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동채에 천하제일동채라는 간판이 걸리긴 했지만 사실 제일 크고 유명한 동족 마을은 리핑(여평,黎平)현에 있는 자오싱(조흥)이다. 충장(从江)에서 자오싱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고 하는데 (터미널 벽면에도 자오싱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옆에 停이라고 써 있다. 중단?) 표를 끊으려고 물어보니 자오싱까지 가는 것은 없고 뤄샹(낙향,洛香)까지 가서 갈아타라고 한다. 뤄샹에 가오티에(高铁,고속철도) 충장역이 생긴 이후 근방의 교통지도가 확 바뀌었다. 듣기로는 충장에서 디핑(地坪)을 거쳐 자오싱까지 세 시간 걸렸다고 했는데, 총장에서 뤄샹은 1시간밖에 걸리지 않고(디핑이나 산장 방향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4킬로미터 정도 되는 긴 터널을 지나 곧장 뤄샹으로 간다) 뤄샹에서 자오싱은 차 타면 10분 거리니 자오싱이 많이 가까워졌다. 귀양에서 뤄샹까지도 가오티에를 타면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이제 자오싱은 더 이상 산골 오지가 아니다. (다음날 산장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왈, '이제 자오싱에서 산장으로 버스 타고 오는 사람 없어요. 버스 타면 중간 대기하는 시간까지 4시간 걸리잖아요. 뤄샹에서 산장까지 가오티에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헐? 20분에 갈 수 있는 곳을 4시간 걸려서 간 게 바로 우리잖아? 버스 타고 가는 것도 여행이라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크게 후회할 일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역동적인 변화를 한국어 블로그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뤄샹 가오티에역을 지나 터미널인지 공터인지 버스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내렸는데 자오싱 가는 버스가 없다. 뭐야? 얘기가 다르잖아? 충장에서 우리를 데리고 온 차장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빵차를 타고 가란다. (가오티에역에서 내렸으면 버스 타기 쉬웠을 듯). 근데 이 동네 빵차 기사들은 달려들지도 않는다. 그나마 모또 기사들이 반겨주면 1인당 15위안을 부르기에 사양하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빵차를 찾아 자오싱으로 출발했다. 30위안을 주기로 했는데 표 사는 데까지 별로 멀지가 않다. 바가지인가? 전통 양식의 큰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전동 관광차들도 많이 모여있는 여기가 자오싱인가 했는데(간판에도 그렇게 써 있다), 나더러 혼자 내려서 표를 사오라고 하면서 빵차는 검표소 앞에 대기한다. 차를 타고 더 들어가는구나. 입장료가 100위안이라 들었는데 혹시 비수기 요금이 고지된게 있나 살펴봐도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200위안을 건네주며 양거런(两个人,2명)을 외쳤는데 웬일인지 100위안을 돌려준다. 50위안짜리 표 두 장과 함께. 역시 비수기 요금인가 보다. 그것도 절반이나 깎아주다니 땡큐다.
표를 사 가지고 빵차로 돌아오니 검표소 직원들이 진티엔(今天) 어쩌구저쩌구 웃는 얼굴로 뭔 얘기를 건네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운전기사도 같이 웃는 걸로 보아 나쁜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진티엔은 오늘이란 말이니 오늘이 마침 무슨 '특별한 날'이라 우리가 운이좋다는 덕담을 하는 것 같았다. 축제 기간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검표소를 지나니 길 옆에 예쁜 보행자도로도 만들어져 있었지만 진짜 자오싱 마을까지 걸어가려면 1시간 넘게 걸어야 할 정도로 먼 길이었다. 다음날 나오면서 살펴보니 앞으로는 매표소에서 버스나 택시를 막아 놓고 내부 관광차를 이용하게 하려는 준비가(혹은 음모가?) 진행중인 같았다.
빵차를 내려 마을로 들어가다가 입구 가까운 곳에서 성급하게(^^) 숙소를 잡아 버렸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아가다 보니 마음이 급했었나? 죽 늘어선 숙소 건물 1-20개 정도를 지나쳤을까, 어느 빈관 안에서 우리를 부르는 아줌마가 있어 들어갔더니 몇 마디 하다가 갑자기 방이 없단다. 뭐지? 나와서 몇 걸음 더 가다가 눈이 마주친 다른 아줌마가 우리를 끌고 빈관 안으로 들어가더니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니까 여기선 못 잔다고 내쫓는다. 아주 내쫓은 건 아니고 친절하게도 다른 빈관까지 데려다 준다. (아까 그 집도 같은 이유로방이 없다고 한 걸까?) 그 바람에 방도 깔끔하고 전망도 좋은 방을 얻기는 했는데 무려170위안씩이나 주었다. (귀국 이틀 전까지는 이 방이 우리가 묵은 방 중에서 제일 비싼 방이었다.) 나중에 마을 중심쪽으로 가 보니 너무 외곽에 방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이 알아보았으면 더 싼 방을 얻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이 동네는 유명한 관광지인데 촌스럽게 외국인을 못 재운다고 하는 건 뭔 이유지?
