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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달랏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베트남 요리실습 교실(쿠킹 클래스)를 만났다. 수업이 아니라 강사들이 요리연습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한참동안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좀 더 일찍 알아서 시간만 있었다면 한번 그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보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그런 로컬 요리실습에 대한 아쉬움에다가 달랏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못내 아쉬워 호텔 바로 뒤편 언덕에 있는 제법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엘 갔다. 달랏 특유의 베트남 음식을 마음껏 먹어 볼 요량이었다. 메뉴판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들이 담겨있었지만, 정작 사진에 담긴 음식 종류는 별로 없었다. ‘까짓 꺼, 한 번 실컷 먹어보자’고 조카와 손녀가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다양하게 주문을 했는데....... 뭐가 영 시원찮다. 나온 음식이 사진과 다르고,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음식들이 마치 중복된 것처럼 또 나온다. 성은 안차고, 그렇다고 메뉴판의 음식을 모두 다 먹어볼 수도 없고....... 종국엔 이미 다른데서 먹어보았던 익숙한 음식들을 추가로 다시 시키는 어처구니를....... ‘에라이. 이럴 땐 맥주나 실컷 마시자.’ 그만..... 음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어? 달랏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우리끼리 소박하게 작별파티를 했을 뿐인 것을.....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또 이른 새벽에 저절로 눈을 떴다.
지체 없이(우리 식구들은 일체 잠자리에서 머뭇거리며 뒤척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없다) 벌떡 일어나 샤워실로 간다. 집에서였다면 먼저 커피포트에 물을 확인하고 버튼을 누른 뒤에 샤워실로 갔겠지만 말이다. 찬물을 가득 머리에 뒤집어쓰고 조심조심 나오니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습관이 되어버린 유별난 이른 새벽기상시간 탓에 아내는 보통 나보다 30분 정도 후에...... 내가 커피를 어느 정도 마셨을 즈음에 기상을 주로 한다.
아침 기상습관은 내가 부모님께(특히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지극히 몇 가지 안 되는 물려받은 유산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집엔 자명종 시계가 없다. 지금에야 핸디폰을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 식구 중엔 수시로 알람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 자신의 스케줄이 새벽 3시든지 5시 반이든지 때가되면 자동으로 일어난다. 아무리 피곤해도 10분만 더, 1시간만 더, 이런 침대에서의 뒤척임이 없다. 우리 집안의 유전인자는 시간관념에 대해서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엄격하게 셋팅되어 있다. 학교 늦는다고 출근 지각한다고 허둥대는 아침일상이 우리 집에는 일절 없다. 내가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내가 아들에게 물려준 것 중에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아침 기상과 시간에 대한 관념이다. 나는 아침저녁은 필수고 수시로 찬물샤워를 자주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하나뿐인 우리 아들은 주로 아침샤워를 즐겼었다. 녀석의 샤워시간은 아주 긴 편이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헤비메탈 ‘She’s gone’을 식전댓바람부터 고래고래 악을 쓰던 녀석이다. 그랬던 녀석도 결혼 이후로는 점점 아빠를 닮아가는지 저녁 샤워는 물론 수시로 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조용히 말이다. (하이고~~~~~오. 내아덜과 같이 목간해 본 게 언제인지.......)
여행지에서 언제나 똑같이 신성한 의식처럼 맞이하는 새벽산책에 오늘도 어김없이 카메라만 달랑 메고나선다.
오늘은 달랏을 떠나 호이안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밤을 꼬박 새우며 13시간 이상을 슬리핑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해서, 내일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운 여행지 호이안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오늘이 이번 여행의 딱 중간이 되는 날이다. 오늘까지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흐르겠지만........ 내일 아침부터의 시간은 점점 빨라져서 남은 여행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달랏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텔에서 나와 길을 건너고 골목길로 접어든다. 어제도 그저께도 내가 새벽에 걸었던 그 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골목길이지만, 혹시나 다른 것이 있을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달랏의 숨은 진면목이 더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만..... 파란 새벽하늘을 올려다보고 말았다.
