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다만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고병권의 묵묵에서
사회선교학교 세 번째 시간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 다녀왔습니다. 전장연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들장애인야학 등 약 190개 단체와 장애인과 비장애인 회원이 함께하는 연대체입니다.
먼저 이야기 나눠주신 박경석 대표님은 이렇게 물으셨어요. "왜 지하철을 처음 만들 때 엘리베이터가 없었을까요?" 우리는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소리 내지 못한 장애인과 내 문제가 아니라 인지하지 못했던 비장애인만 있었을 뿐입니다.
박 대표님은 전장연이 왜 출근길에 지하철을 탔는지, 몇십 년 전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동안 장애인 인권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셨어요. 2001년부터 모든 지하철에 설치한 리프트가 장애인 추락 사고로 이어졌고, 지난 22년 동안 장애인들은 역 위에서 이동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이어왔는데요.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외침이었어요.
그럼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책정된 예산마저 전부 사용하지 않는 등 법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요. 한 시민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수많은 약속이 깨졌기에 지하철 아래로 내려와 시민불복종 운동에 나섰다고 합니다. 박 대표님이 오래 몸 담았던 노들장애인야학은 배움과 운동이 순환하는 장으로, 여러 단체 중에서도 현재 전장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2년하고도 8일.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흐른 시간입니다. 변화도 생겼습니다.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됐고, 작년보다 271억 늘린 특별교통수단 예산이 국회 마지막 통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경석 대표님은 '잊히지 않기 위해'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히셨어요. 또 운동의 최종 목적은 예산 증액에만 있지 않고, 누구나 소외되지 않는 사회 전선을 확장하는 거라고 해요. 대학시절 사고로 장애를 가진 후 혼자서도 밥벌이하며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평생 버는 2억보다 함께 싸워서 번 5조(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비)가 더 의미 있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우리가 이용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사실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선물로 준 거라고 하셨습니다.
뒤이어 박온슬 활동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보호에서 자립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현실을 짚어주셨어요. 1939년 나치가 장애인만 골라 학살했던 T4 작전이, 여전히 중증장애인을 시설 안에 분리하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를 복지로 포장하는 문제도 지적하셨어요. 돕는 대상이 아니라 같은 장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장애인의 인권이자 모두의 존엄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271억 예산 증액을 위한 침묵 선전전에 몇몇 사회선교학교 참석자들이 함께했어요. 격렬한 몸싸움 이어지는 현장 속에서 이들이 해왔던 싸움의 무게 떠올리니, 안온했던 제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장애인의 시위 방식이 아닌 비장애인의 폭력적인 대응 방식을 경계해야 함을 깊이 깨달았고요.
강의 초반에 박경석 대표님이 숙제를 내주겠다며 종이를 나눠주셨는데(질문을 적으라는 숙제였어요), 이날 우리가 받은 진짜 숙제는 '앞으로 장애인 인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더불어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명평화길벗, 서울환경운동연합, 전장연에 이르는 사회선교학교가 마무리됐어요. 주변 생명들과 일구는 소외와 차별 없는 일상이 사회선교학교에서 배운 바를 살아내는 시작 되길 꿈꿔봅니다!
노들야학 활동가(왼쪽)와 이야기 나누는 사회선교학교 참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