동족은 마을마다(혹은 씨족마다) 구로우(고루,鼓楼)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곳 자오싱에는 오래 된 고루가 5개가 있고 각각 짝을 이루는 5개의 펑위차오(풍우교,风雨桥)가 있다. 상류 쪽에서부터 차례로 인의예지신(중국 발음으로는 런이리지신) 순서로 런투안구로우(인단고루,仁团鼓楼) 리투안펑위차오(예단풍우교,礼团风雨桥)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제일 처음 마주친 신단고루(信团鼓楼)를 구경하고서 배가 고프길래 밥부터 먹고 나왔더니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공연은 5시부터라고 했는데? 하긴 아까 입구 쪽에서부터 민족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 게 수상하긴 했어. 뭔가 있는 거야. 숙소에서 발견한 중국어 여행안내 책자에는 리단고루 앞에 공연장이 있다고 했는데, 음악 소리가 나는 곳은 지단고루 쪽이고 그 옆에 공연장이 있다. 막 공연을 끝낸 팀이 퇴장하는 중이고 근처에는 알록달록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여러 그룹으로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분장인지 화장인지 서로서로 얼굴에 뭔가를 발라주는 사람들도 많다. 무대 뒤에 걸린 현수막을 보니 '제3회 귀주성 동족민속노래대회 리핑현 예선'이라는 것 같다. 객석 앞자리에는 심사위원 명패들이 보인다. 아, 검표소 직원들이 우리에게 건넨 덕담(?)이 바로 이거였나?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일어나 나간다. 끝난거야? 그렇담 좀 서운한데?
나머지 고루 3개와 풍우교들을 찾아 다니며 구경하는데, 옛 건물이나 그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좋고 고루마다 노인들이 모여 앉아 불을 쬐며 놀고 있는 것도 보기 좋았으나, 마을 자체가 모두 숙박시설과 가게로 변한 탓에 그들의 실제 생활을 엿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리장(丽江) 고성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려나? (비수기인 탓도 있겠지만 동네가 리장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관광에 종사하지 않는 현지인들은 대개 염색일을 하는지, 개울가나 골목에서 염색천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점포가 아닌 건물에는 대부분 염색한 천이 걸려 있다.
(풍우교에 걸린 민화들. 풍우교는 비바람을 피한다는 뜻에서 나왔을테고 다른 말로는 화차오=화교=꽃다리라고도 한단다. 예쁘다는 뜻일까, 그림이 있어서일까, 꽃은 보이지 않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또 시끌시끌 음악 소리가 난다. 아까 그 공연장이다. (리투안에는 공연장이 없었다. 책자의 오류) 점심 식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이 자리를 잡았고 막 오후 경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하! 끝났는데 왜 분장을 할까? 생각했던 건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참가번호 38번이란다. 어린이들로만 이루어진 팀도 있고 젊은 사람들도 가끔 보였지만 대부분은 60대 할머니들이다. 한 팀 20명 중에서 남자는 많아야 예닐곱, 아예 없는 팀도 많다. 제대로 합창이 되는 팀은 열에 한둘 정도? 레퍼토리가 다양하지 않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 팀이 많다. 지루해서 한 시간쯤 돌아다니다 (7천원짜리 커피를 마심) 가보니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5팀 정도 더 나오더니 73번에서 끝이 났다. 일개 현(우리로 치면 시급) 안에서 73개 팀이나 나오다니, 소수민족이 맞나?
경연을 마친 팀들은(혹은 시작 전에도) 기념 사진을 찍기 바쁘다. 경연이라기보다는 함께 즐기는 축제 분위기다. 우리도 슬쩍 끼어들었다.
5분전 5시, 경연 참가자들은 다 (자기네 동네로?) 돌아가고 공연장은 텅 비어 가는데, 5시 공연은 어찌되는 것일까? 관객은 열 명도 안 되고, 불안한 가운데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50여 명의 공연단은 우리 몇 사람을 위해 열심히 노래와 춤을 보여 주었다. 경연팀들보다 높은 수준의 공연이었다. 마지막에는 관객들과 함께 손을 잡고 원무를 추길래 미안한 마음에 얼른 나가서 따라다녔다. (그러고보니 5년 전에 베트남의 마이쩌우에서 3명의 관객을 위해 공연하던 20여명의 타이족 공연단이 생각난다. 그 때도 끝나고 뒤풀이를 같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