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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주의 종들을 만나다 보면 나이는 젊은데 늙은이 영성을 가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연세는 드셔도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된 분들도 많다. 아무리 좋은 세미나와 계시적인 말씀을 들어도 뚜껑이 닫혀있으면 끄덕끄덕거리면서 “된장이구만” 이런다. 버터를 줬는데 된장을 드신다. 계시가 열리기를 축원한다. 거룩한 뚜껑이 열리기를 축복한다.
‘젊은이의 영성’은 나이와 상관 없다. 성령이 새 영을 주시면 된다. 에스더의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에 대해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구원적 부흥을 지나 제자도적 부흥을 지나 사도적 부흥으로 가야 한다.
CTS에서 부흥 100년을 맞아 새 부흥을 제시하는 내용을 설교해 달라고 국장님이 찾아오셨다. ‘내가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목사인데 한국 교회의 부흥을 논합니까. 돌 맞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계속 오시더라. 기도해보고 분별해보겠다고 했다. 돈 싸들고 와서 자기 방송설교에 은사 있다면서 시켜달라는 목사님도 많은데 왜 그러냐고 하시더라. 새벽에 가서 녹화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부흥,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일으키시는 부흥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기도와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고 계시다. 새 영을 붓고 계시다. 젊은이의 영을 받자. 젊은이들도 어리버리하게 있으면 안 된다. 젊은이 집회 가면 끌려온듯한 표정 짓는 애들이 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세상의 청년들은 살기를 가지고 사는데 기독청년들은 흐리멍텅한 눈빛을 가지고 뭐 하고 살려나 싶다. 삼육구삼육구 교제 한단다. 너무 가슴 아프다. 삼육구도 해야지. 교제인데. 그러나 오늘 우리 영이 깨어나야 한다.
에스더가 다음 세대를 여는 세대가 되기를 축복한다. 어른세대들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기를 축복한다. 영이 깨어난 젊은이들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새로운 기도이다. 새 영을 받은 기도이다. 매주 이렇게 모이고, 나라에 무슨 일 생기면 비상이라고 해서 또 모이고 군대보다 솔직히 빡세다. 군대에서는 밥은 꼭 먹이는데 여기는 밥도 굶겨가면서 수시로 비상 걸리지 잠도
내가 10년 넘게 중보기도 사역을 했다. 직간접적으로 많은 단체에 있었고 전국을 다녔다. 수만명의 중보기도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부흥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 십여년 가까이 중보기도학교 다닌 사람 중에 몇 명만 일어났으면 부흥이 왔을텐데… 갈등하던 어느 날 아내가 동서남북 다니며 강의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우리 아내는 열정이 나보다 특심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셔서 일하다가 2년 전에 하나님이 그만두라 하셔서 그만뒀다. 좋은 직업이었다. 내가 연봉 240받을 때 아내는 연봉보다 세게 받을 때였다.) 내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파김치가 되니까 “돈도 안 되는게 뭐 그렇게 바뻐…”라고 말하더라. 내 아내가 나를 참 사랑한다. 팔불출같이 내가 자랑을 하고 다닌다. 든든한 중보자이다. 쯧쯧쯧 혀를 차더라. 중보기도 학교 다닌 것이 쫙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아들아 중보의 장군들을 일으켜라.” 라는 마음이 들었다. 중보의 장군을 깨워라. 여기 계신 분들은 중보의 장군이 되기 바란다. 장군의 옷을 입으라. 돌파하고 변화시키고 기도로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라. 기도를 믿는가? 오늘 이렇게 장군들이 모여 기도할 때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태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원수들은 기뻐하겠지만 타드 같은 큰 영성가들이 넘어져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거기서 교훈을 얻고 겸손해야 한다.
