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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은 최근 전매 제한 기간이 만료된 아파트에 관심이 많다. LH의 1단계 아파트는 물론 입주하지 않은 2단계 아파트도 6월부터 매매가 가능해지자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주변 시세보다 아직 분양가가 낮아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허영준 LH 판매부장은 “녹지율과 교통·교육 인프라 면에서 국내 처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맞춘 ‘명품 단지’로 조성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민의 관심사인 교육시설은 학급당 인원을 유치원 15명, 초·중·고 각 20명 등 OECD 기준을 충족한다.
기반 시설은 부족하다. 쇼핑몰 등 상업시설이나 병원 등 편의시설이 충분히 조성되지 못했다. 한 아파트 주민은 “쇼핑하거나 병원에 가려면 승용차나 버스로 인근 충남 공주·조치원이나 대전 등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인근 지역의 난개발도 우려된다. 국토해양부가 12일 세종시 부동산 투기와 주변 난개발을 막기 위해 형사고발 등 철저한 대책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다.
이주할 공무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세종시에는 9월부터 2014년까지 9부 2처 2청 36개 기관이 들어선다. 9월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기획재정부 등 12개 기관이 이전한다. 지식경제부 등 18개 기관은 2013년, 국세청 등 6개 기관은 2014년까지 입주를 완료해야 한다. 총리실의 한 고위공무원은 “사무관 이하 젊은 직원들은 투자 가치가 있는 집 장만을 위해 분양을 받고, 자녀교육 문제가 걸린 과장급 이상은 기러기 아빠나 주말부부를 감수하려는 편”이라고 말했다.
울산 혁신도시
같은 날 울산 KTX역에서 승용차로 20여 분을 달리자 10여 개의 거대한 크레인이 우뚝 서 있는 울산혁신도시 사업지구가 눈앞에 드러났다. 울산시 중구의 우정·태화동 등 11개 동이 7㎞에 걸쳐 늘어선 형태다. LH 울산혁신도시사업단의 김대열 차장은 “기존의 옛 도심과 붙어 있어 완공 후에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전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혁신도시 열기로 이곳 아파트는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 목적의 외지인들에게까지 인기를 끈다.
울산·부산 등지의 일반 청약자들을 중심으로 아파트 청약 열기가 뜨겁다. 이곳에서도 아파트 분양 물량의 70%는 이주 공공기관의 임직원에게 특별 분양하고 30%만 일반 분양한다. 일반 분양은 울산 지역민에게 우선권이 돌아가서 외지인의 분양 참여는 어렵다. 물론 향후 분양 물량이 늘면 기회가 올 수 있다. 울산에서는 연말까지 3000가구 분양이 예정돼 있다. 울산혁신도시에서 지난해 분양한 민간 아파트 세 지구 1699가구는 100% 분양 완료됐다. 김 차장은 “분양가가 3.3㎡당 850만원 안팎으로 1000만원대인 주변 새 아파트보다 싸다”고 말했다.
오는 19일부터 순차적으로 1년 전매 제한이 풀리는 아파트들이 나오면서 외지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크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평균 2000만~3000만원의 웃돈이 붙고 있고, 서울·부산 등지의 외지 투자자들이 전매 제한기간이 끝나는 집을 예약해 놓기도 한다”고 전했다. 혁신도시 주변 새 아파트들은 3~4년 전만 해도 3.3㎡당 700만~800만원이었으나 현재는 1000만~1100만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부 대형 아파트는 공급 과잉으로 분양이 다 되지 못했다. 부산 남구의 대연혁신도시도 내년 11개 공공기관 입주를 앞두고 다음 달 최고 높이 41층짜리 아파트 2416가구를 분양한다. 부산도시공사의 권현진 혁신도시2팀 차장은 “투자 가치가 있어서인지 이주 임직원이 1500가구 이상을 분양받고, 800가구가 일반 분양 물량으로 나올 것이라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직원들도 거주지 이전에는 고민이 많다. 이주 기간이 세종시보다 여유 있는 데다 공무원 신분도 아니어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겠다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울산혁신도시에 입주할 한국석유공사의 김모(47) 팀장은 맞벌이 부부에 중학생 자녀가 있고, 경기도 안양에 산다. 아내와 자녀는 안양에 남고 본인만 울산으로 옮길 생각이란다. 그는 “교육문제가 크고,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울산혁신도시에는 한국석유공사·한국동서발전·한국산업인력공단 등 9개 공공기관이 2014년까지 입주한다. 공정률은 59%로, 석유공사 등 3개 기관의 건물은 공사 중이다. 공공기관 직원 3024명을 비롯해 2만1000여 명이 거주하도록 개발된다. 이를 위해 아파트 6148가구 등 총 7283가구의 주택을 짓는다.
전남 무안 기업도시
13일 전남 무안군 현경면 양학리 무안실내체육관 앞 들판. 여느 농촌 들녘과 다름없이 널찍한 밭에는 양파·마늘 등이 자라고 있다. 2005년 기업도시로 선정된 곳이다. 하지만 개발 주도 특수목적법인(SPC)인 한중도시개발의 지분 51%를 보유한 중국 자본이 지난 2월 사업성이 불확실하다며 철수를 결정했다. 주민들은 실망과 원성이 가득하다. 서충석(66) 피해보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위치가 더 좋은 산업단지가 전국에 널려 있는 판에 어느 기업이 여기로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 6곳인 기업도시 대부분 사정은 비슷하다. 기업도시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세종시나 혁신도시와 다른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우선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사업시행 주체다 보니 재원 부족으로 사업속도가 더디다. 기업도시 모델은 삼성 액정표시장치(LCD) 단지가 있는 충남 탕정 신도시나 LG LCD 단지가 위치한 경기 파주신도시다.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몰려들어 산업단지의 기능을 갖추는 구조다. 하지만 6개 기업도시는 대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나 땅값 혜택 등 매력이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낫다는 충북 충주도 대기업 본사의 기간시설보다 방계사업 위주로 입주하고 있다.
무안은 농어촌공사 등 정부투자기관이 참여하는 국책사업으로 전환해 달라고 누차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안군 현경면 동산리의 장모(53)씨는 3만㎡ 넘는 논밭을 4년 전 다 잃었다. 그는 “금융권 부채를 갚기 위해 땅을 내놨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팔리지 않아 경매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지역 밭은 한 때 3.3㎡당 8만원까지 갔지만 요즘엔 4만~5만원 호가에도 문의가 없다. S개발부동산의 공인중개사 신모(45)씨는 “2000년대 초반 기업도시로 지정된 뒤 평당 10만원 이상으로 뛰었던 땅이 요즘 다시 5만원 밑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가격이 확 내렸지만 거래는 거의 끊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