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파랑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진제판 발명가인 니세포르 니엡스와 역시 프랑스의 화가이자 물리학자인 루이 다게르는 사진 발명 경주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들어온 빛이 맞은편 벽에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고, 어떻게 그 이미지를 고정시킬 것이냐가 사진 발명의 핵심이었습니다. 1839년, 다게르가 만든 ‘다게레오 타입’이 최초의 사진으로 프랑스 과학미술아카데미에서 공인을 받았습니다. 이들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사진을 발명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다게레오 타입’이나 나머지 발명가들의 사진은 모두 흑백이었습니다. 당시 사진의 탄생을 지켜보던 화가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 어떤 그림보다 더 정밀하다는 사실 때문에 회화의 몰락을 점친 이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몇 가지 취약점을 거론하며 사진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약점이 있었을까요? 우선 초기의 사진은 노출 시간이 길었습니다. 니엡스가 남긴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려 8시간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림자가 양쪽으로 생겨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취약점은 흑백으로만 재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눈으로 색을 그대로 보는데 사진으로는 흑백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컬러가 없으면 사진 속에서 정보의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화려한 색으로 세상과 인물을 자유자재로 묘사하던 회화와 달리 흑백사진은 담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지는 해, 해바라기 밭, 넘실거리는 파도, 비온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 같은 것을 모두 회색의 계조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컬러사진 개발에 나섰고 최초의 상업적인 컬러사진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20세기 초, 뤼미에르 형제가 컬러사진 제판법을 고안했지만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현재 시판되는 모든 디지털 카메라는 컬러 촬영이 가능합니다. 필름 시절과 달리 ‘흑백 전용 디지털 카메라’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컬러로 찍고 흑백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컬러의 장점은 무궁무진합니다. 컬러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흑백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던 옛날과 달리 지금 흑백사진은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컬러사진에서 컬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컬러가 갖는 상징성을 알아야 컬러를 잘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원색인 파랑, 빨강, 노랑을 필두로 색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파랑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색의 유혹>이라는 책을 보면, 남자의 46%와 여자의 44%가 파랑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일출이나 일몰, 비나 눈이 내릴 때, 황사가 발생했을 때 등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파란 하늘을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바다는 지구 어디서나 파란색 계통의 여러 색으로 보입니다. 여름은 파랑이 넘쳐나는 계절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파란 옷을 즐겨 입습니다. 파랑은 차가운 느낌을 줍니다.
파랑은 호감, 조화, 우정, 신뢰의 색으로 가장 많이 언급됩니다. 이것은 하늘의 색이 파랑인데서 유래한 의미입니다. 하늘은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도 파란색입니다. 파란 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일단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름의 파란 하늘에서는 시원함을, 가을의 파란 하늘에서는 서늘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가 등장하는 겨울의 쨍한 파란 하늘은 곧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이 전해집니다. 파란 하늘을 찍더라도 앞에 걸펴지는 보조 요소에 다라 계절의 다름을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전개됩니다.
파랑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념의 색을 나타냅니다. 먼 곳과 그리움의 색인 파랑은 비현실적입니다. 독일에서는 꾸며 낸 이야기를 ‘파란 동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파란 꽃’이란 단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1998년 정력을 강화해 주는 ‘비아그라’가 탄생했습니다. 비아그라는 파란색입니다. 남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한 약입니다.
사람들의 우울한 마음을 미국의 흑인들이 처음 부르기 시작한 음악인 블루스의 기원도 ‘blue’입니다. 영어권에서 파랑은 ‘슬픈’, ‘멜랑콜리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가장 유명한 블루스는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입니다. 파란 조명의 술집에서는 블루스 같은 음악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파랑은 평화의 색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파란 깃발은 평화로운 단합의 상징입니다. 유엔기는 하늘색 바탕 위에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 두 개가 세계지도를 감싸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는 이름은 그린이지만 깃발은 파랑입니다. 유럽연합의 깃발은 파란 바탕에 금색별 12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갓난아기의 방을 꾸밀 때 아들은 파랑, 딸은 분홍으로 치장합니다. 파랑은 남성을 나타내는 색입니다. 사진가 윤정미는 ‘핑크&블루’프로젝트를 통해 색의 상징성을 멋지게 활용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남자아이는 옷, 가방, 침실, 학용품, 장난감, 인형, 신발 등 모든 것을 파란색 계통 일색으로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아이의 방에는 모든 것이 핑크 계통입니다.
2005년에 처음 선보였던 작품들에서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색 구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은 대개 아홉 살을 전후해서 좋아하는 색의 스펙트럼이 얺ㅂ어지며, 남자아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파랑을 서서히 탈피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최근 작품에서는 파랑이 짙어지면서 변화하는 남자의 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기독교 회화에서는 파랑은 여성의 색이었습니다. 성화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파랑, 예수는 빨강의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찍을 수 있는 옷이 청바지입니다. 홍대 앞에서 찍은 청소년들의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짙고 연한 청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파랑은 노동자의 색이었습니다. 염색의 편의성 때문이라고 하는데 작업복은 어디서나 인디고 블루로 염색했습니다. 파란 바지, 가운,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파란 남자’라고 불렀으며, ‘파란 직업’이라고 불렀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블루칼라’라 부르며 하얀 칼라에 넥타이를 매는 사무직 근로자, ‘화이트칼라’와 구별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태곳적부터 인디고를 재배했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파란 재킷과 바지를 입고 들일을 했습니다. 이들을 흔히들 ‘파란 개미’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850년 바이에른의 레비 스트라우스가 금광 노동자와 카우보이를 위한 작업복으로 청바지를 고안했습니다. 청바지는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청바지를 입습니다.
마린블루는 해병의 군복색이며, 파일럿블루는 공군의 군복색입니다. 이처럼 파랑은 우리 생활 주변 많은 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