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須坐究探淵源이니 此道古今天下傳이라 正坐端然如泰山하야 巍巍不要守空閑이니라
바로 모름지기 앉아서 그 연원을 탐구하라. 이 길은 예나 이제나 천하에 전한 것이다. 바르고 단정하게 앉기를 태산처럼 하여 높고 당당하게 하여 공적하고 한가함을 지키지 말라.
해설 ; 좌선의 두 번째 지침도 공한(空閒), 즉 공적하고 한가함을 지키고 있지 말라고 하였다. 불교의 공부란 일체존재의 근본과 연원을 탐구하여 그 존재의 실상을 알고 실상대로 살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고금에 걸쳐 천하에 전한 것이다.
불교의 수많은 수행 방편 중에서 선불교에서는 좌선을 가장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육신이 앉아서 요지부동하기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좌선을 오인하여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는 어떻게 되든지 이 육신만을 한 자리에 고정시켜 두고 요지부동하게 하는 것으로 지상목표로 삼는 경우도 있다. 설사 그렇게 공부하더라도 1년 결제 2번하는 6개월 중에 하루에 10시간 전후로 앉아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삶과 시간들은 좌선과는 상관이 없는 삶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6조 혜능 스님은 좌선을 가르치는 <육조단경> 좌선품에서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이여, 무엇을 좌선이라고 하는가? 이 법문 중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밖으로 일체의 선악 경계에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한다. 안으로 자성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즉 이 몸이야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밖에 있는 일체의 선과 악이라는 온갖 대상을 만나더라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것을 따라가거나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과 안으로 사람 사람의 본래의 자성자리는 처음부터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그것에 의하여 모든 삶을 영위한다면 앉아 있든 서 있든 누워 있든 걸어 다니든 모습과 관계없이 그대로가 좌선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