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김인희
밤하늘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을 우러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낮에도 이따금 하늘을 우러르는 버릇이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이동할 때 시야에 꽉 찬 하늘에 시선을 던진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면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낮에는 별을 볼 수 없는 걸 알면서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가 되어 궤도 따라 돌고 있다.
별과 나 사이 끊을 수 없는 강한 사슬을 감지한다. 소녀 시절 문학을 접하면서 별을 노래한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했던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다. 그때부터 시인의 하늘을 내 하늘 삼고 시인의 시어(詩語)를 지침으로 여기고 살얼음판을 걷듯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가끔 이방인이 될 때가 있다. 더러 세상의 조류에 발을 맞추지 못할 때가 있다. 감정의 끈을 단단히 잡지 못하고 눈물을 쏟을 때가 많다. 별거 아닌데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배를 움켜쥐고 웃을 때가 있다. 딸과 대화할 때도 예외가 없다.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종 “엄마, 어쩌면 그렇게 순수할까. 내 동생 하면 딱 좋겠는데.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게 살 수 있게 엄마를 지켜줄 거야.”라고 했다.
문학의 하늘을 우러르며 별을 찾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크림색 팝콘이 타닥타닥 튀는 것 같이 수선스러운 분요 속에서 별을 찾을 때 가장 착한 사람이 된다. 캄캄한 밤하늘을 더듬으면서 별을 찾을 때 클로버 군락을 헤집으면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시선으로 주목한다. B612, 어린 왕자의 별이 있을 리 만무하건만 멀리 홀로 빛나는 작은 별을 보고 어린 왕자의 별이라고 믿고 싶다. 별을 사랑한 시인의 별도 꼭 있을 것 같다. 유난히 찬연하게 빛나는 별을 발견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저 별은 분명 그 시인의 별이야’라고 넋을 잃고 독백하곤 한다.
어쩌다 잘못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편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별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별과 나 사이에 큰 장애물이 가로막아서 별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절망했었다. 영롱한 별빛이 시나브로 흐려지다가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지면서 보이지 않게 되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먹인 적이 있다. 그때만큼 슬프고 속상하고 괴로운 일이 있었을까.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보며 차근차근 곱씹어 본다. 선뜻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그보다 슬프고 속상하고 괴로운 일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던 시인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나비, 벌, 매미, 토끼, 노루, 참새, 기러기 모두 사랑해야지. 해, 달, 별, 사랑, 그리움, 기쁨, 슬픔까지 껴안아야지. 시류에 보폭을 맞추지 못하는 자신의 아둔함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연자방아 돌리는 짐승처럼 별의 궤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운명이라면 거부하지 않으리라.
태양이 전율하는 화창한 날에 경쾌한 콧노래를 부르면서 들판을 누비며 작은 풀꽃과 인사하고 찡그린 눈으로 산마루 걸터앉은 구름과 조우하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가에 서서 내리는 빗줄기에 마음을 씻어내고 싶다. 나뭇잎과 풀잎을 씻어내는 빗물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분명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 달려갈 것이다. 가을에 미처 잎을 떨구지 못한 단풍잎에 싸락눈이 내릴 때 사락사락 소리를 낸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건 조금 다르게 사는 삶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탄탄대로를 외면하고 자드락길을 따라 걷는 사람을 보았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행성을 찾아가는 여백에 깃드는 환희가 눈부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뱉은 독이 묻은 가시에 찔렸을 때 입술을 깨물고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참는 사람이 있다. 어린 짐승처럼 순한 눈빛을 가진 착한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는 건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