파란 새벽하늘......... 하얀달이 아직 하늘가 저편에 걸리어 있다.
피식 하고 서툰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래. 파란하늘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해진걸.......’
시간이 한참을 흘러도....... 내게는 달랏하면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파란 하늘로 잔잔한 여운처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발품을 더 팔아서라도 이 도시의 다른 구석구석을 좀 더 보고 싶다.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네들과 진정어린 대화를 해보고 싶지만, 이도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나는 눈과 마음으로라도 저네들의 삶과 달랏을 좀 더 느껴보고 싶다. 파란하늘과 후덥지근해오는 공기와 끝도 없이 늘어선 골목길과 점점 크게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소음까지, 나는 온 마음으로 지금 이 도시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도시와 이 도시는 사뭇 다르다.
당장 사정없이 콧구멍을 통과해 폐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열기부터가 다르다.
어쩌면 차라리 닮은 것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밤이면 도시 위로 차분히 내려앉던 달빛과 도심의 빌딩숲 뒤로 실루엣처럼 내결리던 푸른 숲과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과 수많은 사람들이 흘리는 땀방울에 가득 담겨있는 염원만은 달랏이라는 도심 공간도 내고장 충주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게 느껴진다.
‘그래. 여기나 거기나 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공간인 거야.’
이미 이틀 동안의 새벽산책에서 달랏을 웬만큼은 돌아다녔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어디를 여행하던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를 방문하면 항상 염두에 두고 굳이 학교나 공동묘지를 찾아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환하게 뛰노는 학교는 그 도시의 미래라 하겠다. 당연히 공동묘지는 그 도시의 과거이자 역사다. 어느 도시든 어김없이 학교는 중심에 둔다. 도시인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동묘지는 지척에 두고 생활하는 도시가 있는가하면, 일부러 아주 멀리 두는 도시도 있다. 그네들의 의식과 생활상 속에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생활하기를 멀리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져 다른 도시로 향하는 길 중간쯤에 공동묘지가 간간히 보인다.
달랏을 떠나는 날의 아침산책으로는 좀 무리겠다 싶었지만 언제다시 오겠는가 하는 생각에 과감하게 멀리까지 가보기로 했다.
대성당 언덕너머의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사는 달동네를 돌아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도시가 형성될 때, 중심에서 밀려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지극히 생활환경이 낙후된 도시의 언저리에 겨우 의탁해 도시의 삶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가진 것이 없기에 도시인에 속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도시에 빌붙어서라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겠기에 도시의 주변인을 결코 마다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사 속에 달동네(판자촌)가 즐비했었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과 발맞추어 달동네에도 변화를 바람은 분다. 하지만 그 불어오는 바람의 질과 양과 속도가 전혀 다르다. 오래전 터키여행에서 부르사의 달동네 투어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달동네를 찾는다. 그곳에 그야말로 그 도시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시간과 역사가 아직도 흔적으로 간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에그머니나~~~~~~ 달랏의 판자촌 투어는 정말로 힘든 고난의 행군이다.
리어카도 지나가기가 쉽지 않은 좁디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을뿐더러, 하나같이 자빠지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을 만큼 가파른 언덕길의 끝판이다. 외나무 다리 보다도 더 위태로운 좁디좁은 언덕길을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들이 거침없이 올라가고 두려움 없이 내려온다. 혹, 중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속도를 줄일 수도, 피할 곳도 없다. 둘 다 과당하고 벼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위에서도 뛰뛰, 아래서도 뛰뛰 소리로 먼저 상황을 알리고 나면...... 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려 올라간다. 고등학생은 되었을까 싶은 여자아이도 말이다. 이거야 순전히 써커스 구경하는 꼴이지 싶다. 그네들은 그곳에서 다들 그렇게 산다. 그 가파른 언덕을 올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가 툭하면 막다른 골목에 마주치기가 일쑤요, 오로지 뚫려있는 외길을 찾아가며 오르내렸는데 아뿔싸...... 한참 전에 내가 망설이다 택했던 언덕길의 바로 옆이 아닌가? 30분 동안 앞쪽으로만 헤치고 나갔는데....... 종국엔 출발장소로 되돌아오고 만 것이다. 이러기를 서너 번........ 슬슬 지쳐간다. 핸디폰 내비가 소용이 없고 지도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동네다.
