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오늘에야 반가운 얼굴들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6월 5일, 올해들어 첫 수업이라니... 올해의 반토막을 무참하게 잘라버린 형국이지요. 그 많은 싱아가 아닌 그 많은 날들 어디로 갔을까요?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해서 우리는 교실도 넓은 음악교실로 이동했지요.
긴 의자에 한 사람씩 띄어 앉아 수업을 했습니다. 그동안 방콕 생활을 하면서 함께 차 마시고 밥을 먹던 소소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달아서 문화원 사무장의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무리하게 차 한잔 나눈 것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아이디어 노트를
새로운 생각이 늘 분수처럼 샘솟는 사람,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쓰는 전설의 천재가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생각은 누구에게나 떠오릅니다. 그건 누구에게나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부러워하는 아이디어맨과 아이디어맨을 부러워하는 당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연필과 종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에 그것을 내 것으로 꽉 붙잡는 사람, 이 사람은 메모를 해두는 사람입니다. 어렵게 떠오른 생각을 그 자리에서 슬며시 놓아버리는 사람, 이 사람은 아이큐 200 근처에도 못 가면서 머리에 담아두려는 사람입니다.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의 머리를 과신하는 사람입니다. 붙잡느냐 놓아버리느냐,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배꼽 잡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최근 들은 얘기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다른 친구 만날 때 꼭 써먹어야지, 생각하고 그 얘기를 머릿속에 넣어둔 일, 그러나 다음에 친구들을 만나 그 이야길 꺼내려 해도 그 이야기는 머리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괜히 탁자에 아이큐 200이 안 되는 자기 머리만 쾅쾅 부딪치다 결국 허탈해했던 기억,
메모 한 줄만 해두었어도 친구들의 배꼽을 괴롭혔을 것인데....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어 한두 개만 적어두면 쉽게 연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인생을 바꿔줄 한 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약간의 부지런이나 관심을 덜 둔 자신이 미워 몇 날 며칠 잠을 못 잘 것입니다.
요즘은 옛날처럼 낑낑거리며 수첩과 연필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휴대전화에 메모 기능이 있으니 그것을 잘 활용해 보십시오. 차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라면 메모 한 줄, 스쳐 지나가기 아까운 기발한 간판이나 풍경은 찰칵 사진만 찍어두면 됩니다. 메모 한 줄 사진 한 장이 몇 달 뒤, 아니면 몇 년 뒤에 어떤 아이디어로 발전되고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조건 붙잡아두라는 것입니다. 무작정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하러 힘들게 기억하려고 애쓰나, 기록하고 기억에서 지워라.” 그 머리 좋다는 아인슈타인도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어 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노트에 옮겨 적었으므로 그가 죽고 난 후 무려 3,400여 권의 노트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페이지는 지금 당신의 머리 위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전구로 발전되었습니다.
한때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였고, 지금은 프로축구 감독인 황선홍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애매하게 지시하지 않으려고 부산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메모를 해오고 있다, 선수기용에서부터 전술까지 중요한 것은 모두 메모 속에 담는다”고,
또 발상이 자유롭기로 유명한 괴짜 개그맨 전유성은 생각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가장 아까워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메모를 했고 그 메모만으로 책 10권을 엮어냈습니다. 황선홍도 전유성도 그라운드나 무대에서만 바쁘게 뛰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디어 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머리 바깥에 외장 하드 하나를 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머릿속에 들어오는 대로 바로 이 외장 하드로 옮겨 놓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머리에 여백이 커지겠죠. 당연히, 기억하는 일보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발상하고 창조하는 일에 머리를 더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발상과 전환
발상 전환을 위해선 최소한 두 가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하나가 약간의 부지런이라면 다른 하나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역시 대단하고 심각한 인내가 아니라 약간의 인내입니다. 과연 무엇을 참아야 할까요?
