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9년 사자왕 리처드는 왼쪽 어깨에 화살 한 대를 맞았다.
오늘날이었다면 경미한 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생제나 효과적인 소독법이 없던 시절에 이 사소한 상처는 감염되었고, 괴저가 일어났다.
12세기 유럽에서 괴저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감염된 사지를 절단하는 것이었지만,
감염이 어깨에 있으면 그런 조치가 불가능했다.
괴저는 사자왕의 몸 전체로 퍼졌고, 아무도 왕을 도울 수 없었다.
2주일 후 그는 카다란 공통 속에서 죽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의사들조차 어떻게 하면 감염을 방지하고 조직의 부패를 막는지를 알지 못했다.
야전병원 의사들은 병사들이 사지에 사소한 부상을 입었을 때조차 괴저가 두려워서 손과 다리를 늘상 절단했다.
절단은 다른 모든 의학적 처치(이빨 뽑기 등)와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마취제ㅡ에테르, 클로로포름, 모르핀 ㅡ 가 서구 의학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클로로포름이 등장하기 전에는 의사가 부상자의 팔다리를 톱으로 자르는 동안 네 명의 병사가 환자를 잡고 있어야 했다.
워털루 전투(1815년)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야전 병원 근처에서
톱질로 잘려 나간 팔다리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군에 징집된 목수와 백정은 흔히 의무대로 보내졌다.
수술에는 칼과 톱을 다루는 기술 외에 더 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털루 전투 이후 2섹 동안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알약, 주사, 복잡한 수술이 수많은 질병과 부상에서 우리를 구했다.
우리는 한때는 피할 수 없던 사망선고에서 해방되었다.
또한 우리는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그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수많은 일상의 통증과
가벼운 병으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
전세계에서 40세가 채 안 되던 평군 기대 수명은 약 67세로 성큼 뛰었고,
선진국에선 약 80세가 되었다.
어린이와 유아 사망률이 특히 낮아졌다.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농경사회 어린이 중 3분의 1이나 4분의 1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대부분 디프테리아, 홍역, 천연두에 희생되었다.
17세기 영국의 경우 신생아 1천 명당 평군 150명이 출생 첫해에 죽었고,
모든 어린이의 3분의 1이 1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오늘날 영국에서 출생 첫해에 사망하는 아기는 1천 명당 5명,
15세가 되기 전에 죽는 아이는 1천 명당 7명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가 주는 충격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숫자를 가리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영국 왕 에워드 1세(1237`1307)와 그의 왕비 엘리노이(1241~1290)가 좋은 사례였다.
그들의 자녀는 중세기 유럽에서 제공받을 수 잇는 최고의 호나경과 양육 여건을 누렸다.
왕궁에 살면서 음식을 마음껏 먹었고, 따스한 옷을 입었다.
좋은 벽난로와 가장 깨끗한 물, 수만은 시종, 최고의 의사가 잇었다.
엘리노어 왕비가 낳은 열여섯 명의 아이에 대해 기록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1, 1255녀에 태어난 이름 없는 딸은 출생시 사망했다.
2. 딸 캐서린은 한 살 혹은 세 살에 사망했다.
3. 딸 조앤은 생후 6개월에 사망했다.
4. 아들 존은 5세에 사망했다.
5. 아들 헨리는 6세에 사망했다.
6 딸 엘리노어는 29세에 사망했다.
7. 이름 없는 딸은 생후 5개월에 사망했다.
8. 딸 조앤은 35세에 사망했다.
9. 아들 알폰소는 10세에 사망했다.
10. 딸 마거릿은 58세에 사망했다.
11. 딸 베렌게리아는 2세에 사망했다.
12. 이름 없는 딸은 출생 직후 사망했다.
13. 딸 메리는 53세에 사망했다.
14. 아름 없는 아들은 출생 직후 사망했다.
15. 딸 엘리자베스는 34세에 사망했다.
16. 아들 에드워드,
가장 어린 에드워드는 어린 시적이라는 위험한 시기를 지나 살아남은 첫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 에드워드 1세가 죽은 뒤 에드워드 2세로서 왕좌를 물려받았다.
다시말해 엘리노어 왕비는 영국 왕비의 가장 근본적 임무(남편에게 남성 계승자를 안기는것)를 수행하기 위해
열여섯 차례 임신을 시도해야 했다는 말이다.
에드워드 2세의 어머니는 예외적인 인내와 불굴의 용기를 지닌 여성이었음에 틀림없다.
에드워드 자신이 아내로 맞은 프랑스의 이자벨라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43세에 암살당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한 엘리노어와 에드워드 1세는 건강한 부부로,
자식들에게 치명적인 유전병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열여섯 명 중 열 명(62퍼센트)이 어린 시절에 죽었다.
가까스로 11세가 넘도록 살아남은 아이는 여섯 명뿐이었고,
40세가 넘도록 산 것은 세명(18펴센트)뿐이었다.
출산에 더해 에리노어는 유산으로 끝난 임신도 여러 차례했을 가능성이 많다.
에드워드와 엘리노어는 평군 3년에 한 병꼴로, 열 명의 아이를 차례차례 잃었다.
오늘날의 부모라면 그런 상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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