그렇게 헤매다가 겨우 처음에 지도를 보며 왔던 낯익은 골목까지 겨우 되돌아 나왔을 때, 코딱지만 한 공터에 허접한 장이서고,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구멍가계보다 작은 식당들이 문을 열고 있다.
‘아줌마. 여기 쌀국수 하나요. 그리고 저기 커피가계 청년. 연유 듬뿍 들어간 아이스커피 곱빼기로 하나요.’
‘아이고, 나 쓰러질 것만 같아. 오늘 호이안 가는 슬리핑 버스 타야하는데 말이여.’
‘누가 콜택시든 콜 오토바이든 좀 불러줘!!!!!!!’
달랏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VF Hotel Da Lat(Lô F2, KQH Hoàng Diêu, Phường 05)으로, 부킹닷컴의 후기 평가요구에서 나는 기꺼이 만점을 주었다.
위치상으로는 그다지 썩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우선 도심의 중심이자 여행자 거리와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마트. 고급 레스토랑. 여행사. 재래시장. 카페 등이 들어서 있는 여행자거리의 편의시설과 어느 정도 거리가 필수적이 되고, 찾아볼만한 여행지들도 약간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2km라는 거리는 멀다면 멀겠지만 내 경우처럼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라 하겠다. 물론 한낮에 무더위에 치친 사람에게 ‘2km만 더 가면 돼’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대신 택시비가 너무나 저렴하여 둘 이상이라면 전혀 지장을 못 느낄뿐더러, 매달려 가는 오토바이 택시가 지천이다. 하여 거리에서는 별로 불편함을 못 느꼈다고 해야겠다.
대신, 조금은 한적한 현지인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사방으로 온통 베트남 달랏의 현지인들 생활 속에 파고들어와 있은 느낌에다가 한적하고 조용하다. 고즈넉한 달랏을 느끼기엔 최적의 장소다.
장점은...... 친절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늑하다는 점이다.
웬만큼은 이력이 난 나의 배낭여행에서 최고의 친절과 배려를 감동으로 받은 곳이 여기 달랏의 호텔이었다. 부연 설명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만 같다.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안내와 배려와 친절, 그 이상이 그곳엔 있었다.
우리가 다시 베트남을 가게 된다면 꼭 달랏을 다시 찾아갈 것이고, 우리가 달랏을 다시 찾아가는 이유는 아마도 VF 호텔의 친절함과 배려를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픈버스 투어)라는 여행상품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들 마다 성업 중이다. 흔히들 <Hop on Hop off>라고 화려하게 치장한 2층 버스들이 천장을 오픈한 채 도심의 중요 관광지들을 순회하면서 운전기사(혹은 해설사)가 안내가이드를 대신해주는 투어 상품을 가리킨다. 같은 코스로 하루 종일 차량이 순회한다. 여행자는 버스순회도중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관광을 즐기다가, 같은 장소에서 다음에 오는 버스에 올라 또 다른 장소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함이 장점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픈 투어 버스(Open Tour Bus)는 어쩌면 베트남만이 가지고 있는 조금 색다른 교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국경을 넘어 라오스의 유명 관광지까지 확대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호치민에서 달랏으로 오는 7시간의 여행을 통해 조카와 손녀에게 ‘오픈 투어 버스’를 경험하게 해 주었지만, 제대로 된 체험은 이제부터 밤을 꼬박 지새우며 달리는 장장 14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버스 이동을 해보아야지만 제대로 된 경험이지 싶다.