지금 주위에 걸레가 있다면 그것을 손 위에 올려놓아 보십시오. 그리고 그 걸레를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걸레가 성직자의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조급하게 굴지 말고 더 들어 보세요. 자신을 희생시켜서, 자신을 더럽혀서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는 걸레! 그 숭고한 자세에서 성직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걸레가 하는 일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성직자가 눈에 보입니다. (들여다봤는데 저는 못 보았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본질’이라는 단어와 ‘찬찬히’라는 단어를 양손 위에 들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시길)
자 이제 성직자에서 그치지 않고 걸레를 더 뚫어지게 관찰해봅시다. 이번엔 뭐가 보일까요? 성직자의 정 반대편에 있는 조폭의 모습이 보입니다. 또 무슨 얘기냐고? 알다시피 걸레는 대부분 수건 출신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왕년엔 수건이란 이름으로 귀부인의 얼굴 근처에서 놀았지요, 그때 조폭처럼 몸에 문신을 했습니다. 잘 관찰해보십시오. ‘속리산 관광 기념’이나 ‘누구누구 칠순기념‘ 혹은 ’무슨 무슨 학교 동문 체육대회’ 등등 문신이 있습니다.
수건이 늙고 병들어 걸레로 추락하고 난 후에도 이 문신의 흔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은퇴한 조폭처럼 보이는 것이죠. 물론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아야 보입니다. 관찰, 관찰, 그 뒤에 오는 것,
관찰, 그리고 통찰, 관과 통, 관통, 사물을 꿰뚫는 힘,
관찰이 통찰로 이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물을 꿰뚫어 보십시오.
어떤 사물도 내 시선을 피해갈 수 없게 됩니다.
아이디어
몇 안 되는 지능형 명사
처음엔 ‘관찰하다’라는 동사와 붙어 지내지만
관찰하다, 관찰하다, 관찰하다 반복하여 주문을 외우면
어느새 ‘발견하다’라는 동사와 붙어 있다
샴푸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샴푸가 한자리 찾이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확실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대로 흉내 내서는 내 자리를 갖기 어렵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장미에 가시가 달린 뜻
장미는 아름답다,라는 말은
장미에 달린 가시까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장미의 일부는 아름답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은
인생에 딸린 고통까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썩지 않기
땀에는 소금기가 있다. 그래서 땀은 썩지 않는다. 그래서
땀을 흘리는 사람은 썩지 않는다. 그러나 남이 흘린 땀을
가로채려고 침만 흘리는 사람은 결국 썩고 만다. 침에는
소금기가 없다
<카피라이터 정철의 <머리를 구하라>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마음
홍윤숙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부 수리 중입니다
평생
고쳐도 고쳐도
비가 샙니다
고구마 밭에서 / 장민정
사전에서
고구마: ‘메꽃과의 풀’이란 기록을 찾았다
원래 풀꽃이었다는 기록의 단초
고구마가 꽃이었다니
골목 안 깊숙이 들어가 찬찬히 뜯어본다
쫓겨온 것일까, 붙잡혀온 것일까,
열대지방 어디에서 건너왔다는
나팔꽃 무늬가 선명한 옷깃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이국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꽃시절도
꽃눈의 흔적도 없이
아이 손만 꼬옥 움켜쥐고
자기 생을 구걸하는
여자 아닌 질긴 어머니
가느다란 목줄기에 핏대 오른 채
꺼내놓을 것이 옹가슴뿐인 듯
하트형의 잎사귀를 받쳐 들고 있다
아직도 저물녘이면
서쪽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온몸의 피는 뜨거운데
어쩌자고
꽃 하나 피지 않는 고된 길목에 서 있는가
이어달리기 / 장민정
확성기 소리 치솟는다
머리 위에 햇빛 미끄러지고 만국기 펄럭펄럭
둥둥둥 북소리 따라
함성 뜨거운 명덕학교 운동장
작은 아이가 종종종 굴러간다
큰아이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조기축구 알통공장에서 만든
허벅지가 탄탄탄
볼때기가 털털털
팔랑개비가
팽이가
깨벌레가
둥둥둥 와 와
달려 달려 달려
몸보다 마음이 바쁘면
고꾸라지기 마련
이 악물고
눈 부릅뜨고 정신없이 뒤쫓는
일방통행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길
햇빛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