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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의 오른쪽 무릎 아래에 흰색 테이핑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주 싱가포르 오픈 4강 천위페이와의 경기 때부터였는데, 전날 있었던 푸싸를라와의 8강전에서 48분간 혈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던 게 분명하다. 그날의 푸싸를라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공격은 매섭고 수비 집중력도 뛰어났기에 상당히 힘든 시합이었다. 고열과 두통 이슈에 묻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후 천위페이·야마구치와의 이틀 연속 대결은 모두 풀게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고 두 선수의 컨디션도 최상에 가까웠기에 안세영의 부상 부위엔 계속해서 데미지가 누적되었으리라 짐작 가능하다.
싱가포르 오픈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도 이틀간 쉬면서 다리 상태를 좀 봐야겠다고 말했던 안세영이었기에, 필자는 어제 32강전에서도 그녀의 발놀림에 주목했던 것인데, 어제는 잘 회복한 듯 보였던 오른쪽 다리가 오늘은 흰색 테이핑 위 허벅지 부위에까지 살색 테이핑이 길게 보인데다 안세영의 표정 역시 자신감이 없어 보였기에 상태가 좋지 않다는 예감이 경기 시작 전부터 들었었다.
그래도 제1게임 초반에는 속도는 저하되었을지언정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스텝에 큰 무리는 없었던 안세영이지만, 13 대 10에서 푸싸를라에게 11점째를 내주면서부터 오른쪽 무릎에 극심한 통증이 시작된 걸로 보였다. 이후의 그녀는 정상적인 발놀림이 불가능해졌고, 특히 백(back) 스텝을 밟는 데 힘겨워하며 머리 뒤로 넘어가는 하이클리어 처리에 약점을 노출한다. 당연히 베테랑 푸싸를라도 이 점을 바로 간파했고, 안세영을 앞뒤로 많이 뛰게 만들어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전략을 쓰면서 써브도 롱써비스를 자주 넣으며 안세영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 시간이 흐를수록 안세영의 오른쪽 다리는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푸싸를라의 스텝 스피드가 안세영을 앞서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안세영은 평소 같았으면 쉽게 걷어 올릴 타구들을 수비해 내지 못할 정도로 활동 범위가 크게 제약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힘든 싸움을 전개해야 했다.
다행히 극심한 통증을 인내한 안세영의 초인적인 정신력에 더해, 푸싸를라를 압도하는 그녀의 다양한 샷 기술, 그리고 지난주 대결 때보다 확연히 떨어진 푸싸를라의 집중력이라는 3요소가 합쳐지며 2 대 0 완승이라는 결과가 도출되긴 하였다.
(오늘 경기 외적으로 흥미로웠던 장면은 인도네시아 팬들의 일방적인 안세영 응원과, 마치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안세영이 경기가 끝난 직후 따로 준비해 온 여러 개의 선물을 관중들을 향해 던져주는 모습이었다. 내일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의 와르다니가 천위페이를 잡고 안세영과의 4강 맞대결이 성사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도네시아 팬들 입장에서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시합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내일부터다. 권투 선수로 치면 한 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 자동차로 치면 3단까지밖에 기어를 못 올리는 상태에서 안세영을 잡을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무섭게 달려들 강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내일 상대인 초추웡이야 오늘처럼 어찌어찌 이긴다 해도, 천위페이나 왕즈이, 혹은 야마구치를 상대로는 오늘 정도의 다리 컨디션으로는 거의 승산이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세 선수의 컨디션도 반드시 좋으리란 법은 없고, 안세영은 이전에도 이런 힘겨운 부상 속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무수한 기적을 연출해 왔기에 필자는 그 어떤 결과도 섣불리 단언하진 않겠다. 그러나, 안세영이 이번 대회 우승컵을 위해 모든 걸 걸어서는 안 된다고는 조언하고 싶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 이후 부조리한 협회와의 외로운 싸움 끝에 획득한 개인 후원 계약 체결 덕분에 개인 트레이너를 채용할 수 있게 되면서 건강 관리가 한결 용이해진 안세영이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은 이번처럼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년 1월부터 도입되는 '15점 3게임'제에 필자는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안세영이 앞으로 남은 반년만 잘 버텨주면 되는데, 문제는 올 하반기에 2연패가 걸린 아시안게임과 두 번째 우승을 노리는 세계선수권 같은 중요한 대회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이에, 이번 대회 우승에 너무 목매지 말고, 오른쪽 무릎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절대 무리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필자가 지금 하나 더 걱정하는 건, 지난주 안세영을 괴롭혔던 고열과 두통은 이제 완전히 가셨는가 하는 점이다. 무릎 통증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상황에서 머리마저 아프다면, 아무리 절대 1강 안세영이라 해도 그건 너무 가혹한 시련일 테니까.
AN Se Young 안세영 vs PUSARLA V Sindhu | 인도네시아 오픈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