달랏에서 이틀째에 힘겹게 여행자거리 너머의 ‘신투어리스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영업이 종료되어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갔더니만, 호이안까지 가는 좌석의 여분이 2개밖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갖은 수단방법을 찾아보다가 결과로 다른 여행사를 찾아보기로 하고, 달랏에 올 때 이용했던 풍짱여행사 사무실을 그랩(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쫓아갔다. 다행이 풍장에서는 여분의 좌석이 있어서 예약을 무사히 마쳤다. 이전의 두 번 여행에서 나는 모두 신투어를 이용했다. 하여 신투어와 풍짱의 차이와 장단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이제 풍짱 버스를 이용해 호이안으로 이동을 실제 해보면서 부분 설명을 해보기로 하겠다. 그렇다면 ‘오픈 투어 버스’가 도대체 무엇이냐?
‘오픈티켓(Open Ticket)’ 이라는 상품이 있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해외여행자의 수요가 급증하자 대형항공사와 여행사들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상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로 출발지와 도착지가 정해져있는 왕복항공권 판매에서 행해진다. 장기간 여행자나 장기 해외출장자등 출발 날짜는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귀국 일을 정하지 않고 열려진(미정) 상태로의 항공권 판매에서 나온 말이다. 해외에 머물다가 귀국 예정이 결정되면 사전에(규약에 의거) 항공사에 연락하면 언제든지 귀국 행 항공권을 제공한다는, 귀국날짜가 오픈된 티켓을 가리킨다. 하지만 최근엔 일정기간(6개월, 1년) 제한된 기간 안에서, 아예 출국과 귀국 모두가 오픈된 자유항공권이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초대형항공사에서 스카이 패스(SKY PASS) 같은 완전 오픈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정년퇴직자들에게 최근 들어 각광을 크게 받고 있는데, 스카이 패스 1년 권을 구입하면, 구입한 항공사의 비행기를 1년 내내 아무 때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무한정 이용할 수가 있다. 대한항공 스카이 패스를 구입했다면, 대한항공이 취항하고 있는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1년 동안 무제한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파리에서 보름을 머물다 다음 목적지 런던으로 가기 위해선 3일 전에만 항공사에 출발 일시를 알려주고 좌석을 확보하면 무사히 런던에 도착할 수 있고, 다시 이번엔 뉴욕에 가고 싶다면 3일 전에만 통보하고 좌석을 확보하면 된다. 서울에 왔는데 제주에 가는 대한항공이 없다면, 대한항공 자회사가 있으면 같은 무료이고 자회사도 없다면 대한항공에서 협력항공사를 통해 최대한 저렴한 여행을 연결해 준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해 여행정보와 숙소만 고를 수 있다면, 6개월 혹은 1년 동안 무작정 마음먹는 대로 세계 자유여행을 하는데 있어 최고의 상품이 아닐까 나는 생각하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이제껏 (로또)라는 것을 사지 않고 있는데....... 스카이 패스 소식을 접하고는 현재에도 사볼까 말까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로또가 된다면 당장 스카이 패스 1년 권 두 장을 살 것이다. 스카이패스 1년 권이 내가 알아 볼 시기에 7백만 원 정도에서 시작이었다. 내 여행은 하루 가용금액이 거의 십만 원 안쪽이었다.(동남아는 좀 저렴하고, 유럽의 경우) 항공권 구입만 별도로 계산한다. 거기에는 숙박비. 식비. 유럽에서 많이 드는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 교통비(2~3개국을 다니다 보면 기차 혹은 유럽 저가항공비 포함), 군것질 값, 커피와 맥주와 와인 값, 그런 모든 것이 포함된다. 솔직히 따진다면 엄청 파격적인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가진 오로지 내 방식의 죽어라 발품팔고 죽어라 걸어 다니는 여행이다.
대충 이렇게 저렇게 따져서....... 한 오천만원이면 마눌님 손잡고 일 년 내내 여한이 없을 정도로 세계를 누비고 다녀 볼 텐데 말이다. 젊은 날 저지레로 까먹은 돈이 얼마여? 헐!!!!!!
베트남의 관광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항공사의 (오픈티켓) 제도를 버스운송 사업에 끌어들인 것이 바로 오픈 투어 버스(Open Tour Bus)라고 할 수 있겠다. 오픈 투어버스의 다른 이름은 ‘슬리핑 버스(Sleeping Bus)’다. 어디에서나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베트남은 칠레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늘고 길쭉한 영토를 가진 나라다.
