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그'답사마당'
-경주 왕릉 석탈해릉, 원성왕릉 편-
https://m.blog.naver.com/pmh236912/223752431995
[우리 산하] 소나무와 함께 있는 포근한 신라왕릉 찾아보았다.(4)
신라는 BC57~935 기간에 총 56왕 중 박씨 10명, 석씨 8명, 김씨 38명, (선덕, 진덕, 진성) 여성 3명이 나라를 경영했다.
※신분제 국가인 왕조시대에는 묻히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능원묘로 그 명칭을 구분한다.
최고의 신분의 무덤인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의 무덤, 묘(墓)는 능과 원 이하의 무덤을 총칭하여 부른다.
소나무가 함께 있는 천년고도 경주에 소재한 1)선덕여왕릉, 진덕여왕릉, 2)오릉, 삼릉, 경애왕릉, 3)법흥왕릉, 흥덕왕릉, 무열왕릉. 4)석탈해릉, 원성왕릉을 네 차례에 걸쳐 소나무가 있는 사진을 올린다.
○석탈해왕릉은 경주 북쪽 양정 언덕, 즉 금강산 끝 자락에 무덤이 있다. 석탈해는 신라 제4대 왕이자 석씨 시조의 한명으로 이름은 탈해 또는토해, 칭호는 이사금.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출생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는데 알에서 태어나 부왕에게 버림받아 궤짝에 넣어진 것을 한 노인이건져 양육했다고 한다. 학문과지리에 두루 통달하여 남해차차웅이 사위로 삼았으며, 10년에는 정사를 맡아보았다. 57년 유리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 왜국과는 친교를 맺었으며 백제의 공격에는 기병으로 격퇴했다. 65년 국호를 '계림'이라 했다.
○원성왕릉의 능호는 괘릉이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이다. 운치있는 소나무숲 있는 왕릉은 봉분에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 이곳에는 곡사(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현재의 숭복사(崇福寺)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왕릉을 만들었다. 능호를 괘릉(掛陵)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덤의 구덩이를 팔 때 물이 괴어 관을 걸어두었다는 조선시대의 민간신앙이 결부된 것이다. 경주 원성왕릉을 중심으로 좌·우 입구에 석조상들이 배치 되어 있으며 문·무인 4점, 사자상 4점, 석주 2점으로 총 10점이 있다. 무인석은 서역인으로 당시에 서역과 왕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tip:
•황남식당(054 774-3935)는 대릉원 주차장 서편에 있다. 넓은 실내에 정갈한 음식집으로 소문난 식당이다.
•오릉, 삼릉, 경애왕릉, 선덕여왕릉, 진덕여왕릉, 법흥왕릉, 흥덕왕릉, 무열왕릉. 석탈해릉, 원성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