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母糷
박 순 태
“국도 파래, 밥도 파래.” 목울대를 긁으며 전달된 모정의 소리가 마음을 동요시킨 지 반세기를 맞고 있다. 태산 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진 원석 같은 그 말이 내 마음의 파도에 밀리고 밀리어 조약돌이 되었다.
달력에 숫자 하나가 점점이 작아져 사라져간다. 오늘이 바로 그날, 어버이날이다. 항상 고요함으로써 대장부를 이겨낸 여인. 이 세상 여인 가운데 못생기기로 금메달감이라 여겼던 우리 엄마, 하지만 천사의 인상으로 내 뇌리에 고운 조각품 하나 남긴 채 그네를 타던 숨결은 황망히 나래를 접었다. 아마 밥 넘기기가 싫었나 보다. 우리 육 남매는 둘러서서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을 합창하며 두 손을 모았다. 지난해 오늘 정오쯤이었다.
큰 기억들이 문득문득 뇌리를 두들긴다. 군에 입대하던 날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눈물 삼키시며 부디 푸른 제복의 사명을 다하고 무사히 돌아오라며 손 흔드셨던 어머니. 첫 정기 휴가 나온 아들에게 번듯한 고기반찬 하나 없이 풀잎만 가득한 밥상을 앞에 두고 미어진 가슴을 쓸어내리신 모정. 마음 한편에선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도 가벼운 밥상을 들고 피를 말려야 했던 빈한한 삶. 젖꼭지 물려주었던 모성애를 넘어 가슴 사무친 심정을 토해냈던 그때 그 모습. 한숨을 내쉬며 뱉은 당신의 말이 종심從心을 지난 내 마음을 마구 두드려댄다.
몸이 받는 고통은 이를 악물게 한다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고통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보다. 근간에 부쩍 눈물 머금는 사나이가 되었다. 최전방 철책선 참호에서 쌩쌩 불어오는 얼음 바람맞으면서도 눈물만은 흘리지 않았건만, 당신을 떠나보낸 애자哀子는 오늘도 밥상 앞에서 눈시울이 촉촉이 젖는다.
‘엄마를 닮았구나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엄마를 닮았구나 눈가에 내린 주름도, 모든 걸 닮았구나 세상을 사는 모습도, 눈물도 웃음도 입맛까지도,~~~~~.’ 모란母糷이란 대중가요 노랫말을 종종 흥얼거린다. 생선구이며 소불고기가 아닌 당신의 손맛이 담긴 된장국이 날이 갈수록 당기기만 한다.
“국도 파래, 밥도 파래.” 어머니 입에서 바위같이 굴렀던 그 말, 내 마음을 격동시키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