국토 종단의 길이가 1.600mk에 이른다. 서울 부산을 500km로 본다면 세 배에 이르는 길이다. 그 종단의 해안선을 따라 길게 유일한 철도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철도 옆으로 유일한 고속도로가 놓였는데........ 2차선 도로인데다가, 마을을 지나는 곳마다 횡단보도가 놓여있고, 가축 떼가 고속도로를 무리지어 횡단한다. 심지어는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고속도로 평균 시속은 60~80km 정도다. 우리나라 소도시 외곽순환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수준의 기차와 고속도로가 베트남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동맥인 것이다.
북부의 수도 하노이, 중부의 중심 다낭, 남부의 경제수도 호치민, 이렇게 3개의 거점이 있는데 호치민에서 다낭까지 버스로 대략 빠르면 18시간 길면 23시간 걸린다. 다낭에서 하노이까지는 좀 더 걸린다. 길이 막히면 두 세 시간 지연은 다반사다. 출발만 정시에 하면 도중에 사고나 지연 등은 일상적인 다반사로 한없이 너그럽게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이들의 생활방식이다.
서너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도시는 그냥 이웃으로 여긴다. 7~8 시간은 이동해야 그제야 장거리 이동이다. 이런 기본적 이해가 깔려야만 이들의 교통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곳이 바로 베트남이다.
우리나라의 우등고속버스도 10시간씩 타야한다면 고역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등버스 가져다 놓아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고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백 퍼센트 쫄딱 망한다.
그래서 버스를 키웠다. 아예 장거리 이동 동안 버스에서 잠을 자게 만들어 줬다. 주로 12시간 밤새도록 달리는 노선을 개발해서 여행자들에게 버스에서 자는 동안 이동함으로 하룻밤씩의 숙박비를 절약해 주는 장점을 홍보했고, 그것이 크게 주효했다. 최소한의 용적율로 좁은 버스의 실내에 비행기처럼 세 줄의 미니침대를 설치했다.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게 말이다. 보통 버스보다 승차인원이 적어지는 단점을 위해, 침대를 이층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눕혔다. 그리고 버스의 하부에 거대한 화물칸을 최대로 넓혔다. 교통사정이 극히 좋지 않은 베트남에서 전국토를 낱낱이 구분해 거쳐 가는 슬리핑 버스는, 대한민국으로 보자면 최고의 화물운송사 이자 최고 택배회사인 것이다. 정시에 싣기만 하면 가장 빠른 정시에 목적지에 화물이 운동된다.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관리원이 교대로 내달리고, 물품이 바뀌거나 파손되지 않게 세세하게 관리감독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역을 골고루 커버하는 대표여행사는 (신투어리스트)이다. 장거리 노선에 집중한다. 신투어를 추격하면서 벌이가 좋은 짭짤한 부분노선에 집중하는 두 번째 여행사가 (풍짱 여행사)이다. 그 외에 수많은 후발 여행사들이 진입했으며. 한국인이 참여하는 고급 써비스를 우선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이 슬리핑 버스(오픈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버스 티켓이 바로 (오픈 방식) 이라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여행하면서 중간 기착지인 다낭에서 체류를 원하면, 오픈티켓을 구입해서 몇 날이고 지내다가 호치민으로 떠나고 싶은 날에 다시 그 티켓을 연장하는 선에서 다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오픈티켓에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현실에선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다.
우선 표를 여기저기 아무데서나 팔고 있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투어리스트 지정 터미널이나 부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행사 부스에서도 가능하고, 여행자거리의 수많은 대리점 어느 곳에서든지 가능할 뿐더러, 심지어는 묵고 있는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다만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대행을 하면서 제멋대로 가격차를 메겨서 차액을 수익으로 삼는다.
이렇다보니 현대화된 전산 시스템이 있다고는 쳐도, 활용이 익숙지 못해 곧 잘 착오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 착오가 여행자에겐 커다란 고통이 되기도 한다.
