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질수록 바깥 일 하는 분들이 생각납니다.
그중에서도 요즘은 밀양에서 애쓰는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사회복지사로서는 어떻게 봐야 할 지 생각합니다. 당장 내가 맡아 감당해야 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밀양의 눈물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왠지 궁색합니다. 적어도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회복지사로서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모여 있는 밀양의 슬픔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정도는 (아는 만큼이라도) 말해야 하겠다 싶습니다.
농촌 위에 존재하는 도시
밀양에 세워지는 엄청난 규모의 송전탑. 이는 도시의 소비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희생은 아니었을까요? 쉼 없이 만들고 소비하는 도시를 위해 식민지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농촌. 농촌의 것들을 거침없이 가져다 쓰고, 쓰고 남은 찌꺼기를 다시 농촌으로 뱉어내는 모습 같습니다. 그럼에도 농촌을 도시가 되지 못한 곳으로 낮게 보고나, 아직 개발되지 못한(도시가 되지 못한) 곳으로 보는 관점이 우리 중심에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이 불안한 시설이 세워지는 곳을 생각하면 더욱 이 말이 깊이 와 닿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원자력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는 그런 쾌적한 삶을 소망하는 이들 곁에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도시의 풍요로운 삶과는 거리가 있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짐 지워집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런 불안한 시설을 그들의 삶터에 놓는 대가로 돈을 주고, 결국 이 돈이 또 다른 갈등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왔던 삶터가 무너지고, 그곳에 경제 수치로 산출할 수 없는 인정과 우정이 사라집니다.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런 맥락일 겁니다.
뜨거운 여름도 성능 좋은 에어컨 하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를 위해 그가 사는 곳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지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도시까지 끌고 오기 위해서는 이런 송전탑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도시와 농촌의 주종관계, 식민지 관계처럼 보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이를 끌어 오기 위해 세우는 송전탑은 대부분 도시를 위해 존재하지만, 이런 시설은 도시 밖에 만들어집니다. 도시의 풍요로운 삶은 농촌의 희생이 있어 가능합니다. 도시인의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 성찰 없이는 앞으로 밀양은 곳곳에서 생겨날 겁니다.
약자 위에 존재하는 에너지 소비자
후쿠시마 재앙 이후, 지금까지도 수습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지옥불 수습 현장은 방사능 피폭량 때문에 한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일할 수 있는 날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즉, 죽을 줄 알면서도 일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다른 곳보다 보수가 좋다는 이유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지어 선다고 합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터임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요? 자신이 선택한 일터라지만,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절박함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는 원자력이란 발전 방식이 가지고 있는 사회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입니다.
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을 생각합니다. 관련 부처에서는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강조하지만, 사람이 밀집해 있는 도시에는 없습니다. 부유한 동네에는 있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나 그곳에서 나오는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탑은 가난한 지역에만 있습니다.
이는 원자력 발전 방식이 지닌 경제적 지역 차별입니다.
이처럼 원자력은 이미 그 태생부터 비윤리적 구조입니다.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약자의 약점 위에 만들어지는 윤리적이지 못한 발전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사회복지 현장에도 엄청난 사업비를 빨아들이는 송전탑이 있을지 모른다
엄청나게 거대해진 지금 우리 사회복지현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엄청날 겁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복지국가가 되면 그 비용이 더 필요할 텐데, 그 큰 비용을 국가가 감당할 만큼 경제가 계속 성장할지 의문입니다.1) 지금은 전기 끌어다 쓰듯 마음껏 예산 세워 복지사업 진행하지만2), 복지국가가 되어도 오히려 전체 경제의 규모가 갈수록 작아진다면, 그래서 복지 예산이 갈수록 줄어든다면, 복지국가가 되어 조세제도 등 여러 좋은 제도들로 약자를 위한 예산, 보편적 복지를 위한 예산을 확대한다고 해도, 전체 나라의 예산 규모가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않아 작아진다면, 우리 생각처럼 국가 책임이 다할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경제 발전이 지속할 거라 믿는 것은, 마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처럼 복지사업을 벌인다면, 우리는 후쿠시마 대재앙의 빌미를 우리 옆에 있게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돈으로 하는 복지사업의 편리함과 쾌적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후쿠시마는 멀지 않을지 모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그 지역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고 거대한 도시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한다면서 우리 또한 다른 지역, 다른 곳에서 전기 끌어 쓰듯 돈을 끌어와 사용하면, 당장은 우리 지역사회가 쾌적하고 좋아지는 듯하지만, 그 끌어오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분명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내어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지국가를 이뤘던 나라의 물질적 풍요의 토대는 다른 나라, 특히 유럽 외의 제3세계에 대한 약탈로 쌓은 부가 작용했습니다. 특히 석유시대의 역사를 보면 그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자연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꾸 우리 복지현장에서 일의 방식을 보면 무언가를 따로 만들어 댑니다. 복지관이 목욕탕도 만들고 수영장도 만들어 운영합니다. 이것저것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온갖 새롭고 효과적이라는 프로그램과 시설을 만들어 갖다 붙입니다. 프로그램도 매년 새로 만들고, 지역사회 다른 이들이 한 일과 같은 일을 따로 만들어 모집하여 운영합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몸집을 불리고 있습니다.3)
이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도시의 욕망과 닮았습니다. 이렇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복지 현장의 욕망과 이를 유지하는 큰 비용은,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어쩔 수 없이 지금 우리 현장에서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침묵의 동조일지 모릅니다.