이 본문을 보면 부흥에 대한 질문이 있다. 요한이 예수가 하신 일들을 들었다. 세례도 많이 베풀고 기적도 행하고 적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요한이 가만히 들으니까, 갈릴리 강가에서 영적인 사인을 받고 예수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공인하고 선포해 놓았는데 감옥에서 들어보니 막말을 하고 다니신다는 것이다. 성전을 부수고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되다고 하시고.. 자기보다 먼저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요한은 신성모독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회개하라고 한마디 한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심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적들이 우글거리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냥 놔두면 자기보다 빨리 죽을 것 같았다. 요한도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자기가 생각하는 부흥이 뭔지 잘 몰랐다. 헤롯 정권을 부수고 하나님이 멋있는 왕국을 세울 줄 알았는데 메시야라고 온 분이 좀…... 확인하고 싶었다. 제자를 보냈다. 오실 부흥이 이 부흥입니까 저 부흥이 이 부흥입니까…
내가 부흥을 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다. 부흥. 부흥. 부흥이라는 말이 뭔지도 모를 때 90년대 초반 기도하는데 인천의 한 지역이 transformation 되면서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기도의 불이 번지는 것이다. 그 덕분에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나누며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한 용사들을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키시고 교회들이 깨어나 새로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마틴 로이더 존스라는 사람의 ‘부흥’이라는 책이 나왔다. 한국교회가 알았다. 자신들이 원했던 것이 부흥이라는 것이라고. 부흥에 환장하기 시작했다. 부흥을 외치고 다녔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려고 해도 부흥 부흥 부흥만 외쳤다. 그리고 어느 날 ‘평양’이라는 단어를 주셨다. 어느 날 하나님이 ‘무슨 부흥?’이라고 하셨다. 할 말이 없었다. “부흥 모르세요? 1907년 평양 모르세요?” 그랬더니 주님이 내 영에 한 말씀을 던지셨다. “오늘날 너희에게 주려는 부흥이 너희가 구하는 부흥과 다르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부흥에 환장한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래서 세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 계시록에서 모든 교회에 하신 말씀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외치시는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전세계 가운데 새로운 부흥을 주고 계시다.
오늘 에스더가 구하는 부흥은, 과거의 부흥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재생시키고 부흥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스리고 통치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일을 이루는 것이다. 회복만이 아니다. 이미 깼다. 그만 깨워달라고 하라. 이 에스더, 군대보다 센 하나님의 군대,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는 군대. 여기 오면 이미 깬 것이다. 믿는가? 이제 깨어서 이 시대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해야 한다. 변화시켜야 한다. 다스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통치가 오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부흥 앞에 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먹는 것, 입는 것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단순한 회복을 구하는 기도도 아니다. 세례 요한이 질문했던 것, 어떤 부흥을 기다릴까.. 답이 무엇인가? 그 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 임하였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는 공격적 기도이다.
한 때 교회 가운데는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열쇠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냐’는 식의 기도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가? 하나님이 무엇을 구하라고 하셨는가?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으로써 예수께서 한 강론 중에 유대인들이 듣도록 율법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들을 때부터 먹는 것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복음 11장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가끔 중보기도 모임에 가면 중보기도가 아니라 중구난방을 하고 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듣고 기도해 주더라. 지엽적인 개인적 기도를 나눌 뿐이다. 오해는 하지 말라. 자기 제목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이 아니다.
산상수훈, 성경의 노른자가 4복음서인데 노른자의 핵이 산상수훈이다 마태복음 5.6.7장이다. 거기에서 먹는 것 입을 것을 구하라고 했겠는가? 기도가 무엇인가?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되는 기도는 무엇인가? 주기도문을 압축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구하라.’ 이것이 기도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왜 절간에서 비는 것과 기도의 내용이 똑같은가? 더 위대한 기도가 있다.