앞전에 설명대로 하노이에서 다낭에 왔고 이제 다낭에서 오픈티켓을 이용해 호치민으로 이동을 하려고 한다. 월요일 저녁에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겠다고 연락을 했다곤 치자.
다낭은 중부 여행은 중심지다. 인근에 호이안도 있고, 훼도 있다. 거기에서도 수많은 여행사와 심지어 호텔에서 같은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든 오버부킹(표를 남발)이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하노이에서 먼저 후예에 도착한 슬리핑 버스에 여분 좌석이 다섯이 비었고, 이중에 이미 셋이 인근 다낭에서 예약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둘 만 태워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착오로 번듯이 후예에서 세 명이 정당한 티켓을 들고 등장한 것이다. 누구를 태우고 누구를 내리게 할 것인가? 슬리핑 버스는 이것 하나뿐이다. 아침에 떠나는 버스를 슬리핑 버스로 여기고 타려는 여행객은 거의 없다. 아침까지 어디서 기다려야 하는가? 후예 대리점은 나몰라 일단 태우고 출발한다. 다낭에 오니 자리가 부족하다. 노쇼(No Show)가 이럴 땐 여간해서 생기질 않는다. 이런 문제가 종종 생긴다.
내가 직접 겪은 나짱(나트랑)에서의 경우다.
나짱은 호치민과 다낭(호이안)의 중간 경유지 이면서도 신투어의 경우는 슬리핑버스의 출발지이다. 달랏이나 무이네에서 다앙(호이안)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고 할 때에, 꼭 들러서 환승해야 하는 장소다.
신투어 슬리핑버스는 나짱에서 호이난, 다낭, 후예까지 운행한다. 달랏. 무이네 등은 인근은 보통의 일반 버스를 사용한다.
무이네나 달랏에서 호이안까지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려 한다면, 표는 목적지 까지 구입하되, 나짱에서 슬리핑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는 말이다. 무이네에서 나짱까지 일반버스로 이동했는데 이미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짐을 가득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스로 가서 통합 티켓을 제시하고 슬리핑버스 티켓으로 보딩패스를 해야 한다. 잔여좌석을 선택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사히 2층 침대칸을 선택해 보딩패스를 마쳤다. 그런데 도로사정으로 달랏에서 오는 버스가 늦어졌다. 한참 지나 달랏 여행객들이 도착해 보딩패스를 하는 과정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오버부킹이 발생한 것이다. 무이네에서 오는 사람, 나짱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먼저 슬리핑 버스 침대칸을 배정받다 보니 정작 달랏에서 온 사람들의 좌석이 서너 개나 모자란 것이다. 모두가 정상적으로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다. 누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딘가는 분명 잘못된 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인 것이다.
함께 왔어도 먼저 뛰어 들어가 보딩패스를 한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탄 버스가 늦게 왔다면 나도 저들에 속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시간을 흘러갔고 소요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교대해 주는 운전기사와 차장(관리자)이 쉬어야 하는 후미의 2층 좌석 2개를 여행자에게 양보하고, 그들은 밤새도록 운전자 옆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동했다. 끝까지 버스에 오르지 못한 세 명은 나짱에 그대로 버려졌다. 그들에게 어떤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서야 다음 버스에 올라 긴 시간동안 낮잠을 설쳐야만 했을 것이다.
오픈 투어 버스(슬리핑 버스)는 그렇게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힘들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꼭 한 번은 체험해 볼 만하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부르사로 이동할 때와 트라브존에서 조지아의 트빌리시로 국경을 넘어갈 때, 일반버스에 꼿꼿이 앉아서 장장 11시간동안 이동하면서 얼마나 베트남 슬리핑버스를 그리워했었는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달랏을 출발하는 풍짱 버스는 나짱에 들르지 않는다. 온 좌석을 가득 채우고는 산길을 꾸불꾸불 요리조리 돌고 돌아서 호이안을 향해 다이렉트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년 사이에 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나짱에서 신투어를 이용하면 해변에서 한참 놀 수가 있었고, 풍짱은 한참 떨어진 시골에 터미널이 있어서 마냥 지루하게 기다려야만 했는데........ 지금은 다이렉트로 14시간을 달려 시벽 6시에 호이안에 도착한다고 한다.