지난날 살아온 모습을 반성하고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생활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원자력은 내 삶의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원자력은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에너지를 덜 쓰는 '노임팩트맨'의 방식을 닮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회복지현장에서는 ‘당사자와 지역사회 자연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역량과 가능성을 믿고 당사자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방식으로, 당사자가 이루게 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역량과 강점을 믿고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방식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자연력이 생동합니다. 그래야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당사자의 인간관계와 지역사회 이웃관계가 살아납니다. 이렇게 이뤄가면 따로 외부 자원, 후원 공모 사업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생각하면서도 편리함에 중독된 이에게는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복지현장에서도 사업비가 주는 편리함 때문에 당사자의 삶과 이웃의 인정에서 얻기보다 공모사업 찾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당사자의 인간관계와 지역사회 이웃관계로 이뤄낼 일이 많지만, 지면상 다 이야기하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4) 사회복지사의 행위가 빛나기보다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가 빛나야 합니다. 그 빛은 송전탑을 타고 흐르는 빛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빛, 살아있는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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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국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생각하면 조심스럽습니다.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영역, 그런 공적 부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뜻을 함께합니다. 여기서는 복지국가 그 다음을 생각해보았고, 생태적 관점에서 본다면 복지국가가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2) 여기서는 복지전달체계 안에서의 직접 사업비로 한정하여 이야기합니다. ‘어렵다 부족하다 힘들다’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이야기인데,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과 비교하면...
3) 사회복지사 자격증 보유자만 약 55만 명, 약 60만 명인 우리나라 군인 숫자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럼 왜 이렇게 사회복지사가 많아졌고 또 되려고 하는 걸까요? 이제 약자를 돕는 것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걸 무얼 의미할까요? 돈 되는 일, 돈 잘 버는 일?
4) 이 때문에 출판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푸른복지 출판사 기획이사로 일하며 ‘복지현장 희망여행’, ‘사회사업, 인사가 절반입니다’, ‘복지현장 희망 이야기’, ‘사례관리 실천 이야기’, ‘사회복지사가 말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은 책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 증거입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게 도운 사회복지사들의 구체적 실천 이야기 모음입니다.
이 때문에 출판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푸른복지 출판사 기획이사로 일하며 ‘복지현장 희망여행’, ‘사회사업, 인사가 절반입니다’, ‘복지현장 희망 이야기’, ‘사례관리 실천 이야기’, ‘사회복지사가 말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은 책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 증거입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게 도운 사회복지사들의 구체적 실천 이야기 모음입니다.
첫댓글 소비자로서 우리의 욕망을 스스로 제한할 수 없다면, 이런 문제는 계속 이어질지 모릅니다.
생태와 복지, 이 둘 사이의 교집합에는
덜 소비적인 삶,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있습니다.
사용후핵연료 치명적...원전 중단만이 해법, 한겨레.2104.1.24
재처리공장을 하루만 돌려도 원전 1년치 방사성물질 배출, 재처리 안해도 처분 마땅찮아, 굳이 보관하려면 도쿄·서울에
...
고이데 조교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 핵발전소의 저장수조 등에서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을 찾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 도대체 어디에 지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도쿄나 오사카 등 전기를 많이 쓰는 대도시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서울에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우연히 본 '거리의 만찬'
삼척시민 대표 하는 말.
국책사업 하기 좋은 곳은,
가난하고, 인구 적고, 무식한 이들 사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