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는 자주 운다. / 이태호
선산을 오른다. 오늘따라 비탈이 가팔랐다. 줄자로 재보면 200m도 채 안될 거리다. 단숨에 오르지 못했다. 이거야원! 늙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다음, 30년 전에 심은 구상나무 그늘에 앉았다. 그늘 밑에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다간 막내여동생이 있다. 오늘이 그녀의 죽음 3주년이다. 살아있다면 50세다. 여자로 태어나 결혼은 물론 연애한번 못했지만 항상 웃었다. 다른 말은 어눌했지만 엄마와 큰 오빠 발음은 정확했다. 혈육에 앞서 인간적으로 가엽다. 엊그제 언니들이 왔었나보다.
장명수 갯바람이 드셌던지 장미와 국화송이가 어머니 봉분 쪽으로 밀렸다. 나는, 흩어진 꽃들을 모아들고 두꺼비 집처럼 약간 솟아오른 잔디에 오른 손을 펴서 대어본다. 그 밑에는 동생의 유골이 있다. 올려놓자마자 얼른 손을 떼었다. 갑자기 옛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큰오빠 말을 안 듣는다고 동생의 뺨을 세차게 때린 그 손바닥이 아니던가. 왜 그랬을까, 정말 장애인으로 태어난 동생이 미웠기 때문일까?
손바닥을 다시 그 위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울었다.
첫댓글 막내여동생..가슴에 묻으셨겠습니다
저도 막내여동생을 먼저 보냈는데, 예당저수지 옆에 잠든 동생을 일부러 찾지 않은 지가 꽤 되었어요. 이제 마른 줄만 알았던 눈물이 자꾸 나고, 호수가 춥고 적막해서...동생분, 편히 쉬고 있을 거에요.
식구들이 tv볼 때 동생이 생각납니다. 녀석은 화면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로 앉아서 TV를 보며 바보처럼 웃는 우리를 바라보고 웃었습니다. 동생의 눈에 비친 우린 바보였을까요?
선생님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깁니다. 누님 한 분과 형님 세분, 저도 한없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어른들께서 하시던, 자식은 가슴에 뭍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 둘을 먼저 보내니 녀석들 기일이면 으레 가슴이 아프답니다.
혈육이기에 더 사랑스럽고, 어느 때는 더 미워하기도 하지요. 이 글을 통해 함께 늙어가는 여동생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여동생 둘이 더 있습니다. 늦었지만 자주 찾아본답니다. 빈말이라도 "큰 오빠는 아버지나 진배 없습니다. 우리들이 잘 모셔야죠."라는 말을 들을 땐 그들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순서도 없이 마구 앞으로 다가옵니다.
누이 동생의 서글픈 한, 오라비 가슴에 묻어두고 떠났군요, 큰오빠, 큰오빠, 우리 큰오빠.
아아! 영면 하소서. 누이야!
오랜만입니다. 지난번 주신 책은 만리포에 사는 제자께 잘 전달하였습니다. 만날 때마다 "우리 선생님 건강하시죠?"라고 안부를 묻습니다.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부럽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다시 볼 수 없어서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지요.
그 눈물이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아닐끼싶습니다.
네, 맞습니다. 먼저 간 녀석들 몫까지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설 명절입니다. 다들 모였었는데...
설 명절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