조카와 손녀는 창문쪽 2층 침대칸에, 그리고 우리는 좌석 부족의 결과로 맨 뒷쪽 허접하고 불편한 좌석에....
호치민에서 달랏으로 타고 간 버스는 완전 최신형이었다. 그래서 호이안까지의 여정에 엄청 크게 기대를 했었는데........ 페기처분 직전의 구형 버스가 호이안행 이었다.
개뿔!!!!
왜 슬픈 예감은 이렇게 항상 틀리지를 않는걸까?
굿.바.이. 달.랏!
비좁은 침대좌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창밖으로 멀리서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눈부신 아침을 맞는다. 들판 너머의 정글 위로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 또한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아주 특별한 경험인 것은 틀림없다.
해가 떠오르고 드넓은 들판이 시야가득 펼쳐지고 강물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호이안에 가까이 이르렀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버스가 멈춰 섰다. 아주 한적한 어느 농촌마을 어귀의 주유소 앞마당이었다. 그러자 관리인이 ‘호이안에 도착했다’고 외친다.
‘여보슈. 이건 아니지. 내가 세 번째 호이안 방문인데 여길 모를까봐? 여긴 한참이나 외곽지 아녀? 호이안에서 다낭으로 향하는 나들목을 내가 모를까봐? 우린 올드씨티 까지 간다니까?’
그러자 싸늘한 표정으로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구시가지가 너무 혼잡해 져서 이제 대형버스는 진입할 수가 없다는 대답이다. 출발 시에만 미니 셔틀이 운행해 주고 도착 시에는 셔틀 서비스조차도 없어졌단다. 기다렸다가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만 한단다.
헐!!!! 안 바뀌어도 되는 것은 어쨌든 바뀌고, 바뀌길 바랐던 것은 여전히 그대로인 베트남을 어찌할까나?
호이안 올드시티의 여행자거리 좁은 골목에 신투어와 풍짱 여행사가 인접해서 들어서 있다. 저녁 늦은 시간과 이른 새벽이면 이곳에 대형 버스가 줄을 서고, 수많은 여행자가 버스에 오르고 내렸다. 첫 여행에서 무이네와 후예를 이곳에서 슬리핑 버스를 이용했었다. 두 번째는 호치민으로 들어와 무이네에서 이곳까지 역시 슬리핑 버스를 이용했고, 지금처럼 이 새벽에 올드시티에 내렸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내 운행이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더하여 무료셔틀도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이런 젠장....... 혹시 신투어는 해주는 것 아니여? 빌어먹을........’
그렇게 호이안에 막 도착한 첫인상은...... 아주 꾸리꾸리 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예약한 호텔에서 이른 새벽 체크인을 허락해 준 것이었다.
예전엔 같은 시간대에 도착했으나 체크인이 되지 않아서 배낭을 맡기고 오전 내내 호이안을 서성이던 제법 불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래서 호텔측에 이른 체크인을 부탁하는 메일을 사전에 보냈었다. 호텔 측 답변은 그날 아침에 예약한 방이 비워진다면, 하나라도 비워진다면 체크인을 받아주겠노라는 답변이 있었다. 전날 문자를 보냈더니 마침 방이 둘 다 비워져서 도착하는 대로 부담 없이 찾아오라고 했다.