본질적인, 깊은 차원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열쇠를 돌리라고 하신다. 에스더가 부르짖는 기도는, 먹는 것 입는 것을 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취하는 공격형 기도이다. 막아서야 할 많은 일들. 나라를 위해 영적 전쟁하는 돌파의 자리가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 음성을 들은 것이 있다. 왜 정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왜 우겨쌈을 당하는가. 성경에 하나님의 나라에 위기가 올 때 하나될 수 없는 족속 유대인과 헬라인이 예수 죽이는 데는 똘똘 뭉친다.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이번에 믿는 정권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세번째 장로 대통령이다. 3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첫번째 장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열었다. 얼마나 검소하게 살면서 나라를 돌보다가 내려놓았는지. 막판에 인해전술에 속아 망했다. ‘백성이 원치 않으면 내가 왜 해.’ 라고 하며 하야했다. 두번째 장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합과 같은 일을 하고… 자기가 섬기던 교회에서도 파직되었다. 그런 면에서 참 큰 것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장로님을 세우셨다. 어떤 면은 다윗과 같다. 허물이 많고 연약함이 많고 출신성분도 정말 서민출신이고 안될 것 같은데 되는 인생이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다. 내가 들은 음성이 있다. 그분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 교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신다. 연합하고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이전 정권때 법으로 얼마나 교회를 핍박했는지 아는가? 알게 모르게 얼마나 핍박했는지 모른다. 친북세력은 교회를 적으로 생각한다. 3이라는 숫자에는 여러 사인이 있다. 긍정 부정으로. 이 때 하나님의 부흥이 와야 한다. 아내가 이번 대선 승리하지 못하면 이민 가려고 이민 신청했다. 정말 나만 남고 다 보내려고 했다. 이 땅에 소망이 없다. 이 나라 교회에 소망이 없다… 아무도 안 나선다. 하나님이 이 땅 교회들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다. 우리가 잡아야 한다.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교회들이 변화되도록, 하나님 음성을 듣는 교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왜 한국교회에 기회를 주시는가? 이 땅에 다음 세대가 있다. 젊은이들이 있다. 하나님의 부흥을 갈망하고 이슬람에 가겠다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다른 땅에는 많지 않다. 새 세대가 일어나고 있다. 에스더가 모여 공격적 기도를 하고 있는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오도록 중보하는 것이다. 원수의 진들이 깨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스더가 하는 기도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늘의 권세로 깨는 것이다.
얼마전에
5절을 다시 보자. 부흥이 오게 하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것이다. 요한이 ‘내가 진짜 메시야니까 걱정 말라.’ 는 말을 듣지 않았다.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해라.’ 에스더가 기도할 때 이 땅에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 다스림, 통치로 임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봐라, 하나님의 자유케 함이 치료함이 온전케 함이 일으키심이 일어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단순한 구국기도가 아니라 교회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풀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 역사가 에스더 모든 모임에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원한다. 궁극적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 기도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는 기도는 3차원적 기도가 아닌 4차원적 기도이다. 3차원적 기도를 넘어 4차원적 기도를 하자. 어려운 것이 아니다. 3차원은 물리적인 세계이다. 여기서 기도의 장군들이 나오고 사령관이 나온다는 것은 인포메이션을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 약간의 영적 감각을 사용하는 차원을 넘어 에베소서 3:10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조용기 목사님이 쓴 위대한 책 중 하나가 ‘4차원의 영성’이다. 위대한 책이다. 물리적 세계를 넘어 기도로 영적 세계를 만지고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이 풀어낼 수 있는 책이다. 원래 그것이 영어로 출판되어서 세계 26개국어로 번역되어 엄청나게 팔렸었다. 그런데 4차원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한국교회에서 도외시 되다가 몇 년 전에야 출판되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이 책의 영향을 엄청 받았다.
에스더가 4차원적 기도를 하기를 축복한다. 물리적인 세계, 내가 아는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영의 세계를 움직이는 기도… 3차원적 세계를 넘어 영적인 것들을 움직이고 핸드링하는 기도로 넘어가자.
이 세 가지는 사실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영적 세계에서 원수의 목을 꺾고 원수를 두 동강 내고 하나님 검을 휘두르자. 기도로 움직이자. 기도로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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