨음을 부정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라고 단죄했으며, 복음서 저자 루가는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적음으로서 예수가 여자의 몸에서 잉태된 완전한 사람임을 단언한다.
초대교회 이후의 신앙고백들(Creeds)인 칼케돈 신경, 니케아 신경, 사도신경 등에서도 예수를 완전한 인간이자, 하느님으로 묘사한다.
삼위일체는 성삼위라고도 하며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세 인격)로 존재하지만, 본질(essence)은 한 하느님이시다라는 기독교 교리이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구약과 신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성부(야훼), 성자(예수), 성령 이 세 위격의 밀접한 연관성은 신약성서의 여러 부분에 표현되어 있으며,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둘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강조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또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만들어진 방대한 기록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성자와 성부'로 표현하고 있다.
'삼위'라는 표현은 초대 교회 시절부터 자주 사용되어 왔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마태오 복음서의 세례에 대한 기록에서도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사적으로는 신학자요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이 최초로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했다.
삼위일체론은 두 가지의 이론으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로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느님이며 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인데 과거에는 대부분의 종파에서 하느님은 형체나 지체가 없다고 믿는 이 이론을 믿어 왔다. 둘째로는 성부, 성자, 성령은 개별적인 존재이나 성부에 성자와 성령이 소속되어 있다는 종속주의적 삼위일체론이 있다. 이 두 이론 가운데 명확하게 통일된 바는 없다.
기독교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동방 정교회가 존재하고, 개신교 교파는 세계 2만여 개의 분파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약 200~250개 이상의 분파가 있다.[출처 필요] 주요 교단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뉜다.
각 교파들은 크고 작은 교리상의 차이점들을 보이는데, 그 정도가 심하여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신앙고백들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경 등의 내용과 차이가 있는 내용을 교리에 담고 있다면, 그 교파는 기독교내의 기존 교단에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각 교파 사이의 신자들의 실질적인 영성 및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찬례에 대한 견해의 차이 즉, 영성체 신학의 차이에서 초래되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세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는 성찬례 항목을 참조하라.
신적 존재에 대한 단순한 믿음으로 전개되어오던 기독교의 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 진실성의 여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즈음하여 기독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과학이론인 진화론이 등장하였고, 본격적인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시작되었는데 여러 종교들 중 진화론에 가장 반대되는 교리를 가진 기독교와의 충돌이 심하였다.
과학적인 가치는 그 믿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보편적 기준이 존재하여 철저한 검증 단계를 거친 것들만이 살아 남게 된다. 이에반해 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가치는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객관성을 요구할 수 없고,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과학이 이러한 기준에서 바라본 기독교는 탐탁치못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종교마다 과학적으로 검증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몇 가지 씩은 있다. 예를들면 스님들이 죽을 때 나오는 서리도 과학적으로 증명 할 수 없다.
과학과 종교, 특히 기독교에 있어서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창조에 관한 학설 창조론의 진실성이다.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관계에 따라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논리는 3가지, 제거론, 분리론, 그리고 친구론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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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비판을 받은 창조론은 성경에 적혀있는 말 그대로는 도저히 과학적인 반박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에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재해석하여 말들 속에 숨어있는 숨겨진 원리들을 찾아나가게 되었고 그로써 단순히 수천년전 지구가 생겼다라고 하는 것에대한 과학적인 근거들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이에관한 7가지 해석법이다.
1) 간격이론(Gap theory)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지질시대 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보는 관점. 제일 먼저 만들어진 빛에의해 성숙된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후에 피조물들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2) 날-시대 이론 (day-age theory)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창조주간 의 하루하루를 24시간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오랜 세월을 포함하는 지질학적 시대로 본다.
3) 골격 가설(frame work hypothesis) 성경이 언제나 창조를 구속 의 중심적 사실- 예수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취급하고 있으므로, 창 세기 1장을 창조과정에 대한 선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행위를 구원 사역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주장.
4)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하느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모든 생물을 창했다는 이론이 다. 즉, 하느님의 창조사역이 섭리사역(진화)에 의해 조종되는 동시에 섭리사역의 일부분이라는 주장.
5) 진행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생물체가 오랜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진화되는 동안 진화과정으로는 완성시킬 수 없는 부분은 하느님이 그때마다 중재하여 창조한다는 내용.
6) 성숙한 창조물의 출현이론 (Appearance of age theory) 하느님은 몇 천년전에 지구를 만들었으나, 지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성숙한 지구의 형태로 만드셨다는 이론. 창조론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만들어진 지구는 절대 빅뱅이전의 무(無)의 상태가 아니었을 것인데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져 생성되어있는 과학적인 모델에 따르는 이미 성숙되어있는 지구의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7) 성서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 앞서 제시된 이론들과는 달리 창세기 1장의 창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임은 물론 그것이 일어난 기간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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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갖고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인 교권역에 대해 과학과 종교는 각기 다른 교권역을 가진다. 과학의 교권역은 실험영역이고, 종교의 교권역은 궁극적인 의미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질문들이므로 서로 중첩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이나 문학이 과학과 충돌하지 않듯이 종교와 과학 또한 그 스스로의 영역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는 종교와 과학간의 화해를 유도하게 되었다.
The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 따르면, 세계의 기독교 신자의 교파별 비율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출처 필요] 아래의 설문 작성시 응답자들이 여러 항목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총 합이 %100를 넘는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는 크게 보면 가장 큰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860만 명의 개신교와 510만 명의 로마 가톨릭으로 나뉜다.[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