택시를 잡아서 흥정을 하고 4인의 배낭과 캐리어를 꾸겨 넣고 끌어안고서 호텔로 향했다. 매니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다른 손님들이 두 팀이 있었지만, 이 호텔은 관리자가 모두 다른 곳의 집에서 출퇴근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우리를 위해서 일찍 출근해 기다려준 것이었다. 이들은 아침 7시50분쯤 출근해서 이용객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입장을 바꾸어보아도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로 전 세계의 모든 숙박업소에는 분명하게 체크인 타임과 체크아웃 타임이 명시되어 있고, 사전예약에서부터 확인 문의를 한다. 같은 건물에 거주를 하고 일찍부터 청소나 정리를 한다 해도 크게 양해를 구할 일이었음에도, 별도 거주를 하면서도 부러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려주고 편히 맞아주고 시원한 차와 커피를 건네준다.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별도의 계산으로 말이다. 이곳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호텔이었지만, 오늘부터 묵게 되면 첫 아침은 내일아침부터 적용된다. 그래서 별도 계산을 약속하고 간단한 샌드위치와 과일과 커피와 주스로 꾸며지는 호텔 조식을 기다리면서 담소를 나누고 밤새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지 호이안에서 새로운 아침과 함께 우리들의 새로운 여행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호이안 여행은 작고 아름다고 멋스러운 올드 시티로 시작해서 결국엔 다시 올드 시티로 끝맺음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여행에서 나는 아주 특별하고도 과감하게 올드 시티와 정반대로 4km나 떨어져 있는 안방비치 부근에 호텔을 예약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처음 올드 시티를 만나게 되면 분명 큰 감동으로 사정없이 가슴 가득 쏟아져 들어오겠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도 오로지 올드 시티, 낮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도 똑같은 올드 시티, 저녁에 야경을 보러 나가도 등불이 여기저기 내걸린 똑같은 올드 시티, 그리고 내일도 온통 똑같은 올드 시티라면....... 생각을 좀 해볼 일이다. 호이안은 서두르면 한두 시간이면 넘치도록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지역이다. 이것을 확대하려고 여행관계자들은 호이안을 여행 중심에 두고, 다낭을 엮고, 미썬을 포함시키고, 멀리 있는 후예까지를 같은 여행권에 넣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이안의 핵심은 작은 우리나라 면단위 도심에다가 인근에 오행산이라는 산책 장소 하나가 전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서 부러 반대쪽의 해안에다가 호텔을 구했다. 호이안 올드 시티는 한 번이나 두 번을 택시를 이용해 다녀오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베트남의 한산한 바다풍경과 물놀이에 푹 빠져보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먼저 표현한다면........ 그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캐리어를 열고 짐정리를 하는 아내나 조카나 손녀에 비하자면...... 나는 배낭을 배정된 방에 훌쩍 집어던지고 신발만 쪼리로 갈아 신고나면........ 외출 준비 끝!
아참!!!! 달랏에서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협정에 의해서 우리가 조금 더 예쁜 로즈 룸을 사용했는데, 약속대로 다음 호이안에서는 손녀가 먼저 방을 골라서 선택했다. 이번의 우리 방도 썩 나름은 훌륭했는데, 손녀 방은 기웃거려보지를 못해서 룸 컨디션을 전혀 모르겠다.
다짜고짜 서둘러 외출을 감행한다. 호텔을 나서서 옆 골목을 통해 100m만 나아가면 안방비치의 해변이 나타난다. 이 해안선은 저만치 끝자락에 보이는 다낭의 마케비치 해안까지 그대로 연결된다.
단숨에 달려가 파란 바다에 그대로 풍덩 뛰어 들었다. 안방비치 해수욕장은 저만치 한 300m 우측에 있어서, 우리 호텔 뒤편은 지극히 한산했다.
‘그래! 이런것이 바다지. 그런데 왜 이렇게 숨이 차고 헤엄을 쳐도 앞으로 안 나가지?’
근처를 둘러보니 까이퉁(베트남 전통배)을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부자가 보인다. 예전에 무이네에서 경험을 해 본적이 있어서 넓은 오지랖을 앞세우고 망설임 없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이거야말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재미삼아 하는 천렵 수준이지, 생업 수준인 어부의 직업으로 생각하면 크게 오산이다.
천렵이라면 능히 내가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직접 그들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도움을 주고자 했는데...... 에게게게....... 소득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내가 이래 뵈도 베트남에서 어부활동을 해 본 사람이란 것........
--- 어찌되었던.... 우리의 호이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