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사정관들이 털어놓은 '사정관 사로잡기의 비밀'
수상경력보다는 잠재성 일관적인 사고력 따질 것
학생들 개인 정보 DB화
각 대학이 준비 중인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구체적인 계획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26일 제주도에서 올해 입시에 입학사정관제를 치르는 40여개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고 그동안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은 대표적인 사례들을 공개했다. 서귀포 칼(KAL) 호텔에서 열린 대학교육협의회 주최의 이날 워크숍에서 입학사정관들이 털어놓은 '입학 사정관제의 비밀'은 이랬다.
①열정과 노력을 입증하라
입학사정관이 전형의 전(全) 과정에 참여한 지난해 이화여대 '특수재능우수자' 전형에 합격한 A양은 외부 경시대회 수상 경력이 전혀 없다. 대신 이화여대가 '특수재능'으로 인정한 것은 A양의 학교생활이었다. 학교생활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고 꾸준한 노력과 열정을 보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비평준화 지역 고교에 다닌 A양은 좋아하는 건축에 빠져 학교에 건축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건축 관련 행사에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면접에서 A양을 테스트해본 결과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다. 이화여대 배성아 입학사정관은 "재능을 계발하려는 A양의 노력과 뚜렷한 목표 의식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것도 잠재력·특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인하대에 합격한 B군은 지방공영방송 토론프로그램 제작팀에 "우리 학교 친구들과 참여해보고 싶다"고 연락해, 프로그램의 한 회를 자기 학교 특집방송으로 편성하게 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을 학교에 유치하는 과정과 이 과정에서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한 B군의 솔직한 평가가 높은 점수를 땄다.
경북대 리더십 우수자 전형에 합격한 C군은 청소년 국제교류 활동을 통해 러시아까지 방문했으며,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 때는 봉사 활동을 가기 위해 직접 군청에 건의해 버스를 지원받는 '열정'을 보인 점이 점수를 높게 받았다.
②살아온 과정을 기록해라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입학한 수험생들은 '기록'으로 자신의 삶을 보여준 경우도 많았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한 D군의 경우 자신이 쓴 판타지 소설 15권이 '기록'이 됐고, 물리학과에 합격한 E군은 연구·실험 활동을 재미있어해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작성한 보고서가 '증거'가 됐다. 영화영상학과에 합격한 F군에게는 국제 청소년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영화비평과 직접 쓴 시나리오들이 있었다.
동국대측은 "합격생들의 특징은 대학 진학을 위해 일부러 경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열정을 가지고 경력을 쌓았다는 것"이라며 "재능을 발굴해 키우고 이를 자료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록'이 성적을 이기는 경우도 있다. 부산대 전자전기공학부에 지원한 G군의 경우 1단계 성적이 합격선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초·중학교 때 과학 관련 상장 50여개를 받는 등 특정 분야에서 소질을 보여 '와일드카드제'(성적 미달자도 특기만 좋으면 다음 전형을 보게 해주는 제도)를 통해 합격했다.
자신의 관심을 삶과 엮어서 설명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그런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를 자세하게 기술하면 신뢰성과 설득력이 높아진다.
지난해 경북대 '이웃사랑전형'을 통해 입학한 H양은 집안이 어려워 학교생활에 마음을 못 두고 방황했다. 이런 H양이 착실히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심리학 서적 덕분이었다. H양은 자신이 방황하던 시기 탈출구로 삼았던 심리학 서적 목록을 면접 때 줄줄 얘기했고, 모의재판·동학운동유적지 답사 등 자신이 참여한 활동에 대해서도 심리학의 관점으로 접근해 설명했다. 경북대측은 "자신의 삶과 특징을 엮어서 설명한 것이 특히 좋았다"고 밝혔다.
③학원 다녀도 면접에 도움 안 된다
숙명여대가 개발한 심층면접 질문은 구체적인 상황을 주고 학생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동생이 원더걸스 공연에 갔다 밤 12시 넘어 집에 와서는 어머니께 '공부하고 왔다'고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은 뒤, 학생 답변에 따라 "어머니께 고자질해서 동생 사이가 틀어졌다면 어떡할 것인가" 등의 후속 질문을 던진다.
이런 상황 질문에다 "진실의 가치란 무엇인가" 같은 일반 질문을 섞어 학생들의 사고력이 얼마나 일관성 있는지 평가한다는 것이다.
KAIST에서는 면접을 3가지 방식으로 진행한다. 제시된 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응시자들끼리 40~50분 동안 치르는 '그룹토의'와 영어면접을 포함하는 20~25분 정도의 '개인면접', 자유주제나 미리 제시한 주제로 5분간 수험생이 발표하는 '개인과제 발표'로 구성된다. 문제풀이 면접처럼 과외나 학원수업으로 단기간에 준비하기 어려운 평가다.
KAIST 측은 "2년 전부터 하루 종일 면접을 하는 '원데이(1day) 면접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며 "이는 과학과 사회 현상을 연관시켜 사고하는 인재를 뽑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④지역 인재라는 느낌을 줘라
지방대학 등은 지역 인재를 많이 뽑을 예정이다. 순천향대·충남대 등은 해당 지역 고교와 네트워크를 갖고, 교사 등과의 면접을 통해 지역 인재들을 미리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려고 한다. 순천향대는 동문 교사들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고, 충남대는 재학생과 학교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을 '멘토링' 시스템으로 엮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지역 인재'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전주대는 아예 예체능대학과 문화산업대학에서 지역 전통을 살려 전주 지역에 혁신을 가져올 인재를 선발키로 했다. 충남대는 지역협력 실업계고교 교장추천자 전형을 따로 운영하면서, 인문계고교와도 교류를 강화해 충청도 인재를 뽑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