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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의 법(13-21)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신앙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도 성결함과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헌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헌신을 통해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13○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그는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15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 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13-21)
나실인이 헌신을 다짐했던 일정한 기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것을 나실인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었던 나실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성결함으로부터 일상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따라야 하는데, 작정한 시간이 끝나면 회막 문으로 나아가서 번제,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머리털을 밀어 태워야 합니다. 화목제물의 식사를 나눔으로 보통의 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1) 서약 종결을 위한 제물(13-15)
나실인이 바치는 제물은 차례대로 번제,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입니다. 그리고 이 제물과 함께 소제와 전제물을 드립니다. 먼저 번제물로 1년 된 흠 없는 수양을 드립니다. 번제를 드리는 규정은 레위기 1장의 규정을 그대로 따릅니다. 나실인으로 헌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도 가장 먼저 전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를 제일 먼저 드린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려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 다음으로 속죄제물을 드리는데, 이 또한 레위기 4장의 규정을 따릅니다. 속죄제물은 아마도 그가 나실인으로 있는 동안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목제물을 드린다. 화목제와 함께 소제와 전제를 더 합니다. 민수기 15장이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데, 숫양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기름과 포도주를 각각 사 분의 일 힌을 준비하여 드립니다. 음식 소제물은 화목제의 품목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제물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2) 서약 종결을 위한 절차(16-21)
이렇게 제물을 준비해서 나아오면, 제사장이 이 제물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실인의 서원을 종결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절차가 시작됩니다.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나실인이 드릴 제사가 번제,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라고 언급하지만, 실제로 제사장이 드릴 때는 죄를 속하는 속죄 제사가 가장 먼저 드려졌을 것입니다. 그 후에 헌신을 다짐하는 번제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공동체에 확증하고 확장하는 화목제물을 드리게 됩니다. 마지막 절차는 머리와 관련됩니다. 나실인은 회막 문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머리털을 모두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아래에 놓고 태워 없앱니다. 거룩한 나실인으로 서약한 것이므로 그 머리털 역시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물을 드리면 제사장은 화목제의 제물들을 나누게 됩니다. 가슴과 넓적다리는 제사장에게 돌아가고, 이렇게 모든 제물을 드리고 나면 나실인으로 서원했던 사람은 나실인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고, 그때부터 모든 형태의 포도주과 포도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나실인으로 서약하는 것은 신약 시대에도 곧잘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8:18에서 사도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는 자신이 서원한 것에 따른 행위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어떤 목적이었든지 일정한 기간 동안 머리를 깎지 않으면서 나실인으로 서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1:23 이하에서 유대에 있던 제자들은 사도 바울에게 자신이 헬라 지역에서 데려온 사람들에게 걸레를 행하고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실인 제도가 백성들의 일상 속에 있었을 가능성과 함께 서원이 구체적으로 지켜졌을지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본문도 있습니다. 전도서 5:5은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지적합니다. 서원하고 안 지키는 경우를 경고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잘 안 지켜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모스 2:11-12에서 백성들이 나실인 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못 지키도록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한 기간 동안에는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하고,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몸에 대한 돌봄을 제한하고, 일상적인 의무나 관계도 제한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에 이르러 나실인 제도의 효력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신약 시대는 소위 직분의 보편성이 이뤄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보편적으로 주어집니다. 구약에 있는 나실인 제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전인격적인 삶 자체가 온전히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삶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이 아니라, 거듭난 모든 신자는 사명자로 헌신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외적인 행위를 함으로 거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로부터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 몸으로 들어가는 어떤 것이 우리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부터 나오는 악한 생각, 즉 시기와 질투와 성과 거짓과 비방의 말들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축복(22-27)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헌신으로 살아가는 백성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사랑의 헌신과 가없는 축복은 선순환 관계를 형성합니다. 주의 백성이 사는 방식은 이러한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마음껏 축복하실 수 있도록 기쁘게 헌신해야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2-27)
제사장의 축복은 구약성경에서 널리 알려진 본문 중 하나입니다.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을 있는 그대로 반복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이 축복 본문은 고대로부터 전형적인 형태로 고정되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아주 오래된 문헌에서도 본문의 축복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이러한 축복을 위임하십니다.
제사장의 축복은 세 개의 행으로 구성된 시입니다. 각 시행은 3-5-7글자로 확대되고, 각각의 시행은 두 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27절에서 하나님 자신이 복을 주시는 분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I willbless them).
축복의 흐름은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첫째 행의 주제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라는 주제로 더 확대됩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축복은 구약성경 전체를 지나면서 반복해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양식이 됩니다. 세 번에 걸쳐서 가장 중요하게 반복되는 것은 주어로 나타나는 여호와이십니다. 실제 히브리어에서는 동사가 주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여호와라는 주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 무려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어로 사용하는 것은 축복과 평강을 전달하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축복을 받는 자는 ‘너’입니다. 단수로 묘사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2인칭 단수 대명사가 지시하는 것은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 관계를 전제하되, 2인칭으로 묘사함으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인격적 관계를 강화합니다.
시편 121편이나 시편 67편 등은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복을 충실하게 반영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호와 돌보심을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게 됩니다. 민수기 5-6장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론으로 제사장의 축복이 소개됩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진영을 베풀고, 그 진영에서 정결한 삶을 사는 백성들에게 약속되는 복인 셈입니다. 제사장의 공적 축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흘러가게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지혜와 정직한 삶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부정한 길과 유혹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와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원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그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선택이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는 길임을 기억합시다. 지혜로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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